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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판을 짜야 할 때
새 판을 짜야 할 때
  •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 승인 2016.05.02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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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리더십 부재로 허덕이던 정치권은 이번 총선에서 ‘民意’라는 외부 충격에 의해 어떤 식으로든지 기존과는 차별화된 새 판을 짜야 하는 상황이 됐다. 지난 주 <교수신문>에는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 정책에 대한 교수들의 생각을 물어본 결과가 실렸다. 정부가 주도하는 대학구조개혁은 적절한가라는 질문에 적절하지 않다(62.9%), 정부 주도의 ‘사회맞춤형·취업 중심’의 대학 구조조정이 대학의 미래를 발전적으로 가져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아니라고 답했다고 한다(81.4%). 대학개혁은 전임교수가 주도해야 한다고 하면서(76.4%), 대학구조조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거나 반대의 뜻을 표현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62.7%가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 기이한 결과로만 보면 대학들은 당분간 교육부 정책에 끌려 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또한 내적 리더십의 부재에 따른 외적 힘에 의한 새 판 짜기랄까.

모두가 저성장의 장기화를 걱정하면서 그 대책에 절치부심하고 있는 시점에 혁신기업가 피터 디아만디스는 역설적으로 ‘대박’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고 있다. 그는 최근작 『볼드(Bold)』(이지연 옮김, 비즈니스북스, 2016)에서 산술급수적으로 성장하던 시대가 디지털 기술로 말미암아 기하급수적 성장 가능 시대로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지 못한 사례로 100년 동안 시장을 지배하면서 디지털카메라 기술을 최초로 개발하고도 필름·인화지 판매라는 기존 수익모델을 버리지 못해 파산한 코닥(Kodak)을 지목한다.

코닥이 파산한 3개월 후 아이러니하게도 카메라를 팔지는 않지만 사진을 매개로 하는 스타트업인 ‘인스타그램’이 창업 2년 만에 10억 달러에 페이스북에 인수된다. 당시 직원은 13명. 숙박시설 한 칸 짓지 않은 ‘에어비앤비’는 창업 6년차에 192개국 3만4천개의 도시에 60만 건의 민박집을 소개, 1천100만명 에게 이용토록 하여 기업가치 평가액이 100억 달러에 이르렀다(하얏트호텔은 84억 달러).

이 책에서 디아만디스는 기하급수 산업이 거치게 되는 디지털화→잠복기→파괴적 혁신→무료화→소멸화→대중화 과정을 설명하고, 파괴적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유망 기술인 네트워크와 센서, 무한 컴퓨팅, 인공지능, 로봇공학, 유전체학 및 합성생물학의 현재와 미래를 상세하게 짚어본다.

그가 설명하는 기술의 진보과정을 들여다보자. ‘디지털화’ 단계는 물리적 형태였던 제품 또는 프로세스가 디지털 형태로 바뀌는 것으로, 생물학·의학·제조업 등 그것이 무엇이든 디지털화할 수 있는 것이라면 컴퓨터 능력 상승 법칙에 따라 기하급수 곡선에 올라탈 수 있게 된다. ‘잠복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하급수적 성장을 눈치채지 못한다. 픽셀 수가 0.01이 0.02가 되고 0.04가 되는 것을 별것 아니지만 소수점을 넘어서는 순간 20번만 곱절이 되면 100만 배, 30번만 곱절이 되면 10억 배의 발전을 이루게 된다. ‘파괴적 혁신’ 기술이란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고 기존 시장을 파괴하는 모든 혁신을 말한다. 안타깝게도 이 단계는 언제나 잠복기가 지난 후에야 시작되기 때문에 새로운 원천기술은 위협적으로 보이기보다는 하찮게 보일 때가 많다. 코닥의 경영진도 디지털 카메라가 오랫동안 장난감 정도로 남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무료화’는 더 이상 그 제품이나 서비스로 돈 되는 사업을 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코닥의 경우 사람들이 더 이상 필름을 사지 않게 되면서 수익사업이 증발해 버렸다. 구글이 브라우저를 무료 배포하고 거기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떼돈을 벌어들이듯이 미끼 상품을 아예 무료로 나눠준다.

‘소멸화’는 제품과 서비스 그 자체가 사라지는 것을 뜻한다. 스마트폰이 생산되자 고화질 디지털카메라가 그것에 무료로 장착됐다. 1970~80년대의 고급기술이었던 HD급 캠코더, 화상회의, GPS, 음반 등 출시 당시 가격으로 치면 약 10억 원어치가 스마트폰 한 대에 다 들어 있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구입하면 필름과 카메라가 공짜로 따라오지만 여전히 스마트폰을 살 때는 비용이 든다. ‘대중화’란 이런 비용이 누구나 지불할 수 있고 이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낮아지는 것을 뜻한다.

리처드 포스터 예일대 교수는 S&P500 기업들의 존속기간이 1920년대에는 67년이었는데 21세기에는 15년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앞서 살펴본 연쇄반응의 후반부 3가지, 즉 무료화, 소멸화, 대중화가 하루아침에 기업들을 해체하고 업계에 파괴적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학은 일반기업들과는 조금 다른 위치와 역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러 난관에 직면해 있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니만큼 위의 6단계 모델에 견줘 보면 시사점을 찾을 수 있겠다. 디지털화 단계는 지났고 잠복기와 파괴적 혁신, 무료화 단계가 혼재하는 듯하다. 이러한 격변기에는 디아만디스가 책의 결론 부분에서 강조한 대로 ‘대담하고 도덕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 비전을 세워 판을 새로 짜고 파괴적 혁신을 이뤄낼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대학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새로운 고등교육 시스템을 구축해 사회 발전에 있어서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의 역할을 지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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