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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약한 민주주의를 강하게 만들 수 있는 대안 담았다"
"허약한 민주주의를 강하게 만들 수 있는 대안 담았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10.12 1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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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_ 34강.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유리와 자본주의 정신』, 『소명으로서의 정치』’

베버만큼 사회과학계에 큰 족적을 남긴 학자가 또 있을까. 한국 사회과학계에 베버는 ‘베버’ 이상으로 존재한다. 그는 늘 읽혀왔지만, 그에 관한 해석은 읽힐 때마다 거듭난다. 지난 3일(토) 진행된 ‘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 5섹션 ‘근대 사상과 과학’은 베버편이었다. 강연자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최 교수는 이미 지난해 ‘문화의 안과 밖’ 시즌1에서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과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묶은 듯한 「학문의 중립성과 참여―참여의 조건과 소명으로서 사회과학」을 강연한 바 있다.
이날 강연에서 최 교수는 베버의 두 저작을 민주주의의 문제와 관련해 깊이 고민했다. “『소명으로서의 정치』에 담긴 베버의 대안 제시는 여전히 허약한 민주주의를 위한 후진적 조건과 사회적 기반에서 민주주의를 강하게 만들 수 있는 내용으로서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독법은 분명 이채로워보였다. 이날 강연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 『소명으로서의 정치』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소명’이라는 말의 뜻

소명 의식은 무엇인가. 하나는 내면적 신념 혹은 내면적 신념 윤리의 원천으로서의 소명 의식이다. 다른 하나는 그의 신념을 현실 속에서 이행해야 할 책무, 즉 텍스트에서 말하는 ‘책임 윤리’의 도덕적 원천으로서 소명 의식이다. 여기에서 유념할 것은 소명 의식은 두 가지 도덕성, 즉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소명이라는 말 속에는 “나는 왜 정치를 하려 하는가?”라는 물음과, “어떻게 나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가? 그래서 어떻게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라는 서로 연결돼 있지만 다른 물음을 동시에 포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 이론의 역사에서 베버가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마키아벨리는 정치를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사의 문제로 봤다. 그는 모든 국가, 모든 권력의 지배 형태는 통치자가 일인이냐, 시민 다수이냐에 따라 군주정 아니면 공화정으로 구분한다. 군주정과 공화정의 구분을 완전히 없애 버린 철학자가 토머스 홉스다. 그런데 현대 정치는 지도적인 정치인이 갖는 특별한 개인적 권력과 국가가 갖는 비인격적, 제도적 아파라투스(apparatus)가 결합해서 작동한다. 이러한 정치는 마키아벨리를 넘어서는 독특한 도덕적, 심리적 다이내믹스를 창출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현대 국가에 대한 가장 유명한 정의를 내린 베버의 이론적 기여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적 현실주의

베버가 사회과학 방법론의 대명사라고 할 ‘가치중립’ 또는 ‘가치 판단으로부터의 자유’의 방법을 소재로 접근할 수 있다. 가치중립은 연구자가 지닐 수 있는 문화적, 종교적, 이념적 그리고 어떤 종류의 희망적 사고의 영향도 배제하고, 도덕적 문제를 사실과 뒤섞지 않으며 사실 그 자체에 접근하고 탐구하는 것을 뜻한다. 베버가 가장 강조했던 정치적인 덕은 신념이나 이념과 같은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실성, 객관성(Sachlichkeit)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소명』에서 이상적인 정치가란, 자신의 열정을 객관성과 결합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가치중립적 방법론과 사회과학적 지식은 목적 합리적 행위를 가능케 하는 지적 기반이 된다. 정치의 리더십이란, 사회적 결사체나 경제적 기업과 같은 사적 조직의 리더십이 아니라 정치적 영역에서 요구되는 특별한 종류의 리더십을 말한다. 베버는 정치의 중심이 되는 영역을 국가라고 말한다. 정치 이론의 고전으로서 『소명』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 카리스마적 리더십과 더불어 정치 행위의 장을 국가라고 정의하고, 이 국가가 무엇인가를 정의한 것이다. 그러나 베버의 이론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 본질이 힘의 정치에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정치의 핵심 문제는 인간이 인간을 통치/지배할 때, 통치자 내지 지도자가 어떻게 피치자 내지 대중으로부터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에 있다.

카리스마적 리더십과 대중 투표제적 민주주의

베버의 전체 이론 체계에 있어 중심적인 테마를 구성하는 카리스마(Charisma)와 ‘일상화(routinization)’ 간의 다이내믹스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한다. 카리스마라는 말은, 어떤 인물이 진정으로 특별하게 예외적인 능력 내지 특성을 갖는 것을 지칭한다. 그 예외적으로 특별한 능력이란 신의 은총 또는 어떤 타고난 초자연적인 현상이 부여한 특성을 지닌 인물을 묘사하는 말이다. 베버 이론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카리스마적 현상이 ‘일상화’와 결합하면서 역사 변화 내지 사회 변화를 설명하는 말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그 일상화가 구현하게 될 새로운 사회 또한 다시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카리스마를 갈망할 수 있다. 카리스마와 일상화의 테마가 정치 문제를 다루는 『소명』에서만큼 명료하게 나타나는 저작은 없다.

베버는 한 사람의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소를 지적한다. 열정, 책임감, 균형적 판단이 그것이다. 열정은 내적 소명 의식을 갖는 정치인이 정치 행위를 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다. 그런데 프로테스탄티즘의 맥락에서 베버가 말하는 열정은 책임감과 균형적 판단을 동시에 가질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하면서 만들어지는 열정은, 反감정적 열정, 이성과 냉철한 판단 의식에 의해 규율되는 차가운 열정을 뜻한다. 한 사람의 정치인이 정치 행위에 대해 덕목을 가진다고 할 때, 그것은 어떤 정치적 신념이나 목적을 추구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그것을 실천하고 실현하는 행위와 그 결과를 포괄하는 것이다. 내면적 신념을 추구하는 것만으로 정치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면, 정치는 곧 윤리학으로 환원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베버가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고도 단호하다. 정치 영역의 자율성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즉 정치는 도덕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 영역에서 유효한 정치적 에토스, 정치의 도덕적 성격은 무엇인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베버는 ‘내면적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를 구분하고, 이 두 개념 사이의 관계를 탐색한다.

■ 맺는말

내가 처음 『소명』을 읽었을 때 예상과는 무척 다르게 베버가 민주주의적 지배 형태를 카리스마적 지배 형태로 분류하고 있는 점이 이채로웠다. 그 의미는 베버의 전체 이론 틀을 조금씩 이해하면서 풀리게 됐다.

카리스마 지도자는 변화를 추구하는 역할을 담지해야 하고, 그것을 기대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지 않고 민주주의를 법적, 합리적 지배 형태로 분류했다면 아마 민주주의는 경제의 합리화를 정치를 통해 합리화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게 됐을 것이다. 베버가 텍스트에서 말하는 민주주의의 역할은, 합리화와 조응하면서, 그것을 깨뜨리는 것이 과도한 이상주의적 목표라면, 최소한 일정하게 그 과정을 저지하거나 완화할 수 있는 제도이자 힘이라고 이해된다.

『소명』에서 베버는 오로지 ‘협소한 선택’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 선택은 “대중 투표에 기초한 머신을 갖는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이끌고 가는 민주주의”냐 아니면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 즉 아무런 소명 의식이나 내면적, 카리스마적 자질을 갖지 못한 직업적 정치인들에 의한 지배냐 하는 양자택일이 주어질 뿐이다.

베버의 이론 체계에서 카리스마라는 말의 등장은, 처음부터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었다.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이끄는 대중 투표제적 민주주의에 대한 긍정과 희망을 말했던 베버의 주장은, 2차 대전 이후 여러 학자들 사이에서 파시즘의 이론적 기초를 놓은 것이라는 비판의 논점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소명』을 주제로 강연했던 시점, 공산주의 혁명의 벼랑에서 어떤 것도 대안이 될 수 없었던 환경 하에서 베버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베버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말하면서 영국 의회 정치를 모델로 한 글래드스턴이나 로이드조지를 생각했던 것이지, 독재자를 긍정했던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의회 역할을 중심으로 정치가 살아 움직이는 정치의 장에서 비전과 내면적 정치 윤리를 갖는 강력한 리더십을 말했던 것이다. 그가 기대하고 말하고자 했던 것이 모든 대중적 권력을 위임받은 대중 투표제적 독재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당시 민주주의의 후진국으로서 독일이 바이마르 공화국이라고 하는, 영국의 의회 민주주의도 뛰어넘을 수 있는 이상적인 체제를 제도화했을 때 그 결과는 공화국의 붕괴와 나치즘의 등장이었다. 나치즘을 불러왔던 것은, 소명 의식을 갖는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아니라, 허약한 의회 권력과 정당의 파편화, 그것을 뒷받침했던 독일 제국의 해체 그리고 시민들의 허약한 민주주의 의식이었다. 나는 『소명』에 담긴 베버의 대안 제시는 여전히 허약한 민주주의를 위한 후진적 조건과 사회적 기반에서 민주주의를 강하게 만들 수 있는 내용으로서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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