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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은 국가권력에 의해서만 이뤄지는가?
검열은 국가권력에 의해서만 이뤄지는가?
  • 김기태 세명대·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 승인 2015.06.2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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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김기태 세명대·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 김기태 세명대 교수
2012년도에 출간된 『검열에 관한 검은 책』(에마뉘엘 피에라 외 지음, 권지현 옮김, 알마)에 추천사를 쓴 적이 있다. 애초에는 수시로 군홧발이 캠퍼스를 유린하던 1980년대를 떠올리며, 매캐한 최루가스 냄새 가득한 대학신문사 편집실마다 누군가의 무자비한 가위질 끝에 누더기가 된 원고 때문에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오버랩되는 책일 것으로 예상했었다. 벌써 30년 안팎의 세월 건너편에 있었던 일이지만 도무지 잊히지 않는 이유는 그때 우리는 처절한‘검열’의 칼날을 무디게 만들어야만 표현의 자유와 더불어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리라던 믿음이 강렬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이러한 선입견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검열에 관한 검은 책』은 비록 프랑스를 배경으로 했지만 읽을수록 책의 메시지가 전혀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아마도 검열에 관한 ‘旣視感’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공권력 혹은 거대권력에 의한 ‘검열’만을 의식했던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의아해할 수밖에 없으리라. 이 책에서 ‘검열’은 전방위에 걸쳐 이뤄지고 있으며, 심지어 ‘나’조차 ‘나’에게 검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고지순해야 할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 좌우된 나머지 이제 “표현의 자유는 시청률, 그리고 제작사가 예상하고 가정하는 시청자의 요구에 부딪히게 된다”라고 한다. 한 술 더 떠서 “대중의 알 권리, 사회 비평, 미학 및 개성같은 기준은 수익성 지수로 대체된다. 대중의 뜻에 영합하고 자기검열을 감수하고서라도 읽히고, 보여야한다”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마침내 “검열은 보이지 않는 새로운 형태, 즉 자기검열로 탈바꿈했다”라는 대목에 이르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나아가 저자들은 인터넷을 가리켜 ‘검열에 쓰나미 같은 존재’로 정의하면서 “숨겼거나 금지된 정보가 누구에 의해서든, 그리고 어디에서든 공개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게다가 광고주의 횡포로 요약되는 기업의 검열은 또 어떤가. 미풍양속 침해를 명분으로 한 검열의 칼날을 수시로 휘두르며 검열을 정당화하는 가치로 청소년 보호를 내세운 뒤 중립성과 객관성을 유지했다고 자부하는 국가의 태도를 지적하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종교조차 일부 국가에서는 자유롭고 민주적으로 반대의사를 표현하려는 사람들에게 재갈을 물리는 데 이용되고 있는 현실까지 낱낱이 파헤친다.

어디 그뿐인가. 이른바 베스트셀러에 집착하는 출판사 또는 저자라면 이미 스스로 ‘검열의 덫’에 걸린 셈이다. 표현과 양심의 자유에 입각해서 집필하는 것이 마땅하련만 어떻게 해야 많이 팔릴 것인가, 이렇게 쓰면 독자들이 외면하지는 않을까, 요사이 유행하는 표현에서 벗어나면 안 되는데…… 등 유통과정에 대한 눈치 보기 자체가 결국 스스로 검열을 자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진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 내·외부 검열 없이 만들어진 원고야말로 좋은 책을 위한 기본요소임을 강조하고 싶다.

또 한편으로는 이 책은 디지털 파놉티콘(panopticon)에 대한 경고로도 읽힌다. 그동안 권력은 자신의 권위를 단단하게 다지고 비판을 막기 위해 검열에 의지하거나 비밀로 자신을 감싸왔다는 지적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혹시 이제 더 이상 검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거나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믿는가? 아니다. 어쩌면 과거보다 더 교모하고 간접적인 형태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시도들에 대한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 된다. 여전히 ‘국민을 무책임하고 분별력없는 아이’로 보는 세력이 우리 생활을 넘어 가상공간까지 점령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김기태 세명대 교수(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의 신간 문화비평집 『무식한 대한민국이 되지 않으려면』에 수록된 것이다. 출판평론가로 각종 매체에서 활발한 비평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 교수는 미디어와 저작권 문제를 깊이 천착하고 있다. 지은 책에는 『출판 저작권』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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