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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디지털 매체 시대, 한국의 매체담론과 매체예술을 말하다
포스트 디지털 매체 시대, 한국의 매체담론과 매체예술을 말하다
  • 교수신문
  • 승인 2015.12.0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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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개관페스티벌 참가기
▲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이 개관기념으로 ‘테크노닉스’를 주제로 페스티벌을 개최해 눈길을 끌었다.


통합적 매체학을 구성하기 위해 먼저 기존의 이론들을 재맥락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매체예술을 중심으로 로우·하이테크의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지금, 매체를 다루는 담론 또한 재맥락화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창제작센터)가 드디어 지난달 25일 광주에서 개관했다. 많은 우여곡절을 뒤로 한 채, 문화창조원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25일부터 28일까지 개관 페스티벌이 열렸고, 이 기간 동안 매우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됐다.

과학기술과 예술의 창의적 융합을 중심 주제로 하는 문화창조원답게 예술과 기술이 결합된 다양한 전시와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전시와 공연 외에도 많은 프로그램, 즉 토크, 포럼 그리고 워크숍 등이 개최됐다. 관객들은 프로그램 일정표를 나침판 삼아 자신의 관심에 따라 전시도 보고 공연도 보고 또 학술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국의 참가자들과 관객들에게는 이런 식의 구성이 다소 낯설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관 페스티벌에서 시도한 다양한 형식들의 융합은 낯설면서도 동시에 신선했다. 보기에 따라서 산만할 수도 있지만, 산만함 속에서도 중심은 있었고, 이 행사에 주의 깊게 참여한 참여자들은 그 중심이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중심은 바로 페스티벌 주제인 ‘테크노닉스(tektonics)’다.

테크노닉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개념일 것이다. 본래 테크토닉스는 장인(匠人, tekt?n, craftman, artisan)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장인이라는 의미를 어원으로 가지고 있는 테크토닉스를 전체 개관 페스티벌의 주제로 선정한 것에도 알 수 있듯이, 전체 프로그램은 장인을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이 어떻게 결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예술과 기술의 결합을 ‘예술공학’이라는 이름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문화창조원 창제작센터로서는 적절한 주제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과 예술의 상호 작용

사실 과학기술과 예술의 상호 작용을 이야기할 때 이를 수행하는 자의 정체성, 즉 이를 수행하는 사람이 과학기술자인가 또는 예술가인가라는 문제는 늘 제기된다. 이 문제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어떤 입장을 택하는가에 따라서 한쪽에서는 예술의 종말을 또 다른 한쪽에서는 예술의 확대가 논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묘한 상황 속에서 최근 다시 ‘장인’을 중심으로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만드는 손’이 동시에 ‘생각하는 손’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술가인가 아닌가, 또는 과학기술자인가 예술가인가라는 논쟁의 틈새에 장인이 등장한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전체적인 프로그램 속에서 조금은 이질적인 포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포스트 디지털 매체시대에서의 매체담론과 한국 매체예술의 현황’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포럼이다. 형식이 페스티벌에 참가한 다른 프로그램들과 사뭇 달라 이질감이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전체 프로그램과 유기적 관계에 놓여있는 주제를 다뤘다고 볼 수 있다. 과학기술과 예술 그리고 인문학의 융합이 이야기될 때 가장 많이 논의되는 영역이 바로 매체예술인데, 매체기술과 예술이 결합해서 인문학적 콘텐츠를 보여줄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학기술자 또는 예술가, 아니면 이번에 주제가 된 장인들의 경계를 논의할 때도 매체예술이 중요한 예로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포럼을 준비하고 진행한 팀은 문화창조원에서 운영하는 프로젝트 랩(lab)인 ‘매체담론연구랩’이다. 나는 이 랩을 담당하는 펠로우로서 이 포럼을 준비했다. 포럼 주제를 이렇게 정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또 포럼 형식에 대해서도 그러했다. 특히 ‘한국 상황’을 주제로 하고 또 동일한 영역에서의 전문가들이 아니라, 매체라는 공약수를 가진 다양한 영역들의 전문가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논의하는 방식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이 포럼 이전에 진행한 세미나들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이번 광주에서 열린 포럼 이전에 매체담론연구랩은 이미 포스트 디지털 매체와 관련된 세 번의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다. 이 세 번의 세미나도 포럼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매체적 상황에서 주요문제가 무엇이며, 또 매체예술의 상황은 어떠한지 논의하고자 마련된 장이었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매체철학 또는 미학, 커뮤니케이션 이론, 미술비평과 기획 그리고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매체담론과 매체예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문제의식의 공유와 이론의 재맥락화

물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분야에서 그것도 자신의 언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산만함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산만함을 문제로 느끼기 전에, 이러한 모임이 지닌 낯설음과 신선함이 먼저 강하게 다가왔다. 같은 주제에 대해 또는 동일한 문제의식을 대해 이렇게 서로 다르게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세미나들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은 이런 모임이 정말 필요하다는 것은 알았다. 즉 ‘따로 또 같이’ 하나의 우산 아래로 모일 수 있는 ‘통합적인 매체학’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던 것이다. 이러한 통합적 매체학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굳이 새로운 이론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이보다 먼저 기존의 이론들을 재맥락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매체를 중심으로 재매개가 논의되고 있고, 매체예술을 중심으로 로우테크와 하이테크의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지금, 매체를 다루는 담론 또한 재맥락화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 포럼에서 모든 발표자들이 동일한 형식으로 발표할 필요도 없었으며, 반드시 합의된 결론을 내릴 필요도 없었다. 그저 문제의식만 공유하면 됐다. 그 문제의식은 바로 ‘포스트 디지털’이었다. 포스트 디지털은 한 마디로 말해서, 이전과는 다르게 스마트한 매체가 기반이다. 이 포럼의 발표자들은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이 시대의 특징들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나는 매체철학(미학) 이론을 중심으로 「매체담론의 재맥락화의 필요성」이라는 글을 통해 전체적인 문제를 제기했고,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는 김성재 조선대 교수(신문방송학과)가 한국에서 포스트 디지털 매체가 어떻게 규정되고 있는지를 살폈다. 그리고 매체예술이론과 관련해서는 이원곤 단국대 교수(서양학과)가 한국의 매체예술사를 중심으로 발표를 하고, 김장연호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집행위원장이 아날로그 비디오예술에서 출발해 디지털 예술을 넘어 포스트 디지털 예술을 한국작가들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육근병은 작가적 관점에서 바라 본 매체에 대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포럼의 또 다른 큰 주제는 ‘한국매체예술의 현황’이다. 문화창조원의 개관페스티벌은 국제적인 행사다. 그것도 단지 이름만 국제적인 행사가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실질적인 국제 행사다. 이 행사를 위해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작가, 기획자 그리고 이론가들이 광주에 모였다. 물론 이들과 함께 포럼을 구성해서 논쟁을 했었어도 매우 재미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매체담론랩은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이들에게 한국의 매체담론과 매체예술의 현황을 알리는 길을 택했다.

그들의 이론을 가지고 논쟁하고 있지만, 우리 나름대로의 이론적 맥락과 현황이 존재하므로 이를 제대로 알릴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와서 이야기만 하지 말고, 이 곳, 즉 한국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이러한 목적과 의도가 잘 전달됐는지 또는 성공적으로 전달됐는지는 모르겠다. 포럼 자리에 많은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전달됐다고 말하기 힘들 수 있다. 그러나 성공여부만을 따지기 전에, 이 포럼이 갖는 의의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늘 이런 행사가 열리는 서울이 아니라 광주에서, 그리고 늘 이런 행사에 주인공은 외국의 유명한 명망가(?)였는데, 한국의 전문가들이 중심이었다는 점을 말이다. 바로 이러한 점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앞으로의 방향성을 모색할 때, 염두에 뒀으면 한다. 아시아 문화의 도시로서의 광주는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심혜련 전북대 과학학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매체담론랩 펠로우로 참여한 필자는 베를린 훔볼트대에서 발터 벤야민의 매체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우라의 진화’라는 주제로 책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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