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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에세이 수상소감
학술에세이 수상소감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4.18 1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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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부족함과 열망을 새삼 깨달으면서
윤대웅(최우수상)

원고를 제출하고 나서도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앞으로 더 발전시켜 나가고 싶고 그래야만 할 글에 좋은 평가를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글의 현재 완성도가 아니라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에, 요컨대 아직 뚜렷하게 빛나는 별자리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여기저기 흩뿌려져 미래를 기다리며 나지막이 숨 쉬고 있는 단초들을 눈여겨봐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긴장이 풀어질 때 솟아나오는 꿈의 형상들이 인간 정신의 중대한 비밀을 숨기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에세이의 형식에서 사유에 대한 문법의 요구가 조금 누그러질 때 우리는 덜 우회하고 근본 질문들에 과감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아직도 얼떨떨한 기분으로 학계에 입문하려 애쓰고 있는 수준에 불과합니다만, 저로서는 원체 실험적인 작업들과 뭔가 만들어내는 일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까닭에 에세이의 형식이 열어준 자유로운 글쓰기의 기회가 반갑고 즐거웠습니다. 저는 시간이라는 대주제를 윤리의 문제와 연결 지음으로써 늘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을 드러내보고 싶었습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착취하고 살해하기까지 하는, 이 ‘자연스럽게’ 자행되는 비극들의 본성에 대해 묻고 싶었습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부족함과 열망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은 예기치 않은 선물이었습니다. 김상환 지도교수님과, 많은 깨달음과 자극과 동기를 부여해준 대학원 학우 분들께, 평소에는 고백하기 쑥스러우니 이 자리를 빌어서나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4월의 광저우, 봄우뢰 소리를 듣다가
이두은(최우수상)

梅雨 내리는 4월의 광저우(廣州), 당선 소식은 봄우뢰와 함께 喜雨로 내립니다. 봄물이 지고 덩달아 마른 가슴이 불어납니다.
시간, 이 막연한 주제를 잠시 뒤로하고 문을 나섭니다. 교정의 야자수는 배흘림기둥처럼 미끈하고 흐벅진 몸통을 자랑합니다. 수천 주의 푸른 기둥이 들어 올리는 하늘은 그 자리 그대로 무량수전이 되고 나는 몇 번이고 기둥만 돌다 돌아옵니다.  몸통마다 상처처럼 새겨진 나이테를 몇 번이고 세어 보려 했건만 시간의 둘레 앞에 그만 아뜩해집니다.
밖은 아늘아늘 꽃비가 한창입니다. 紅棉花 지는 꽃길 사이 달팽이 한 마리, 바쁜 세상의 속도에 아랑곳없이 제 갈 길을 갑니다. 생략과 편리로 점철돼 가는 오늘 이 시대에 온몸으로 밀고 가는 저 우직함을 배우고 싶습니다.

수직으로 솟구치는 나무의 시간이나, 수평을 밀고 가는 저 달팽이의 시간 모두 제게 한 가지 가르침을 줍니다. 그것은 誠이라는 한 글자, 그 참됨에 있을 것입니다. 요령도 남다른 재주도 없이 홀로 굵어가는 기둥과 말없이 기어가는 달팽이, 그것은 과정이자 이미 하나의 경지일 것입니다.
어쭙잖은 제 글을 다시 읽자니, 설익은 생각들이 자리 잡지 못했고 또 처음과 끝을 관통시키는 힘이 모자람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入室은커녕 升堂도 하지 못해 문밖을 서성거리던 제게 수상의 영광을 안겨주심은 더욱 분발하라는 면려와 당부로 여겨 정진 또 정진하겠습니다.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패기 있게 도전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思惟
임일형(우수상)

에세이라는 생소한 장르가 주는 글의 경계의 모호함 속에서 에세이를 쓰는 내내 스스로 경계해야만 했다. 나의 에세이 주제는 국제형사재판소 로마규정 제11조에 명시된 시간적 관할권(Jurisdiction ratione temporis)에 관한 비판적 접근이었다. 국제형사재판소 로마규정의 시간적 관할권의 제한은 국내 형법의 불소급원칙과 유사해 보이지만 사실상 다른 개념이다.
에세이에서 다룬 종군위안부 문제처럼 명백한 인권 침해가 계획적이고 중대한 수준으로 발생했다고 해도 인위적으로 시간의 한계를 정해 처벌하지 않는다는 다소 어색한 조항이다. 불처벌(impunity) 상태를 해소하려 정의를 구현한다는 로마규정의 근본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간적 관할권은 당사국들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싶었다. ‘시간’이라는 주제는 인권과 국제형사법 전공 지식과 더불어, 깊이 사랑했던 사람과의 추억에 대한 가슴 시린 그리움의 감성도 큰 도움이 됐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사유의 부족과 문장력의 한계로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던 처음의 패기가 자못 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수상으로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릴 뿐이다. 더불어 남의 생각을 빌려와 각주의 울타리 속에 나의 고유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스스로 제한하는 기계적 글쓰기 훈련에서 잠시 벗어나 학술에세이를 통해 신선한 지적 카타르시스를 맛볼 기회를 주신 교수신문 편집국에도 감사드린다. 한국정부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기 전까지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께도 감사드린다.

 

나에게 ‘의미있는 시간’이었던 학술에세이 집필 과정
홍예리(우수상)

나는 서양철학 중에서도 분석철학 전공자다. 논리적이고 형식적인 글에 익숙한 탓에 ‘학술에세이’에 해당하는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모전을 아예 포기했다.
공모전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릴 무렵인 3월 21일, 중학교 친구들 두 명과 함께하는 독서모임이 있었다. 공모전은 이미 포기한 때였지만, 우연히도 이야기는 ‘시간’에 대한 것으로 흘러갔다. 이십대 후반 싱글 여자들 세 명이 모였으니 자연스럽게 여자들의 시간과 우리의 삶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 때서야, 나는 내가 시간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도 많은 생각들을 아무렇게나 펼쳐놓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 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머릿속으로 글의 개요를 짰다. 다음날까지 밤을 새고 글을 썼다. 나는 우리들이 나눈 이야기를 의미 있게 엮은 글이 나오기를 바랐다.

글을 쓸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바로 ‘경중의 조절’이었다. 지나치게 무거우면 논문이 되고, 지나치게 가벼우면 신변잡기적 에세이가 돼버리니,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야했다. 또한 흐름이 끊어지지 않고 어색하지 않아서 읽기 쉬운 글이어야 했다. 
완성된 내 글은 여전히 미흡하다. 깊이가 부족하고 아직도 수정해야 할 부분들이 보인다. 하지만 처음 두 번 포기했을 때보다 그나마 조금 나아진 점이 있다면, 그건 친구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 덕분이다. 수상을 하지 못한다 해도 나는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부족한 이 글에 큰 상을 주셔서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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