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影印本과 학문 연구 그리고 새로운 복제본의 필요성
影印本과 학문 연구 그리고 새로운 복제본의 필요성
  • 교수신문
  • 승인 2015.07.1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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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영인본의 오류 양상이 문학 연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사례로 『진달내꽃』(매문사, 1925)을 꼽을 수 있다. 『진달내꽃』과 영인본의 앞표지, 본문, 판권지 등을 대비해보면, 문학사상사 간행본(초간희귀 한국현대시 원본전집 20, 1975)에서는 26차례의 서지 왜곡과 1차례의 원본 결함이 확인된다. 문학사상사 간행본은 앞표지 및 본문 18곳에서 원본 내용을 임의로 전변했으며, 8작품 곳곳을 수기로 가필했다. 뿐만 아니라 『진달내꽃』의 판권 기록을 완전하게 재현하지 못한 결함까지 드러낸다.


그중 「春香과李道令」은 원본 내용을 임의로 바꾼 영인본이 해당 작품의 해석에 심각한 오류를 초래한 경우에 해당한다. 『진달내꽃』에 수록된 이 작품의 4연 3행은 “烏鵲橋차자차자 가기도햇소”이다. 그런데 문학사상사 간행본에는 ‘차자차자’의 두 번째 음절 ‘자’ 자가 가획돼 ‘차차차자’로 표기돼 있다. 원본 표기(‘차자차자’)가 아닌 영인본 표기(‘차차차자’)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면, “본문의 표기를 그대로 따를 경우 ‘차차 찾아’로 볼 수 있으며,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찾아’의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권영민 엮음, 『김소월시전집』, 문학사상사, 2007. 298쪽)라는 식의 오독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소월은 어휘의 반복을 통해 화자의 절실한 심정을 율동감 있게 표현하는 미의식을 추구한 시인이다. 그런데 ‘찾아찾아’에서 느껴지는 급박한 어감과는 달리 ‘차차 찾아’는 정반대로 느긋한 느낌을 준다. 이처럼 왜곡된 영인본 표기를 검증 없이 수용할 때, ‘차차 찾아’처럼 작가의 미의식과는 전연 동떨어진 오독이 발생하게 된다.


이번에는 『진달내꽃』과 영인본들의 판권지를 비교해 잘못된 서지 정보가 만들어져 유통되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보자. 『진달내꽃』의 판권지에는 ‘大正十四年十二月二十六日’이라는 발행기록이 분명히 밝혀져 있지만, 문학사상사 간행본에는 연호인 ‘大正’이 지워진 채 ‘十四年十二月二十六日’만 인쇄돼 있다. 그런데 문학사상사 간행본의 편찬자는 ‘十四年’의 연호를 ‘大正’이 아닌 ‘昭和’로 착각했는지, 이 책의 앞표지에 ‘초간희귀 한국현대시 원본전집 20 1939년판’이라는 기록을 적어 넣어 서지 정보를 왜곡했다. 현재까지 학계 일각에서 유통되는 ‘『진달내꽃』 1939년 발행설’은 이 문학사상사 간행본의 서지 왜곡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오류는 김용직 주해본(『원본 김소월 시집』, 깊은샘, 2007)에서 한층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이 책의 판권지에 ‘昭和’라는 연호가 버젓이 표기돼 있기 때문이다. 김용직 주해본은 영인본을 제작하면서 원본이 아닌 문학사상사 영인본을 저본으로 삼은 후, 이 책의 앞표지에 기록된 ‘1939년판’에 들어맞도록 연호(‘昭和’)까지 임의로 끼워넣어 발행기록을 조작한 것이다. 이러한 서지 정보의 왜곡은 현재까지도 반복 재생산되고 있다.


영인본의 오류 양상은 새로운 연구 자료의 제작에 여러 가지 시사점을 제공하기도 한다. 첫째, 서지 정보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결돼야 한다. 근대 문학 유산은 그 자료가 복수로 존재하는 경우가 흔하다. 『진달내꽃』처럼 이본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고, 『瓦斯燈』같이 약간씩 물성을 달리하는 초판본, 재판본, 개장판이 현전하기도 한다. 각각의 판본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만 오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둘째, 원본에 대한 다양한 조사와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窓邊』처럼 동일한 판본이라도 원전에 결함이 있는 시집과 무삭제본 시집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으며, 『해당화』같이 특정한 판본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검열 문제를 실증적으로 규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최선본을 선정해야 한다. 『瓦斯燈』 영인본처럼 결함 있는 원본이 아닌 최상의 판본을 저본으로 삼아야만 진정성 있는 연구 자료가 제작될 수 있다. 넷째, 과학적으로 재현해야 한다. 원본을 인위적으로 훼손한 『진달내꽃』의 전철을 되밟지 않고 원본의 물성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것은 기술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최근 『아단문고 근대시집 복각본 총서』가 간행된 바 있다. 여기에는 오장환이 운영했던 출판사에서 발행된 시집 3종과 오장환의 개인시집 3종이 포함돼 있다. 이 총서는 판형과 색감은 물론 표지부터 판권지까지 있는 그대로를 재현한,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연구 자료’에 해당한다. 이 총서와 같은 복제본들이 다수 제작돼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원본 접근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근대 문학 연구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 이 글은 지난 4일 선문대에서 ‘근대문헌의 발굴과 한국 어문학 연구의 재발견’을 주제로 진행된 중앙어문학회 제34회 전국학술대회에 발표된 근대서지학회 엄동섭 박사의 논문 「근대 문학 영인본 서지의 재검토」에 발췌·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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