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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학술도서 주요 흐름 읽기
2002년 학술도서 주요 흐름 읽기
  • 이덕환, 정선태 교수
  • 승인 2002.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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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선봉장, 생명과학 休眠중…東方學에서 대중문화까지

다소 이른 감은 있지만 학술출판 한해를 돌아본다. 전체적으로 지난해보다 양서가 줄었다는 느낌은 있지만 여전히 단행본 서가는 양적으로 풍부했고, 이 가운데 빛나는 저술들도 많았다. 인문사회 분야를 이끈 화두는 단연 동방학이었다. 중앙아시아와 이슬람 문명권에 대한 인류학적 관심과 동아시아 근대의 역동성을 추적하려는 각론이 쏟아져 나왔다. 자연과학계는 생명과학이 주춤한 가운데 첨단물리학이 그 신비한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 자연과학 분야 주요 저작들
물리학 선봉장, 생명과학 休眠중…유능한 국내 저술가 육성 아쉬워
이덕환 / 서강대·화학과

심각한 이공계 기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과학 분야의 출판이 충분히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그나마 외국의 베스트셀러들이 곧바로 소개되고, 번역과 편집의 수준이 눈에 띄게 향상된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내용보다 치장에 지나치게 낭비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특정 분야에 대한 과도한 편중과 검증된 고전을 외면하는 관행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국내 과학 저술가 활동 저조해
올해는 특히 국내 과학 저술가의 활약이 저조했다. ‘달팽이’(지성사 刊)를 내놓은 권오길 교수, ‘과학 그 위대한 호기심’(궁리 刊)을 편집한 최재천 교수, 그리고 ‘로켓 이야기’(승산 刊)를 펴낸 채연석 박사가 활약을 계속했고, 인터넷에서 활동하던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궁리 刊)의 이은희 씨와 ‘수학의 유혹’과 ‘축구공 위의 수학자’(문학동네 刊)의 강석진 교수가 새로 등장한 것이 고작이다. 과학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이 매우 열악한 형편에서 외국의 베스트셀러 위주의 출판은 자칫 심각한 소화불량을 일으키고 과학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확산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넓은 안목과 정확한 전문 지식을 갖춘 유능한 과학 저술가의 육성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절실하다.
물리학은 여전히 과학 분야 출판의 핵심이다. 세상이 무엇으로 이뤄져 있고,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알아내려는 물리학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왔고, 인문학과 예술을 비롯한 다른 분야에도 크게 영향을 미쳐왔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20세기 물리학의 상징이었던 상대성 이론과 양자론을 넘어서서 초끈, 혼돈, 복잡계와 같은 새로운 이론들이 등장하면서 이에 대한 해설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에 발간됐던 스티븐 호킹의 ‘호두 껍질 속의 우주’(까치 刊)에 이은 브라이언 그린의 ‘엘러건트 유니버스’(승산 刊), 콜의 ‘우주의 구멍’(해냄 刊), 스튜어트 카우프만의 ‘혼돈의 가장자리’(사이언스북스 刊)가 모두 그런 책들이다. 특히 ‘엘러건트’는 세상이 10차원 또는 11차원의 ‘끈’으로 이뤄져 있다는 최신 물리 이론을 집중적으로 소개한 명저로 꼽히고 있다.
로저 펜로즈의 ‘우주 양자 마음’(사이언스북스 刊), 탑 쿼크를 발견했던 한스 그라스만의 ‘쿼크로 이루어진 세상’(생각의나무 刊), 빅뱅 이론의 창시자 조지 가모브의 ‘물리 열차를 타다’(승산 刊)도 역시 현대 물리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역작들이다. 인터넷 웹 문서에서 찾아낸 ‘척도 없는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개념을 인간의 사회에 직접 적용해보려는 바라바시의 ‘링크’(동아시아 刊)도 흥미롭지만 설익은 과일을 너무 일찍 포장해서 시장에 내놓은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하다.

‘미래’의 생명학보다는 ‘성찰’의 생물학
요즈음 대학 신입생들 사이에 소리 없이 번지고 있는 수학의 인기는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하게 이어져 왔던 수학 분야의 출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올해도 역시 기하학의 변천사를 다룬 믈로디노프의 ‘유클리드의 창: 기하학 이야기’(까치 刊), 무한의 신비에 빠졌다가 정신병으로 사망했던 칸토의 안타까운 일생을 담은 ‘무한의 신비’(승산 刊), 20세기 가장 뛰어난 수학자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괴델’(몸과 마음 刊)이 돋보였다. 그밖에 ‘신의 방정식’(지호 刊), ‘0의 발견’(사이언스북스 刊), ‘수학이란 무엇인가’(경문사 刊) 등도 딱딱하고 고리타분하다는 수학에 대한 인식을 씻어낸 성공작이었다.
올해는 그 동안 장밋빛 꿈과 함께 온갖 두려움을 함께 안겨 주었던 생명과학 분야의 출판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 동안 봇물처럼 쏟아져나왔던 생명과학의 교양서들이 도리어 청소년들에게 마치 난치병 치료제 개발이 현대 생명과학의 유일한 목표인 것처럼 잘못 인식시켜 주기도 했다는 점에서 약간의 휴식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 ‘유전자의 세기는 끝났다’(지호 刊)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와 동물 복제로 들떠있던 마음을 달래주는 훌륭한 책이다. 인간의 성에 대한 생물학 이론들을 비교해서 소개한 ‘매트 리들리의 붉은 여왕’(김영사 刊), 비판적인 시각에서 진화론을 철학적으로 고찰한 에른스트 마이어의 ‘이것이 생물학이다’(몸과마음 刊), 현대 유전학의 발전을 위해 온몸을 바쳐 희생하고 있는 미물을 소개한 ‘초파리’(이마고 刊)가 생물학 본연의 모습을 차분하게 보여주었다.
현대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준 아홉 가지 화학적 발명의 역사를 소개한 ‘화학의 프로테메우스’(가람기획 刊)가 화학 분야의 유일한 성과다. ‘앞으로 50년’(생각의나무 刊)은 과학 분야 출판에 감초 격으로 등장하는 미래에 대한 예언서로는 비교적 신중하게 접근한 것이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50여명의 과학자와 신학자들의 글을 모은 ‘21세기의 신과 과학 그리고 인간’(두레 刊)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환경 문제의 해결에 과학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박이문 교수의 ‘환경철학’(미다스북스 刊)도 과연 현대 과학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준다.

● 인문사회과학 분야 저작 엿보기
東方學에서 대중문화까지 새로운 글쓰기 시대…내공과 깊이가 문제
정선태 /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소 연구원·국문학

2002년 한 해 동안 인문학 관련 서적들의 면면을 보면 위기를 돌파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물론 번역서들에 치여 제대로 모습이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적지 않긴 하지만, 그럼에도 소장학자들을 중심으로 전문적 지식에 갇히지 않고 학문의 행동반경을 넓히려는 고심들을 읽어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논문식 글쓰기’에서 벗어나는 것, 그러니까 전문적 지식의 소통 범위를 새로운 글쓰기 전략을 통해 확장하려는 수고야말로 위기를 말하기 전에 지식인들이 치러야 할 대가라 할 수 있을 테다.
2000년 4월 탁석산의 ‘한국의 정체성’을 첫 권으로 발간하기 시작한 ‘책세상 문고’는 올해 들어서도 정준영의 ‘텔레비전 보기-시청에서 비평으로’, 조현범의 ‘문명과 야만’, 홍성욱의 ‘파놉티콘-정보 사회 정보 감옥’, 정철웅의 ‘역사와 환경-중국 명청시대의 경우’ 등 얇지만 굵직굵직한 테마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2002년 들어 현재까지 간행한 것만도 14권에 이르는데, 이 문고들의 강점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 지식들을 새로운 글쓰기 방식으로 전달함으로써 독자층을 확장하고 나아가 학문적 소통의 부재를 타개할 가능성을 열어보인다는 점이다.
문학과지성사의 ‘서남학술총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로 동아시아학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이 시리즈는 올해 들어 이혜경의 ‘천하관과 근대화론: 양계초를 중심으로’, 이보경의 ‘文과 노벨의 결혼’, 김화경의 ‘일본의 신화’ 등을 그 목록에 더했다. 여기에 한일공동연구총서 세 번째 권인 ‘국가이념과 대외인식’(아연출판부 刊)도 이 분야의 체계적인 연구로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한편 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연구가 척박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서 중동과 이슬람지방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는 우리의 관심 확대와 인식을 심화에 도움을 준다. 이슬람문명 전문 연구자 정수일의 ‘문명교류사 연구’(사계절 刊), ‘이슬람문명’(창작과비평사 刊), ‘문명의 실크로드’(효형출판사 刊) 등 일련의 저술이 단연 눈에 띈다. 이와 함께 ‘중앙아시아’ 연구의 선두주자 김호동의 ‘동방기독교와 동서문명’(까치 刊), 이성형의 ‘라틴아메리카: 영원한 위기의 정치경제’(역사비평사 刊)도 놓칠 수 없다.
전문연구자가 아닌 사람이 ‘상식’의 차원을 넘어선 철학 관련 저작을 읽어내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지극히 전문적인 논문이나 난해하기 짝이 없는 번역서를 바라보며 입맛만 다시다 만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학계와 학생들 사이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현대 프랑스철학의 쟁점들을 소화해 전달해주는 김상환의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 라캉연구자들의 본격적인 공동연구인 ‘라캉의 재탄생’(이상 창작과비평사 刊), 김상봉의 ‘나르시스의 꿈’(한길사 刊), 서동욱의 ‘들뢰즈의 철학’(민음사 刊)과 이진경의 ‘철학의 외부’(그린비 刊) 등은 서양철학의 수용과 재해석이라는 측면에서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양철학과 동양사상의 접목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김형효의 ‘하이데거와 화엄의 사유’(청계 刊)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중문화연구가 부쩍 관심을 끄는 상황에서 이동연의 ‘대중문화연구와 문화비평’(문화과학사 刊)은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을 확충 심화하는 데 유효한 저작이다. 그리고 기호학연대가 공동으로 집필한 ‘기호학으로 세상읽기’(소명출판 刊)도 우리 사회의 다양한 코드들을 해독하는 데 길라잡이 노릇을 톡톡히 할 것이며, 지리학자 최병두가 쓴 ‘근대적 공간의 한계’(삼인 刊)는 지리학이라는 비교적 낯선 시각으로 우리 사회와 세계를 읽는 설레임과 즐거움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이와 더불어 한문학의 ‘대중화’에 고심하고 있는 정민이 한글세대를 위해 번역한 이덕무의 소품 ‘한서이불과 논어병풍’(열림원 刊), 동의과학연구소가 심혈을 기울여 옮긴 ‘동의보감’(휴머니스트 刊)도 인문학의 길을 넓히는 데 기여할 것이다.
위에서 본 것만으로도 2002년 들어 우리의 인문학은 다양한 측면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소통가능성을 배가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들 말고도 인문학의 생명에 생기와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 애쓰는 학자들은 얼마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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