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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혹은 숙명, 부르주아적 거짓에 대한 그로테스크한 풍자로 변화시키다
운명 혹은 숙명, 부르주아적 거짓에 대한 그로테스크한 풍자로 변화시키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11.16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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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_40강.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의 ‘플로베르 『마담 보봐리』’

지난 14일(토) 열린 ‘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 40강의 주인공은 플로베르의 『마담 보봐리』다. 원로 불문학자인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가 강연자로 나섰다.
김화영 교수는 서울대 불문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프로방스대에서 「알베르 카뮈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4년 <세대>지에 시 「과원」, 196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육성」이 당선돼 문단에 등단했다. 그 뒤 68문학 동인으로도 활동했다. 깊은 안목과 유려한 문체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학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 왔으며, 왕성한 저작활동으로 1999년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된 바 있다. 팔봉 비평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2011년에는 프랑스와의 문화 교류 및 우호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 공로훈장 오피시에(OFFICIER)장을 받았다.
저서로는 『프랑스 현대 소설의 탄생』(2012), 『소설의 숲에서 길을 묻다』(2009), 『발자크와 플로베르』(2000), 『문학 상상력의 연구―알베르 카뮈의 문학세계』(1998), 『문학 상상력의 연구』(1998), 『프랑스문학 산책』(1989) 외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는 『알베르 카뮈 전집(전20권)』, 『알베르 카뮈를 찾아서』,  『마담 보바리』, 『프랑스 현대시사』, 『프랑스 현대비평의 이해』, 『오늘의 프랑스 철학사상』 등이 있다.
이날 강연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는 작가가 정확하게 1851(30세)년 9월 19일에 쓰기 시작해 56개월(4년 7개월 11일) 뒤인 1856년 4월 30일에 완성한 작품이다(자필 원고의 표지에 기록된 날짜에 따른 계산이다). 『마담 보바리』와 관련해 그가 남긴 2천여 장의 원고는 평소에 자신의 모든 원고와 집필흔적들을 거의 편집광에 가까운 주의를 기울여 보관하고 기꺼이 친구들에 보여주기도 했던 작가 자신의 세심한 관리 덕분에 현재 루앙 시립도서관에 그 모두가 빠짐없이 보관돼 있다.

 플로베르는 이전의 낭만적인 서정성과는 관계를 끊어버렸다. 그는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타일’ 즉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라는 작가적 신념을 확고하게 따랐다.

플로베르가 『마담 보바리』의 집필을 통해서 과연  ‘무에 관한 책’의 실현에 성공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의 이상이 “모든 사건 사실들은 그 객관적 존재방식이 비워져 버리고 오직 어떤 의식의 현상들로 환원되어야 하며 오직 스타일만이 그 의식에 의미 있는 진실을 부여할 수 있다”(피에르 루이 레)는 것을 의미한다면 『마담 보바리』는 그 이상에 어느 정도 접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의 제목 : 『Madame Bovary, moeurs de province』

텍스트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주 제목을 가진 『마담 보바리』에는 ‘지방풍속’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그러나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능을 가진 부제는 책의 출판인에 의해 자주 누락되곤 했다. 독자들 역시 책의 ‘이름’인 『마담 보바리』에만 주목하고 부제를 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소설의 경우 부제 역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텍스트를 일정한 방향으로 해석하도록 유도하는 일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플로베르는 소설의 제목을 붙이는 데 있어서 혁신적인 방식을 택하지는 않았다. 그는 발자크의 원형을 따랐다. 『마담 보바리』는 그 부제의 한정을 받아 ‘풍속’과 ‘지방’ 속에 각인된다. 즉 특정된 지방과 풍속의 목소리는 소설을 텍스트인 동시에 하나의 사회로서 성립시킨다.

소설의 구성과 스토리

소설은 길이가 서로 다른 전체 3부로 구성돼 있다. 각 부는 인물들의 삶의 여러 단계를 그린다. 제1부는 샤를과 엠마의 어린 시절, 결혼, 토트에서의 생활이다. 제2부는 용빌에서의 생활, 3부는 용빌과 루앙을 오고 가는 엠마의 이중생활과 그녀의 죽음을 그린다. 각각의 부는 샤를과 엠마가 결혼 후 점진적으로 멀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사실들의 서술과 묘사는 부부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위기의 심각성이 높아짐에 따라 점점 더 그 길이가 길어진다. 소설은 엠마가 점차로 성격적 해체과정을 밟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 일종의 비극적 상황을 그리지만 그 어조는 매우 해학적이고 그로테스크하다. 여러 대목에서 어떤 운명의 힘이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톤이 고조되는 대목과 일상의 습관, 단조롭고 의미 없는 삶이 되풀이되는 시기가 서로 교차한다. 여러 장면, 인물, 사건, 사물들이 서로 대칭되거나 조응되도록 하는 장치들은 소설을 하나의 전체로서 통일시키는 역할을 한다.

시점의 전환과 소설의 구조: ‘우리’와 샤를

“우리가 자습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려니까 교장 선생님께서 어떤 평복 차림의 신입생과,큰 책상을 든 사환을 데리고 들어오셨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여기서 말하는 ‘신입생’은 장차 엠마의 남편이 될 샤를 보바리다. 그러니까 『마담 보바리』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주인공인 엠마가 아니라 열대여섯 살쯤 때의 샤를르 보바리다. 그리고 교실로 들어오는 샤를르를 지켜보는 시점의 역할은 소설 첫머리의 ‘우리’가 맡는다.
 
‘우리’로 시작한 소설은 샤를과 엠마 사이에 태어난 딸 베르트와 오메의 현재로 마감되고 있다. 소설의 집필 과정에 따르면, 작가 플로베르는 소설을 출판하기 직전에 갑자기 첫머리를 ‘우리는’으로 바꾸어 기술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인칭 복수 ‘우리(nous)’, 소유격 ‘우리의(nos)’는 소설의 첫 단어일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첫머리 7페이지(번역본 9페이지)에 모두 10번 출현하며 여러 곳에 산재한다.

『마담 보바리』의 ‘우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다짜고짜로 소설의 모두에 출현한 ‘우리’는 소설의 아프리오리요 허구의 기원이다. 그것은 말을 하는 나래이터인 ‘나’와 어린 시절 그가 소속된 학생집단의 표상이다. ‘우리’는 ‘나’가 소속된 청소년 시대와 관계가 있는 동시에 엘리트 부르주아 자식들이라는 계층을 지시한다. 이는 또한 차별과 배제라는 숙명적인 논리의 예감을 함축하고 있다.

대칭 대립 메아리 반사-쌍을 이루는 세계

쌍을 이루는 두 가지 항 사이의 균형, 마주보기, 메아리, 반사, 반복에 의한 결속, 통합의 실현이다. 쌍을 이루는 두 가지 항이 서로 간에 맺는 관계의 체계는 픽션 속 사건들에 필연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그 세계를 통일된 전체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우연으로 가득한 삶이 이러한 반복과 대칭의 체계를 통해서 재편되는 과정에서 필연이나 숙명의 환상이 조성될 수 있는 것이다. 『마담 보바리』에서 이런 대칭 대응 현상은 인물, 장소, 행동, 상황, 작품의 구조, 크고 작은 사물들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나타난다.

숙명의 소설, 그로테스크의 소설

플로베르는 『마담 보바리』가 그의 “심리 과학의 집성이 될 것이며 오직 그런 면에서 독창적인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소설의 결말은 미리부터 여주인공 엠마의 성격과 기질에 의하여 결정되고 또 그 성격과 기질 자체는 그녀의 성장 및 교육 과정과 주위 환경에 의해 규정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실제로 엠마의 성장 환경을 서술하는 데 제1부 제6장 전체를 할애한다. 엠마는 현재보다 미래나 과거에 더 집착한다. 미래는 모든 욕망과 환상의 시간이다. 그녀는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어떤 돌발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미래의 기대가 현재 속에서 실현되지 못하면 그 내면적 환상은 과거에 대한 향수를 비춘다.

플로베르는 엠마의 성격적 본질인 ‘보바리즘’을 통해서 19세기 초반을 물들였던 낭만주의를, 그리고 『마담 보바리』를 쓰기 이전 자신이 실제로 경험했고 아직도 자신의 내부에 잔존하는 낭만주의적 기질을 유감없이 해부해 보여주며 비판적 시선을 던질 수 있었다. 이처럼 성장 과정과 교육과 시대적 환경에 의해 결정된 엠마의 낭만적 욕구와 기질은 짧은 생애 동안 그녀의 환상과 감정과 행동을 지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는 극적인 행동보다는 여주인공의 심리분석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 이런 의미에서 『마담 보바리』에서는 어느 면 ‘결정론적’인 설정이 감지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숙명의 소설로 읽힐 수 있다. 숙명의 필연성은 앞의 시점전환에 대한 분석에서 보았듯이 소설의 입구와 출구에 위치한 저 어리석고 답답한 샤를에 에워싸인 채 소설 속의 수인이 된 듯한 엠마의 서술적 위치로도 상징되고 있다.

그러나 ‘숙명의 소설’을 이야기 하자면 무엇보다도 소설의 끝에 등장하는 샤를 자신의 ‘운명론’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엠마가 자살한 뒤 시장에서 우연히 로돌프와 마주친 샤를은 “이젠 더 이상 로돌프를 원망하지 않는다”면서 “태어나서 여지껏 한 번도 입에 담아본 적이 없는, 단 한마디 엄청난 말”을 한다. “이게 다 운명 탓이지요!(C'est la faute de la fatalit?!)” 그 말을 듣자 문제의 ‘운명을 인도한 당사자’인 로돌프는 “그런 처지에 놓인 사내가 하는 말 치고는 어지간히도 마음 좋게 들릴 뿐 아니라 우스꽝스럽기조차 했고 약간 비굴하게도 느껴졌다”고 생각한다. 아니 비판한다. 그런데 과연 로돌프는 그런 비판적 생각을 할 자격이 있기나 한 것일까. 이 소설에서 ‘운명(fatalit?)’라는 말을 먼저, 그것도 위선적 의도를 가지고 사용한 것은 로돌프 자신이었다. 여기서 ‘숙명’이란 로돌프의 상습적 수사에 불과한 것으로 결국은 『마담 보바리』를 그로테스크한 부르주아적 거짓에 대한 풍자의 소설로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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