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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실용화론의 아이러니
인문학 실용화론의 아이러니
  • 김용규 편집기획위원/ 부산대·영어영문학과
  • 승인 2015.05.0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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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김용규 편집기획위원/ 부산대·영어영문학과

▲ 김용규 편집기획위원
영문학과에 들어온 작가 지망생이“자신의 첫 소설이나 시집을 런던의 한 출판사에서 출판하게 될 가능성은 그가 다음 날 아침에 깨어 자신이 거대한 딱정벌레로 변신해 있음을 깨닫게 될 가능성보다 적다.”카프카적 냉소가 묻어있는 이 말은 영국 문학비평가인테리 이글턴이 최근 <크로니클 리뷰>에 기고한「대학의 죽음」이라는 글의 일부다. 그의 역설과 아이러니의 수사학은 글을 읽는 내내 냉소적 웃음과 쓰라린 공감을 자아낸다.

이 말의 맥락은 이렇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기업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영국 대학에서 영문학과를 비롯한 인문학과들이 실용화를 추구한다는 미명하에 힘든 고전인문학 연구를 포기하고, 학생들의 입맛에 맞춰 가벼운 감각적 주제나 창작과 글쓰기 중심의 교육과정을 대거 도입하고 있지만, 냉정히 살펴보면 전혀 실속이 없으며 오히려 인문학에는 독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글턴의 생각은 오늘날 한국의 인문대학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본주의적 기업 논리가 득세하는 대학에서 실용화는 인문학을 시장경쟁 속으로 내모는 강력한 논리가 되고 있다. 실제 한국의 사정은 이글턴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처참할는지 모른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최근 중앙대 사태다. 기업의 경쟁 논리에 따라 대학의 학과 통폐합을 밀어붙이다가 이를 비판하는 교수들에게 재단 이사장이 입에 담지도 못할 막말의 메일을 보낸 것은‘한국대학의 죽음’의 한 장을 장식할 것 같다.

학문의 실용화 자체가 무조건 비난의 대상이 될 순 없다. 고담준론에 빠져있는 학문을 일상의 현실로 가져와 그 현실적 적합성과 가능성을 점검하는 실천적 작업이 바로 실사구시의 정신이 아니던가.

하지만 오늘날의 실용화는 그 성격이 판이하다. 학문의 현실 적합성을 운운하는 것은 사치이며 경쟁과 이윤의 논리에 부합하지 않거나 유용성을 증명하지 못하는 학문들은 모두 퇴출 대상이 되고 있다. 많은 인문학과에선 전공과목을 도구과목으로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실용화를 쫓아 학과명을 개명했다가 종국에는 사라져버린 학과들 또한 적지 않다. 오래전 영문학과의 문학비평 시간에 토익을 가르치고 있다며 자조하던 교수를 만난 적이 있었다. 어쩌면 지금쯤 그 대학에선 문학비평이라는 과목 자체가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실용화의 영향은 인문학 자체에 근본적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그것은 대학과 사회 간의 거리를 제거하고, 효율성이라는 미명하에 학문의 수준과 질적 차이를 도외시하며, 인문학의 비판적 기능을 말살하고 있다. 대학은 그동안 사회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상아탑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학문의 권위와 독립성은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업논리가 대학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학문의 유용성을 증명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한 강요를 따르지 않
거나 따를 수 없는 가치들은 모두 퇴출 대상이 되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유용한가’의 기준은 학문적 수준과 질적 차이를 무력화시키고, 학문 간, 학자 간 존재하던 인정의 공적 메커니즘을 작동할 수 없게 만든다. 뛰어난 학문적 스승과 선배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서 실용화의 과정에서 치명적 타격을 입는 것은 인문학 자체의 비판 기능이다. 실용화는 인문학을 자본의 이윤 창출을 위한 도구로 삼기 위해 그 비판적 기능을 제거할 것을 요구한다. 비판적 기능이 제거된 인문학이 과연 인문학일 수 있을까. 인문학의 비판적 기능은 현재의 삶을 다른 삶들을 통해 반추하고, 지금의 삶 형태에 근원적 질문을 제기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데 있다.

하지만 실용화는 우리에게 지금의 삶이‘유일한’삶임을 강요한다. 지금의 삶이 유일한 삶으로 간주될 때, 인문학은 더 이상 다른 삶을 상상하지 못한 채 현재의 삶을 재생산하는 이윤 창출과 자기계발의 도구로 전락한다. 현재 삶의 존재방식에 근본적 질문을 던지지 않는 인문학은 더 이상 인문학이 아닐지도 모른다. 최근 중앙대 사태는 이 점을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다.

김용규 편집기획위원/ 부산대·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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