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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학, 이것만은 버리고 갑시다: 속빈강정 대학홍보
4-대학, 이것만은 버리고 갑시다: 속빈강정 대학홍보
  • 박나영 기자
  • 승인 2002.12.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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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기념품 말고 '良識'으로 학생유치해
ㅇ대학 홍보실 직원 아무개 씨는 요즘 고등학교에 입시관련 홍보물들을 놓고 오면서 "잘 뜯어보세요. 뭐가 숨어 있을지 모르니까"라는 농담을 잊지 않는다. 그래야 한번 들여다볼까, 교무실에만 해도 대학 홍보물과 각종 기념품들이 쌓여 있어서 그냥 던져놓고 갔다가는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오는 2003년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을 모두 끌어안고도 대학 정원에서 6만 여명이 모자란다. 대학도 어떻게든 '눈에 띄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전국 3백50여개의 대학들은 저마다 '타 대학과 다른 우리 대학'을 알리기 위해 각종 홍보물들을 내놓는다. 'My Way 이화로-', '선문이 아니라면 신 전문가도 없다', 'Open your eyes! 너의 길이 여기 있어', 'OKU-Only Korea University'…그야말로 '더 새로운, 더 재미있는, 그래서 더 인상적인' 홍보물 戰이다. 대학이 홍보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홍보실에서 홍보거리를 급조해내는 셈이다.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들의 분석에 따르면 '바람났대/요즘 난리가 아니야/밤에 집에도 안가/큰일이다, 정말/큰일은 무슨 큰일?/서원대가 바람났다는데'라는 대학 광고를 내보낸 후 '본인에 의한 서원대 선택률'이 20% 이상 향상됐다고 한다.

이처럼 가장 즉각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이미지 광고'이다 보니 어찌 보면 대학들이 '대학' 자체보다 '대학을 아름답게 설명하기'에 힘을 기울이는 것도 당연하다. 명세빈, 박경림 등의 연예인을 내세워 '인지도 높이기'에 성공한 동덕여대는 이제 홍보에서 '연예인 광고로는 채워지지 않는' 대학의 질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데 신경쓰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지금 이 대학에서 '미는' 광고에는 귀여운 남자 모델이 등장해 "제여자친구는-동덕여대 다녀요"라며 미소를 짓고 있다. 아름다운 카피로 장식된 대학, 동경하는 연예인의 대학, 탐나는 이성친구를 얻을 수 있는 대학, 이것이 지금 대학을 '잘' 홍보하는 지름길이다.

광고·홍보로도 채워지지 않는 80%는 '발로 뛰어서' 메꿔야 한다. 스스로 몇몇 담당 고등학교를 선정해 학생 유치에 힘쓰고 있다는 지방 ㄱ대학의 이 아무개 교수는 "'교수들 내모는 대학들'이라…팔자 좋은 대학들 얘기죠. 뛰지 않으면 우리가 살 수 없기 때문에 나가는 건데 '내몰린다'고 표현하는 건 이상한데요"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역시 입시 홍보에 나섰다는 ㅎ대 총무팀장 아무개 씨는 "'입시'라는 비상 사태에 내 부서, 네 부서가 어디 있고 교수, 직원이 어디 있느냐"라는 입장이다.

이처럼 일단 많은 인력이 입시홍보에 투입되고 있긴 하지만 이들이라고 뾰족한 홍보 전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학생이, 교수가, 심지어는 총장이 직접 발벗고 뛰고 있다는 그 '성의'로 어필하려는 것인지. 각종 입시 박람회에는 '선발'된 학생 도우미들이 만사 제치고 달려나와 고3수험생과 학부모에게 사탕을 나누어주고 있고, 교수들은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원서를 나누어주고 있으며, 총장들 또한 잊지 않고 한번씩 들러 얼굴도장을 남기고 있다.

입시박람회에 파견된 한 교수는 "교수가 나와야 한다고 해서 나왔는데 사람들이 교수인지 뭔지 알게 뭡니까. 여기 앉아 있으면 제일 많이 듣는 얘기는 '거기 원서 하나 줘요' 입니다"라며 울분을 토로했다.

진료하랴, 수술하랴, 강의하랴, 바빠서 눈코 뜰 새 없다는 의대 교수들도 입시철이 돌아오면 '홍보 도우미'로 변신해야 한다. 뭐니뭐니해도 학생들을 가장 많이 끌어 모을 수 있는 것이 '의학과'라는 것. 인근 고등학교나 입학정보박람회 등을 돌아다니며 '우리대학 병원 건물이 얼마나 초호화식인지, 얼마나 역사가 긴지, 얼마나 인지도가 있는지' 등을 설명하고 있다는 ㄱ대학 의과대의 오 아무개 교수는 홍보전에 뛰어든 이유를 한 마디로 일축했다. "호출됐죠, 뭐"

그래도 모자라서 고3담임들을 대상으로 '약간'의 접대가 필요하다. ㄷ대학의 홍보팀 관계자는 "이전에는 고교 교사 등을 초대해 대학홍보도 하고 식사대접도 했었는데 오히려 교사들 사이에 '그 학교는 불러놓고 교통비도 안주더라'는 이야기가 돌더라"라며 "효과가 있는걸 알면서도 예산이 부족해서 못하고 있다"라고 호소했다.

ㅇ대학의 장 아무개 교수는 "담임 불러다 밥 먹이고, 알맹이만 쏙 빼가는 기념품 나눠주고, 연예인 불러다 게임하고, 이런 쓸데없는 돈을 잘 활용하면 머리는 좋은데 가난한 학생들을 장학생으로 스카웃할 수도 있을 텐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최첨단 기법으로 장식된 가장 '현대적'인, 그러나 아직도 교수와 돈을 푸는 '뒷작업'를 포기할 수 없는 가장 '전근대적'인 지금의 대학 홍보. 과연 맞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되짚어볼 때다.

박나영 기자 imna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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