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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공의 벽 넘어 한국문화 원형질을 응시한 이유
비전공의 벽 넘어 한국문화 원형질을 응시한 이유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5.26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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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 『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지식산업사) 출간한 김양동 계명대 석좌교수

▲ 김양동 교수 ⓒ최익현

우리문화 원형에 대한 상징해석을 아무리 새롭게 전개했다 해도 기존학계로부터는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새로운 해석을 시도해 기존해석의 틀을 깰 때, 우리 문화의 지평이 확장될 것이다.

서예와 전각에서 뛰어난 평을 받고 있는 김양동 계명대 교수가 <교수신문>에 2013년 2월 18일부터 2014년 6월 30일까지 ‘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을 연재했을 때, 그에게 주변에서 들려온 이야기는 ‘비전공자가 어떻게?’, ‘놀라운 발상이다’, ‘섣부른 가설에 불과하다’ 등등 크게 엇갈린 평이었다.
연재가 3회 정도 진행됐을 때, 지식산업사 김경희 대표가 관심을 보였다. 학부에서 사학을 공부했고, 역사학 분야에서 굵직한 책을 펴냈던 그의 내력 때문인지, 그의 관심만으로도 외롭게 홀로 한국 고대문화 원형과 씨름하고 있던 김 교수는 자신의 문제의식을 좀 더 가다듬어 연재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지식산업사 刊)이라는 책으로 이어졌다. 역사와 고고학 저 편에 있던 한 눈 밝은 서예가의 근본적인 질문과 이 질문의 예사롭지 않은 성격을 간파한 출판인의 노력이 빚어낸 결과다.


출간 의미를 묻자 김 교수는 이런 대답을 들려줬다. “기존학계와는 차별성을 둬서, 그간 학계의 해석이 뿌리부터 잘못됐음을 지적했다. 나의 해석이 옳다는 게 아니라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과거의 학설에 젖어있던 독자들에게 새로운 해석의 지평을 음미해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나이 70 넘어서 책 한 권을 낼 수 있었다는 것, 그런데 남들은 여러 권 내는데, 나는 뭐 창작이야 했지만 책 단행본은 처음 냈다. 그런데 마음에 응축됐던 것을 털어놨다는 점에서, 또 밑바닥을 훤히 봤다는 점에서 내가 할 일을 다 했다는, 보람이 크다.


서예와 전각 전문가인 그가 어떻게 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 해석에 나설 수 있었을까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원래 김 교수는 한국서예사와 전각사를 집필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 우연하게 神의 우리 고유어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이를 계기로 한국 고대문화의 원형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해, 달, 별, 물, 사람 등에 일대일로 대응하는 한자가 있다는 사실에 착안한 것이다). 이 새로운 문제의식은 그가 계획했던 한국서예사와 전각사 집필 대신 전혀 ‘엉뚱한’ 분야로 그의 시선을 확장시키고 말았다.

한국서예사 대신 선택한 고대문화 원형 분석
“원래 서예, 전각을 하면 조형을 보는 감각, 조형을 관찰하는 분석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사물을 볼 때 내가 갖고 있던 지식에서 기존의 해석과는 다른 해석이 가능해야 하는 분야라는 뜻이다. 한국 고대문화의 원형에 주목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직업적 특성에서 길러진 집중력과 분석력이 작용했다고 본다.” 그러나 아무리 그가 조형을 관찰하는 눈썰미를 지녔다 해도, 한국 고대문화의 원형 앞에서는 당장 어떤 이론의 지평도, 가능한 해석의 방향도 쉽게 읽어낼 수는 없었다. 선학들의 주장 앞에서도 그것을 반박할 이론적 근거를 뚜렷하게 제시할 수 없었지만, 직관적으로 저게 아닐 텐데 하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오래 지배했다. 그렇게 한동안 지적 방황 속에 있다가 만난 것이 凡父 金鼎卨(1897~1966)의 ‘四徵論’이었다. 서구의 방법론에 기댄 학문적 훈련과 코스웍에 익숙한 한국적 현실에서 범부 선생의 사징론은 김양동 교수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김 교수는 연재 1회에서 이 ‘四徵’에 관해 이렇게 썼다. “첫째, 文徵으로 문헌자료에 의한 논징. 둘째, 物徵으로 유물자료에 의한 논징. 셋째, 事徵으로 문징과 물징은 없으나 분명히 존재했던 역사 사실에 의한 논징. 넷째, 口徵또는 言徵으로 신화, 전설, 민담 등 언어자료에 의한 논징. 이 네 가지 논징이 4징이다. 필자의 연구는 한국 고대문화 해석의 틀을 4징의 방법으로 파악한 후, 거기서 마련된 틀로서 잠복된 원형의 뼈를 발라내는 작업, 변형되거나 진화 또는 퇴화된 채 가려져 있던 상징성을 해석하는 작업 등을 통해 고대문화의 원형질을 탐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작업이다.”


이렇게 해서 김 교수는 神, 빛살무늬, 파형동기, 새숭배 사상, 신라금관, 관식, 곡옥, 환두대도, 기와, 음악과 무용, 상투, 고대복식 등 다양한 원형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그의 예리한 시선이 빚어낸 가장 이채로운 해석지평은 그동안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빗살무늬토기’로 통칭되던 고대문화의 원형을 ‘빛살무늬토기’로 읽어낸 데서 찾을 수 있다. ‘태양’을 숭배하는 고대 한반도인들이 스스로를 태양의 아들로 여겼다면, 자신들의 생활 속에 그 흔적을 남겼을 것은 분명하다. 머리 빗는 빗의 모양을 딴 ‘빗살무늬’가 아니라, 태양으로부터 지상으로 내려오는 찬란한 생명의 원동력 ‘빛살’을 자신들과 동일시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김 교수는 기존 ‘빗살무늬토기’를 위에서 조망했을 때, 입구에서 몸통으로 새겨진 사선들은 환하게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태양의 모습을 조형한 것이 틀림없다고 보면서, ‘빛살무늬토기’로 명명할 것을 주장했다.


신문 연재 때와 달리 이번 단행본에서는 새문화의 원류에 대한 확장된 검토, 선비와 조선의 어원, 신라 나정 등 내용도 더 늘리고, 관련 사진도 시원하게 키웠다. 예컨대 ‘조선’과 관련, 그는 이렇게 지적한다. “사학자들이 조선에 대해 여러 논문을 썼는데, 나는 지금까지와 다른 이론을 펼쳤다. 朝는 지명, 鮮은 족속 명이다. 고대 국가 이름은 터의 이름과 그 터에 사는 종족 이름을 합쳐서 국가 이름, 겨레 이름을 삼는 것이 보통이다. 해뜨는 곳, 그러니까 아사달이란 터에 살고 있는 鮮族, 이것이 조선이다. 鮮의 자형을 분석해보면, 물고기(魚)와 羊이 있다. 이것은 형성문자가 아니라, 일종의 회의문자로 봐야 한다. 무슨 뜻이냐면, 魚는 발해 연안의 농경생활 진입 전에 어렵생활을 하던 족속, 羊은 어렵과 병행해 수렵생활을 하던 사냥하던 족속, 그래서 농경생활진입 이전에 어렵과 수렵, 사냥을 병행하던 발해연안의 동이족의 생활습성을 의미하는 鮮이란 해석이다.”

해석고고학으로 기존 주장 전복 시도
물론, 김 교수의 이런 해석이 모두 정확하고 옳다고는 할 수 없다. 그는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고 있다. 해석 하나하나에 대해 是非를 가리는 논쟁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정설로 여겨왔던 이론과 주장의 틀들이 의외로 즉물적이며, 자의적인 부분이 많았다는 점에서 본다면,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찾는 도전적 질문으로 시각을 조금만 옮겨보는 것도 유익하리라. 한국 고대문화의 시원적 성격을 새롭게 읽어낼 수 있는 해석지평의 확장은 상자 안에서는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흥미롭게도 책의 서문은 시인 고은이 썼다. 매우 인상적인 이 서문은 짧고 함축적이다. “凡父 四徵을 명심한 투철한 원형 원류의 실상을 포착해가는 여러 시각의 해석들은 탁월하다. 그동안 한국사학계가 해놓지 못한 원시에의 투시과정을 그 근본언어의 변천 전이를 낱낱이 들추어내는 明證은 냉엄하기까지 하다. 나는 단언하기로 한다. 이것은 한국고대사의 아시아적 혹은 동아시아적 광역을 통해서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웅대한 서사시적 성취라고 말이다.”


‘한국고대사의 아시아적 혹은 동아시아적 광역을 통해서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웅대한 서사시적 성취’라는 표현은 과연 修辭이기만 할까. 그는 이제 ‘빛살무늬론’을 작품화해내는 대형 작업을 새롭게 꿈꾸고 있다. 1996년, 그가 53세가 되던 해, 서울 종로구 공평아트센터에서 그의 서예전이 열렸다. 27세에 서예를 시작해서 만 53세가 되던 해, 53점의 작품을 들고 세상을 만났을 때, 공평아트센터 입구에는 빛살무늬를 새겨 넣은 전시안내 현수막이 휘날리고 있었다. 그는 그때 이미 ‘빛살무늬’를 한국 고대 시원문화의 핵심으로 파악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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