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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뜨면 이울어버리는 하루살이 꽃이여!
해가 뜨면 이울어버리는 하루살이 꽃이여!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5.08.12 1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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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35. 달맞이꽃
▲ 달맞이 꽃 사진출처: 다음 블로그 ‘꽃보다 아름다운 아드리아’

달맞이꽃(Oenothera biennis)은 쌍떡잎식물, 바늘꽃과의 두해살이풀로 한여름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흔한 들꽃이다. 미국, 캐나다를 포함하는 북미원산으로 세계적으로 온대지방에 넓게 歸化(naturalization)해 지금은 어디서나 널리 깔려 있다.

어둠이 깃들어 달이 뜰 때쯤 핀다해 달맞이꽃(evening primrose)이라고 하는데 밤새 피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해가 뜨면 시나브로 이울어 버린다. 하여 月見草 또는 夜來香이라 부르기도 한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 했는데 이는 ‘하루살이꽃’인 셈이다. 또 밤에 피는 꽃(夜花)이라 하여 행실이 좋지 못한 여인에 빗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터전을 가리지 않고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야생화다. 굵고 곧은 뿌리로부터 보통 1개의 줄기가 나와 곧추서며, 키가 50∼90cm 안팎으로 사람허리춤에 닫는다. 식물체 전체에 짧은 털이 부숭부숭 난다. 그리고 잎은 어긋나기하고, 끝이 뾰족하며, 가장자리에 자잘한 짧은 톱니(거치, 鋸齒)가 많다. 여린 잎과 뿌리를 한소끔 데쳐먹고, 꽃은 샐러드로, 서양에서는 뿌리를 와인 향을 내는 데 썼다한다. 소박하면서 호화롭다고나 할까. 샛노랗게 맑은 꽃은 양성화로 7~8월에 피고, 지름이 2∼3cm이다.

풀꽃의 세세한 구조는 육안으로는 세세히 보기 어렵지만 꽃받침조각은 4개인데 2개씩 합쳐지고 꽃이 피면 뒤로 젖혀진다. 야들야들한 꽃잎은 4개이고, 수술은 8개이며, 암술은 1개로 암술머리가 4갈래로 갈라진다. 향기가 세지는 않지만 은은하고, 꽃가루는 끈적끈적해서 곤충들 몸에 쉽게 달라붙는다. 가루받이가 끝나면 꽃은 송이째 뚝뚝 떨어지고는 뒤따라 곤봉 꼴의 열매가 다닥다닥 매달린다. 법정, 최인호의 『꽃잎은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란 책을 지금 읽고 있는 중인데….

열매이삭들은 여물면 果皮가 말라 쪼개지면서 홀랑 씨를 퍼뜨리는 ???果(capsule)로 긴 타원형이고, 길이가 2.5cm이다. 4조각으로 짜개지면서 깨알보다 작은 1~2mm의 작고 길쭉한 씨들을 산산이 쏟아낸다. 씨앗은 약으로 쓰지만 새들의 먹잇감이 된다. 모든 씨앗이란 씨앗에는 여러 영양분이 진하게 응축돼 있어 씨앗이 발아하는데 필요한 양분을 죄 가지고 있다. 또 달맞이꽃·냉이나 꽃다지들처럼 봄에 나는 모든 새순들은 삶아 먹으니 겨울을 이기고 나왔기 때문에 특수한 영양분이 풍부한 탓이다.

그리고 무르익은 달맞이꽃씨는 기름을 짜니, 種子油에는 인체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는 지방산(fatty acid)인 감마리놀렌산(gamma-linolenic acid)이 7~10%를 차지한다. 그것 말고도 리놀레산·리놀산·아라키돈산 같은 필수지방산이 가득 들었다고 한다.

달맞이꽃은 꽃에서부터 뿌리까지 다 쓴다. 달맞이꽃은 본래 북미인디언들이 몸이 언짢을 때 약초로 썼던 식물이다. 그들은 달맞이꽃의 全草(잎·줄기·꽃·뿌리 따위를 가진 옹근 풀포기)를 물에 다려서 피부염이나 종기치료에, 기침이나 통증을 멎게 하는 약으로 썼다한다.

우리 한방에서는 인후염이나 기관지염이 생기면 뿌리를 잘 말려 끓여 먹기도 했다. 피부염이 생겼을 때는 달맞이꽃잎을 생으로 찧어 피부에 발랐고, 여성들의 생리불순과 생리통에 이용했다.

여기에 서양문헌에 나와 있는 달맞이꽃 종자기름(seed oil)의 약효를 모조리 적어본다. 우리도 한때 유행을 탔으나 지금은 한물갔지 않나 싶다. 씨앗기름은 앞에서 말했듯이 지방산이 주성분으로 골다공증·암·알코올중독·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정신분열병·위궤양·당뇨성신경통·피부가려움증·천식·만성피로·습진·관절염·유방통증 등에 먹는다고 하니 만병통치약(panacea)이 무색할 지경이다. 그리고 보조식품으로도 먹고, 하물며 비누나 화장품을 만드는 데도 쓴다. 그러나 무턱대고 과잉섭취하면 종종 뒤탈이 생기니 출혈(bleeding)을 일으키고, 임산부나 수유중인 산모에게도 해롭다고 한다. 이렇게 아무리 좋은 것도 괜히 지나치거나 치우치면 늘 화가 뒤따른다.

가을에 땅바닥에 떨어진 씨는 곧 싹을 틔워 한참 자라고, 겨울에서 이른 봄까지 밭이나 논둑에 납작 엎드려 지내다가 5월 말이면 세차게 쑥쑥 큰다. 그래서 이태를 사는 2년 초다. 핼쑥하고 시푸르죽죽 검붉게 빛바랜 달맞이꽃이 剛斷(끈기)있는 냉이·민들레·애기똥풀들과 함께 도래방석처럼 둥글넓적하게 쫙 펼쳐서 땅바닥에 바싹 엎드렸다.

또한 아래위의 크고 작은 잎들이 번갈아, 엇갈려 나면서 同心圓으로 켜켜이 포개졌다. 그 매무새가 마치 장미꽃송이 같다해 로제트(rosette)형이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거뜬히 월동하겠다는 심사다. 마치 겨울노지에 자라서 잎이 널따랗게 퍼진 겉절이용 봄배추(봄동)처럼 생긴 것들이 전형적인 로제트 꼴이며, 겨울 풀들은 틀에 찍어 낸 듯 하나같이 그런 모양새다.

달맞이꽃은 남다르게 夜深한 밤에 꽃을 피운다. 그들은 밤에 꽃향기를 피워서 야행성동물을 불러들인다. 늙은 식물은 어둑한 낮에도 꽃잎을 활짝 여는 수가 있지만 짐짓 낮에는 냄새를 피우지 않고 해가 저야 비로소 풍긴다. 또 달맞이꽃은 밤에도 환히 눈에 잘 보이는 것은 스스로 발광하는 燐光(phosphorescent) 때문이고, 꽃은 자외선을 뿜어서 꽃가루 매개자(pollinator)인 박쥐나 나방이의 눈에 잘 띄게 한다. 암튼 꽃들의 숨 막히는 갖은 유인작전들에 啞然(어이없음)하지 않을 수 없도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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