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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문제에 대한 ‘로컬리티 인문학’의 어떤 대답
현실 문제에 대한 ‘로컬리티 인문학’의 어떤 대답
  • 북학 기자
  • 승인 2015.10.27 1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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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의인문학 국제학술심포지엄 ‘신자유주의와 로컬리티’

‘로컬리티’를 탐색해온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의인문학연구단(연구단장 김동철, 이하 로컬리티의인문학)이 지난 22일부터 이틀 간 부산대에서 ‘신자유주의와 로컬리티’를 주제로 제7회 국제학술심포지엄을 열었다. 로컬리티의인문학은 이번 심포지엄을 두고 ‘로컬리티’에 대한 근원적 재성찰의 장으로 의미를 매기면서, 로컬리티 인문학이 현실 사회의 문제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모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과연 어떤 구체적 논의들이 오갔을까. 로버트 오브라이언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의 기조강연( 「로컬한 것들을 연결하기: 21세기 노동국제주의의 구축」)과 문재원 부산대 HK부교수의 「호명되는 로컬리티, 분열증적 주체」의 주요 부분을 발췌했다.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의인문학연구단은 22일부터 부산대에서 제7회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사진제공: 부산대 로컬리티의인문학연구단

「로컬한 것들을 연결하기: 21세기 노동국제주의의 구축」로버트 오브라이언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남방노조연대회의(Southern Initiative on Globalization and Trade Union Rights, SIGTUR)는 남아공, 브라질, 아르헨티나, 인도, 한국, 호주 등 ‘남방’ 국가들의 좌파적 성향을 가진 노동조합들의 네트워크다. SIGTUR는 ‘새로운 노동국제주의’의 한 형태를 보여주는 예로서 제시돼왔는데, 이는 전통적인 형태보다 덜 관료적이고 더 행동지향적인 것이다.

데란티(Delanty)는 세계적 규모의 소통이 개개인들을 연결하는 새로운 커뮤니티 출현에 기여하기는 했으나 이러한 커뮤니티가 세계화의 힘에 저항하거나 특정 장소에 기반한 집단들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필자의 강연 맥락에서 논점은 이것이다. 곧 세계화에 대응해 출현한 새로운 노동 커뮤니티들이 과연 노동자의 자율성을 변호하는데 필요한 정치 세력을 동원할 수 있을만큼 강력할 것인가.

SIGTUR은 전형적인 국가간 노동조합단체(ICFTU 등)와 수평적인 노동 운동가 네트워크의 중간에 놓인 혼성 개체다. 국가 차원의 노동 자율성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남부’ 국가들에 기반한 몇몇 주요 노동조합이 정치적 행동을 지원하는 초국가적 노동자 정체성을 형성하고자 노력을 기울여 왔다. SIGTUR이 형성하려는 커뮤니티가 계급착취의 역사를 공유하는 데 기반해 있는 한편, 초국가적 정체성을 개발함에 있어 다양한 문제점들에 직면해 있다. SIGTUR의 경우, 성과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활동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확장하고자 애쓰고 있다. 회원단체들은 공동 정체성의 요소를 식별했고 공통된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아직 토대가 미약하고 다른 사건이나 단체의 그늘에 언제 가려질지 알 수 없다.

초국가적 노동자 커뮤니티가 국가 또는 로컬의 노동자 커뮤니티를 보충할 수 있다는 기대 속에 노동운동계와 운동권 학생들 간에 열띤 논쟁이 이뤄졌다. 대부분의 관찰자들과 운동가들이 노동집단은 자국 내에서나 초국가적으로 모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는 있으나 두 영역 모두에 시간, 에너지,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르다. 캐나다 자동차 업체 근로자 조합의 전 연구이사인 샘 긴딘(Sam Gindin) 등은 노동자 집단이 자국 내 문제에 집중해 국가기관들에 영향을 미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효과적인 국제주의는 자국 내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세력에 기반을 둬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SIGTUR의 조정자인 롭 람버트(Rob Lambert)를 비롯한 다른 인사들은 초국가적 활동이 노동자의 자국내 세력을 증진하는데 집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초국가적 활동은 국가 및 로컬 차원의 미진한 운동에 힘을 보태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초국가적, 국가적, 로컬의 커뮤니티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협력 방법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기 어렵다.

새로운 초국가적 커뮤니티를 창립하고 활동을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는 지속적인 정치적 투쟁을 벌이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노동자 커뮤니티의 입지는 전세계적으로 여전히 불안정한 실정이다. 그러나 노동자 커뮤니티들이 재건과 진보를 이루고 있다는 증거 역시 찾아볼 수 있다. 무역협정, 기업의 행동강령, 세계적 기본협약, 윤리적 교역시책, 채무경감, 반민영화 투쟁, 반노예제도 운동 등의 방식으로 노사관계를 규제하고 자본가의 착취를 경감시키려는 다소 소극적인 노력들은 세계적인 차원의 투쟁이 이제 막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노동자집단들이 기존 세계 여건 하에서 자율성을 회복하고 확장할 수 있을지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현 시점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세계화가 틀잡히고 있으며 여기에 새로운 형태의 로컬 및 초국가적 노동 커뮤니티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호명되는 로컬리티, 분열증적 주체」문재원 부산대 HK부교수

로컬리티는 불안정한 개체들의 연관 안에서 ‘생성 중’이다. 그러므로 보편논리로 정당화되는 로컬리티의 위험은 상주하며 이는 언제나 실천을 통해 부단히 갱신돼야 한다. 이 작업은 가타리의 ‘계열의 바깥으로 나와서……특이화의 과정으로 진입’하는 재특이화의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다.

오늘날 로컬발 담론들이 로컬로 환원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장소귀속화가 빠질 수 있는 ‘차이’에 대한 강박증은 ‘로컬리티의 방언화’에 갇히게 하고 이는 오히려 중심성을 강화하는 기제가 된다. 로컬은 부단한 ‘개체화 과정’에 올려져 있는데, 불균등성 자체, 준안정적인 상태가 개체화의 과정이다. 그러나 이때 로컬은 스스로 동일한 하나의 단독적 존재자가 될 수 없다. 이에 토포스에서 아토포스로의 운동방향을 제안한다.

아토포스는 장소를 뜻하는 그리스어 토포스(topos)에서 유래한 말로 접두사 a는 결여, 부정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 말은 어떤 장소에 고정될 수 없다는, 더 나아가 정체를 헤아릴 수 없다는 데에서 소크라테스의 대화자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부여했던 명칭이다(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아토포스가 장소를 벗어난다는 의미가 초월적인 기표로서의 장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토포스의 전략은 장소에 기반하지만, ‘몰적’(molar)체제를 해체하면서, 분자적 접속들의 인접적 배치를 통한 창조적 생성의 계기를 강조한 들뢰즈 가타리의 요청과도 만나며,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새로운 정체성의 생성과 접합을 이야기할 수 있는 라클라우 탈구(dislocation)와 연결 가능하다. 이러한 과정을 ‘정치적 주체화’의 문제틀(랑시에르)과 연결할 때 로컬 내러티브와 주체화는 ‘미학적 혁명’(랑시에르)을 포함할 수 있다. 기존의 견고한 경계들에 질문해 나가면서 틈새를 만들어 새로운 자기생성의 지대를 상상하는 일에서 ‘활력’의 로컬리티 서사를 전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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