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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대학에 安全地帶가 있을까?
과연 대학에 安全地帶가 있을까?
  • 이연도 서평위원/중앙대 교양학부·철학
  • 승인 2015.11.3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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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이연도 서평위원/중앙대 교양학부·철학
▲ 이연도 서평위원

을씨년스러운 늦가을이다. 11월에 때 아닌 장마가 계속되고, 추적추적 내리던 가을비는 이제 싸락눈이 돼 흩날린다. 연일 내리는 눈비에 수확해야 할 작물들이 채 마르지 못하고 밭에서 썩어가고 널어둔 곶감은 곰팡이가 슬어 떨어진다. 먹을 물이 부족할 정도로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더니, 이젠 때 아닌 가을장마로 농민들의 속이 타들어간다. 사람 사는 세상이 팍팍해지면 자연도 그에 영향을 받는 것일까.

한무제 때 유학을 국교화한 董仲舒는 자연의 이상 징후를 하늘의 경고로 해석했다. “災異는 군주의 잘못에서 생긴 것이다. 군주가 잘못을 범하면 하늘은 자연 재해로 경고한다. 그래도 군주가 자신의 잘못을 고치지 않으면 괴이한 변고로 세상을 놀라게 한다. 이 또한 두려워하지 않으면 결국 하늘의 재앙이 이르게 된다.”(『春秋繁露』) 군주가 세상을 잘못 다스리면, 자연의 異常을 통해 그를 견책한다는 ‘天譴說’의 요지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엘니뇨 현상이라는 과학적인 설명이 있긴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하늘도 이 세상의 도리 없음에 분노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역사교과서 國定化 문제로 들썩이던 나라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상으로 잠시 소강 상태에 빠졌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치가의 죽음은 그와 시대를 함께 했던 사람들의 가슴에 지난 시간의 굴곡을 절감하게 만든다. 유신과 민주화 시대를 관통하는 그 시절,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꿈꾸고 살아왔던가. 80년대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은 최근 방영되는 「응답하라 1988」이나 「송곳」이 가슴에 새삼스런 먹먹함으로 다가올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1988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마치 사극 보듯 한다는 말에 실소를 터트리다가, “그 땐 우리가 어렸었지”란 「송곳」의 대사에 마음이 찔려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모른다.

국정화 프레임에 갇혀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 대학 사회에 큰 변화를 줄 법안이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 ‘대학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안’과 흔히 ‘강사법’으로 불리는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지난 주 <교수신문>의 설문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대다수의 교수들은 ‘대학 개혁보다 교육부 개혁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강사법 역시 당사자인 시간강사의 93.9%가 시행을 반대하고 있다. 문제는 칼자루 쥔 사람이 이러한 여론에 모르쇠로 일관 한다는 것이다. 대학 보직교수의 73.2%가 ‘강사법’ 시행을 반대하고 있지만, 실상 대학본부는 이 법안의 시행에 대비한 세부안을 이미 마련해 두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이미 내년 1학기 강의시간표가 학과장이나 주임교수에게 전달된 상태다. 공식적인 지침은 아직 발송되지 않았지만, ‘강사’ 배정의 기본적인 원칙은 암묵적으로 내려져 있다. 충분히 예상되는 가장 현실적인 모습은 전임교원의 강의시수 증가와 강의전담교수 충원, 그리고 시간강사의 대량 해고이다.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제도는 우리 대학사회의 일반적인 교수채용방식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는데, ‘강사법’ 시행은 그 흐름에 쐬기를 박을 것이다. “4대 보험이나 퇴직금 명목조차 없는 4개월짜리 계약서를 받아든 시간강사들”은 사라지겠지만, “1, 2년짜리 비정년 트랙교수들이 강의를 책임지는” 대학 시대. 최근 출간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309동 1201호, 은행나무)에서 저자는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보다 사람을 위하지 못한다면 참 슬픈 일”이라고 탄식했지만, 이젠 강의 자리 얻기조차 불가능해지는 시대가 온 것이다.

대학의 교육 지형을 변화시킬 수 있는 법안의 시행이 코앞인데도, 대학사회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전임교원은 자신의 일이 아니니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고, 힘없는 강사들은 벼랑에 몰린 사슴처럼 허둥대기만 한다. “작은 재능은 신의 가장 큰 저주”라는 문장이 있다(카슨 매컬러스, 「누가 바람을 보았을까요?」)

공부가 좋아 대학에 남은 이들이 가족의 생계조차 책임질 수 없는 현실에서 느끼는 자괴감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깊고 고통스럽다. 빈곤과 분노로 창백하게 벼려진 그들의 비수가 어디로 향할지 정말 걱정이다.

『빅픽처 2016』(김윤이 외, 생각정원)은 쌍방향 온라인 공개강좌인 ‘무크’가 활성화되면 15년 내에 미국대학의 50%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우리 대학은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강사법 시행이 시간강사들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이다. 대학에 안전지대는 더 이상 없다. 


이연도 서평위원/중앙대 교양학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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