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19:15 (일)
너무 일렀던 그 첫 새벽의 기억
너무 일렀던 그 첫 새벽의 기억
  • 교수신문
  • 승인 2016.01.04 18: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술에세이 공모전 부활을 환영한다

 

그것은 신호탄이기도 했다. 그때 이후로 대학사회에서는
글쓰기가 화두로 떠올랐다. 글쓰기를 신입생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학제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10년도 더 된 일이다. 2001년 여름쯤에 <교수신문>이 ‘제1회 학술에세이 공모전’을 기획했다. 총상금 2천만 원이 넘는 공모전이었다. 문예지의 문학작품 공모나 널리 알려진 문학상을 제외하고는 처음 보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발표는 <교수신문> 창간 10주년 기념호에 실린다고 했다. 이제 학자도 신문에 혹시 실려 있을지도 모를 자신의 작품을 기대하며, 새벽 가판대 주위를 이리저리 살피는 문학청년의 설렘을 가져도 좋은 것일까. 학술 분야의 신춘문예, 당시 삼십 대 초반의 내게 학술에세이 공모전은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그런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다. 학술에세이 공모전은 단 한 번 시행되고 마치 풍문처럼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기획의도가 시대를 앞서 너무 일찍 개화한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학술 담론의 대중화’, ‘21세기 문명에 대한 사유의 모험’, ‘학제적 대화의 향연’, 이것이 공모전의 기획의도였다. 지금 오늘날 사회에서 회자하고 있는 주요 의제들이, 이미 10년 전 학술에세이 공모전의 기획의도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신호탄이기도 했다. 그때 이후로 우리 사회, 특히 대학사회에서는 글쓰기가 화두로 떠올랐다. 각 대학에서 글쓰기를 신입생의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학제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암기가 아닌 깊은 사유와 창의력의 중요성이 주목받았다. 또 좀 어설프기는 하지만 인문학이 대중 속으로 나아가 함께 호흡하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학술에세이라는 낯선 명칭 속에 그 모든 문제의식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

학술에세이 공모가 얼마나 의미 있는 발자취였는지는 10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면 더욱 명확하다. 당시 필자와 함께 최우수상을 받았던 분은 이도흠 박사다. 그는 지금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상임의장으로, 종교계를 포함한 한국사회 전체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도록 독려하고 있는 대표적인 분이다. 그리고 나무 연구로 뜬 사학자로 널리 알려진 강판권 계명대 교수 역시 학술에세이 공모전 수상자였다. 그는 여러 편의 대중적인 저술을 통해 나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환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산림복지정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학술에세이 공모전 수상자는 강신주 박사다. 그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요즘 출판계에서 가장 눈독 들이고 있는 인문학 분야의 필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10년이 지난 후에도 이만큼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 인물들을 배출한 공모전이 또 있을까 싶다. 게다가 단 한 번 시행된 것을 생각하면 감히 경이롭다고 말하고 싶다. 위에서 예로든 세 분 외에도 다섯 분이 더 있다. 저마다 자신의 글처럼 살고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교수신문>의 학술에세이 공모는 마치 10년 후를 미리 내다보기라도 했던 것처럼, 단 한 번 배출했던 수상자들이 초심을 잃지 않고 지금도 학술에세이 공모전의 기획의도를 그대로 담아내는 삶을 사는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도 학문은 결국 글이다. 학문은 글을 통해 결실을 보고, 글을 통해 공유되며, 글로써 세상과 접목된다. 글은 힘이다. 깊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그렇게 살아낼 힘을 속으로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깊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길러내야 하기에, 교수신문사의 학술에세이 공모전의 부활은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새해 첫새벽에 설레는 가슴을 안고 일간지 가판대 주위를 서성이는 문학청년처럼 그런 설렘을 다시 안게 될 젊은 학술연구자들이, 나는 너무 부럽다.

 

 

박재현 동명대 불교문화콘텐츠학과
필자는 ‘제1회 학술에세이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자로, 서울대 철학과에서 看話禪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로 선불교를 주제를 연구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 근대불교의 타자들』 등 다수의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