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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홍보와 허위성의 일상화
대학 홍보와 허위성의 일상화
  • 박재묵 논설위원/충남대·사회학
  • 승인 2015.06.0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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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박재묵 논설위원/충남대·사회학

교수 눈에는 대학 광고가 유난히 빨리 들어온다. 요즘 기차역이나 지하철역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물론, 고속도로 주변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쳐가는 곳에서도 쉽게 만나게 되는 것이 대학 홍보물이다. 처음에는 사립대학 몇 군데서 시작하는 것 같더니, 이제는 길거리 홍보를 하지않는 대학이 오히려 손으로 꼽을 정도로 소수다.

말할 필요도 없이, 범람하는 대학 홍보물은 오늘날 대학이 맞이하고 있는 위기에서 비롯됐다. 따라서 우리가 대학 홍보물을 자주 접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대학의 운영 여건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이 한껏 팽창해 있는 상황에서 학생 자원이 줄어들면서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들이 많아진 것이 주요 배경이다.

문제는 경쟁적 상황에서 홍보가 강화되면서 그 부작용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데 있다. 우선 강의실, 강의의 질(강의 내용과 방식), 학생들에 대한 서비스 등을 개선하는 데 투입해야 할 돈과 인력이 교육의 질 향상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는 활동에 쓰이게 된다는 점이다. 대학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홍보 예산의 규모는 외부인들이 짐작하는 것보다는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홍보의 방법도 매우 다양하다. 홍보를 강조하는 대학에서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해야 할 교수를 대학 홍보 담당 보직자로 임명하기도 한다. 또한 언론에 비춰진 개인 이미지에 관심을 갖는 총장들은 여기에 대학의 예산과 행정력을 투입하기도 한다.

이처럼 돈과 인력을 홍보 업무에 전용하는 것은 그래도 작은 문제에 속한다. 더 큰 문제는 홍보 활동을 지배하는 독특한 마인드, 즉 별 것 아닌 것도 크게 키워서 과장해서 말하거나 자신이 속한 기관이나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고방식이 대학 구성원의 모든 활동으로 스며들어 허위성의 일상화가 이뤄진다는 점이다. 교수가 대형 연구과제를 수행하게 되면 으레 큼직한 현수막을 내걸어 주고, 대학이 정부의 재정지원사업을 유치하게 되면 그 선정 성과를 구성원이 지긋지긋해 할 때까지 학내에 게시한다. 이런 분위기에 젖은 총장이나 보직자는 입만 열면 대학 또는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게 된다. 당국자만이 아니라 구성원 개인들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으면서 자신의 명성이나 성과를 홍보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간혹 언론에 보도되는 대학들의 허위·과장 광고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큰 거리낌 없이 이뤄진다. 언젠가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학들의 신입생 모집 관련 홍보내용을 검토해 19개 대학의 홍보 내용을 허위·과장 광고로 규정하고 시정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지적을 받은 대학 중에는 서울에 소재하는 세칭 일류대학들도 포함돼 있었다. 허위·과장 광고의 전형적인 사례는‘취업률 1위 대학’이라는 광고다. 1위를 한 사실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1위라는 광고를 내보낸 후안무치한 대학이 있는가 하면, 특정 해에만 1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해에 걸쳐 연속적으로 1위를 했다고 하거나 특정 그룹 내에서 1위의 취업률을 기록했음에 불구하고 전국의 모든 대학 중에 취업률이 1위인 것처럼 보이게 광고한 대학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대학에서 이뤄지는 홍보는 대학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허위·과장 광고는 없어져야 하고, 이를 묵인하거나 당연시하는 분위기도 고쳐져야 한다. 그래서 과장과 허위의 문화가 대학 구성원의 일상적 활동으로 침투하는 것도 제어돼야 한다. 대학 총장 협의회나 홍보 담당자들의 협의회가 주관해 허위·과장 광고는 물론 과도한 홍보 활동을 스스로 자제하기 위한 규범을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박재묵 논설위원/충남대·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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