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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
  • 김동우 세종대 전 교수·회화
  • 승인 2015.10.2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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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김동우 세종대 전 교수·회화
▲ 김동우 세종대 전 교수

최근 국정교과서 논란을 바라보며 아직 우리사회가 선진국이 되기에는 요원하다는 생각을 금치 못했다. GNP등 경제적 지표로만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에게 인격이 있듯이 국가에도 국격이 있지 않겠는가? 격이란 주변환경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에서 비롯된다.

수많은 대학에서 교수들 그리고 사회지도급 지식인들의 반대 성명과 역사학자들의 교과서 집필 거부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처럼 여론과 전문가 집단의 반대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막가파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 아직 우리사회는 제왕적 봉건사회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의 중요한 정책결정 과정에 여론과 그 분야의 전문가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은 속된 말로 칼자루 잡은 사람 마음대로 국가의 중대사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역사는 역사가의 손에 의해 쓰여진다는 말이 있다. 수학이나 자연 과학과 다르게 역사란 그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말일 것이다. 미국의 역사가 하워드 진은 ‘왜곡된 역사보다 누락된 역사가 더 사악하다’고 했다. 이 말은 선택되지 않은 기사는 뉴스가 아니듯 역사적 사실이 모두 역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곡된 역사는 언젠가 바로 잡을 수 있지만 누락된 역사는 은폐돼 사라짐으로 역사가의 사료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사실판단과 관계없이 역사기술에서  무엇이 어떤 볼륨으로 다루어지는가는 역사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적 요소임으로  여러 역사가들의 다양한 해석을 배제하고  한 방향의 역사 교과서를 전국의 학생들에게 가르치게 하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독단인 것이다. 온 국민이 하나의 역사관을 가져야한다는 전체주의적 발상이 도대체 이 21세기에 가능한 일인지 모를 일이다.  다양성이 인정되지 못한다면 과연 민주국가라 할 수 있겠는가?

고시가 확정되기도 전에 긴급한 국가 재난에 쓰여지는 예비비에서 교과서 예산을 편성해 15개월 만에 뚝닥 만들어 2017년 3월 부터 교육현장에서 사용하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는 2017년은  박근혜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이고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임으로 이것에 맞추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백번 양보해 현재의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면 충분한 사회적 여론수렴을 거쳐 수정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얼마 전 TV토론에서 찬성 쪽 인사가 우리나라 사학자의 95%가 좌파이고 그들이 쓴 현재 교과서가 김일성 주체사상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며 나는 TV를 꺼버렸다. 우리사회는 언제부터 권력에 순응하지 않고 이의제기를 하면 종북 좌파로 몰리고 천안함, 세월호 사건에서처럼 정부의 발표를 의심하거나 사립학교 재단비리에 문제제기를 해도 좌파의 딱지가 붙는다. 건강한 비판과 양심적 행동조차 이념갈등으로 몰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1949년 반민특위 위원들을 빨갱이로 몰았던 친일세력들의 수법이 그대로 전수되고 있는 것이다.

이 역사교과서 논쟁의 핵은 일제 식민시대의 친일청산과 유신독재에 대한 부분이며 그것을 어떻게 해석 평가하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아무리 역사가 지배자의 현실을 정당화해주는 도구로 전락한다고 해도 친일과 유신독재를 정당화 할 수는 없는 것임에도 친일세력과 그에 이어지는 독재 핵심세력들의 후예들은 근대화와 경제발전이라는 분칠로 “균형 잡힌 역사”를 운운하며 가치가 전도된 지난 한 세기를 합리화하려한다. 그들의 주장처럼 근대화와 경제발전이 결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인권이 유린당했는가? 좋은 결과를 위해서 수단과 과정을 묵인한다면 마치 사람을 죽이고 사기와 강탈을 해 부자가 돼서 자식들에게 “너희들 잘살게 됐잖아” 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승자의 기록으로서 역사는 진정한 역사라 할 수 없다.

“역사를 위한 변명”으로 유명한  마르크 블로크는 “역사의 대상은 인간”이라 했다. 인간이란 도덕적 존재임으로 도덕성이 결여된 역사란 치옥의 역사일 뿐이다. 도덕성이 결여된 과거의 제국주의 역사가 이를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블로크가 2차대전 당시  독일에 참패당하는 조국 프랑스를 보면서 “역사가 우리를 배반했다” “아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반했다”고 하는 친구이자 선배 역사가인 루시앙 페브르와  나눈 일화는 유명하다 결국 그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 나치에 총살당했다.
 
일제의 경의선 경부선 건설이 조선의 근대화를 앞당겼고 유신독재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이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역사교과서를 다시 쓰고 싶어 하는 것이다. 전라도 평야의 쌀 수탈을 수출로 , 유신독재를  제한적 민주주의 혹은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로 바꾸고 싶은 것이다. 청산돼야 할 역사를 예찬의 역사로 바꾸고 싶은 것이다.

친일문학론을 쓴 재야 역사학자 임종국 선생은 스승인 유진오는 물론 부친의 내선일체 강연의 친일행적까지 포함하여 민족과 역사 앞에 부끄러워 해야 할 사람들을 세상에 알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시절 부친의 황군 장교(다까기 마사오)로서의 친일행적과 유신독재에 대하여 묻는 질문에 역사가의 평가에 맡긴다고 했다. 새롭게 교과서를 쓸 역사가의 손은 이 부분을 어떻게 평가할지 아니면 누락 될지 궁금하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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