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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합리성에 대한 경고가 공통점 … 인간 존재의 본질과 경건함에 대해 질문
지나친 합리성에 대한 경고가 공통점 … 인간 존재의 본질과 경건함에 대해 질문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4.06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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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_ 10강. 강대진 홍익대 교수의‘소포클레스『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문화의 안과 밖’시즌2 고전강연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4일(토) 서울 안국동 안국빌딩 신관 4층 W스테이지에서 진행된 2섹션 고전시대의 세 번째 강연은 강대진 홍익대 겸임교수의 소포클레스 읽기였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서구 고전의 마지막 순서이기도 했다.
강연자로 나선 강 교수는 서울대에서 플라톤의『향연』연구로 석사 학위를, 호메로스의『일리아스』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정통 고전 연구자다. 현재 정암학당 연구원이자, 홍익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희랍·로마 서사시 속에 숨어 있는 민담의 요소와 희랍문화에 끼친 고대 근동문화의 영향에 관심을 갖고 왕성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 및 역저로『멀리보는 그리스 신화』(2014),『 비극의 비밀』(2013),『 오뒷세이아 모험과 귀향 일상의 복원에 관한 서사시』(2012) 등을 썼으며, 『아폴로도로스 신화집』(2005), 『아르고 호 이야기』(2010), 『오이디푸스 왕』(2009) 등을 옮겼다.
강 교수는 이날 강연을 통해 소포클레스의 두 편의 문제작 『오이디푸스 왕』과『안티고네』를 정밀하게 독파했다. 이들 작품이 최고로 꼽히는 이유가 무엇인지, 현대 독자가 읽을 때 주의해야 할 대목은 무엇인지를 환기하는 한편, ‘ 나는 누구인가?’『( 오이디푸스 왕』),‘ 진정한 경건함이란 무엇인가?’『( 안티고네』)라는 물음을 통해 현대적 해석을 시도했다.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사진·자료 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방금 우리는『오이디푸스 왕』이라는 작품이 담고 있는‘깊은 생각’으로 ‘이성 만능주의에 대한 경고’,‘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인식’을 꼽았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면 자칫 이 작품이 운명론을 설파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오이디푸스 왕』

 

▲ 바티칸 소장품 가운데 가장 오리지널한 소포클레스상. Photo:Ashmole Archive, KCL 사진출처=www.kingscollections.org
소포클레스의『오이디푸스 왕』과『안티고네』는 현재까지 우리에게 전해지는 희랍 비극 작품 중에서 최고로 꼽히는 것들이다. 『오이디푸스 왕』은 고대에 가장 유명한 작품이었고, 『안티고네』는 현대에 가장 많이 상연되는 작품이다.『 오이디푸스 왕』이 유명했던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시학』에서 그것을 최고의 작품으로 꼽고, 계속 그 작품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기 때문이다. 그리고『안티고네』가 현대에 많이 상연되는 이유는 이 작품이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다.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 시민의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고전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에서는, ‘이 작품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하는 질문이 자주 나온다. 하지만 내 생각에,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작품(책)이란 없고, 그저 읽으면 좋은 작품(책)들만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우선 희랍 문화가 로마를 거쳐 유럽 문화의 바탕이 됐기 때문에, 그리고 서구 문화가 오늘날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희랍 문화의 주요 성과들을 알고 있으면 세계 문화의 흐름을 따라가기 좋다는 점이다.

우선『오이디푸스 왕』을 살펴보자. 작품은 오이디푸스가 왕이 된 지 여러 해 지난 시점에 시작된다. 전체는 7개의 큰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다 (맨 앞부분은 도입부, 맨 뒤는 결말부라고 하는데, 이 두 부분을 빼면 전체가 5막극처럼 돼 있다. 이것 때문에 고전극은 5막극이라고 알려지게 됐다). 먼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대단하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소포클레스는 이 문제를 수사극이라는 형식을 도입함으로써 해결했다. 그 과정에 수반되는 아이러니와, 거기서 드러나는 인물의 우뚝함이 또한 이 작품을 빛나게 한다. 오이디푸스가 비범한 인물이라는 것은 뒤로 미루고, 아이러니(irony)에 대해서만 잠깐 보충 설명을 해보자. 등장인물과 관객의 정보 격차에 의해 발생하는 특별한 아이러니를‘비극적 아이러니(tragic irony, dramatic irony)’라고 한다. 이 작품 도처에 그러한 아이러니가 나타나고, 특히 오이디푸스가 이 사건을‘마치 내 아버지의 일인 양’열성을 다해 해결하겠노라고 선언하는 장면이 그렇다. 또 이 작품의 뛰어난 점으로, 사건들이 정밀한 필연성에 의해 진행된다는 것도 지적할 수 있다. 첫 장면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장면이 인과관계에 의해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작품을 최고로 꼽은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것이다.

한데 우연적인 사건도 하나 들어있긴 하다. 코린토스에서 사자가 찾아온 사건이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에 대한 설명을 찾을 수 있다. 그 사자는, 오이디푸스에게 이 좋은 소식을 전하면 자신도 이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온거라고 행위 동기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얼핏 보기에 별 대단한 게 없는 듯 보이지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구절이다. 운명이란 것이 신들이 정해놓고 억지로 우리 인간을 그리로 떠밀어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각 사람이 자신의 욕망과 계획대로 행동하는데, 그 모든 것이 합쳐져서 결국 신들이 이미 알고 있던 결과에 도착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그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아주 뛰어난 인물을 창조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오이디푸스는 매우 기민하고 활동적이며 총기가 넘치는 사람이다. 그는 한 장면이 끝나고 인물들이 들고나는 사이에 금방 자기 생각을 진전시키고, 새로운 그림을 그려낸다. 이 인물이 2천500년 전, 즉 한반도가 청동기 시대일 때 창조됐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이디푸스에게 뛰어난 점은 그가 진실 앞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그 진실이 자신에게 파멸을 가져온다 할지라도 그것을 알아야만 하는 사람이다.

강연중인 강대진 교수
이제까지 주로 형식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춰『오이디푸스 왕』이 왜 뛰어난지를 설명했다. 그러면 내용, 또는 주제는 어떠한가? 이 작품이 담고 있는‘깊은 생각’, 또는‘인간에 대한 통찰’은 무엇일까? 많은 학자들이 이 작품에서 인간 이성에 대한 경고, 또는 비판을 찾아낸다. 한국으로 치면 청동기 시대인데, 어떻게 벌써 이성 만능주의를 비판하는지 이상하게 볼 사람도 없지 않겠다. 하지만 당시 희랍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맞이한 일종의‘계몽주의 시대’였다. 그 대표적인 표어가‘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것이다.

방금 우리는『오이디푸스 왕』이라는 작품이 담고 있는‘깊은 생각’으로‘이성 만능주의에 대한 경고’,‘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인식’을 꼽았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면 자칫 이 작품이 운명론을 설파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뛰어난 학자들이, 이 작품은 운명극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오이디푸스 왕』에서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고, 그의 질문은 몇 차례 변화를 겪는다. 그의 첫 질문은 ‘라이오스를 죽인 자는 누구인가?’였다. 그러다 혐의가 자신에게 돌아오자 질문이 바뀐다. ‘내가 그 살인자인가?’마지막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이 질문은‘인간이란 무엇인가?’라고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오이디푸스는 모든
인간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결말을 볼 때, 이 마지막 질문에 대해 우리가 얻는 답은 아마도, ‘한계를 지녔지만 스스로 자기 길을 결정하는 존재’일 것이다.

『안티고네』

이제 두 번째 작품『안티고네』로 넘어가자. 앞에 말한 것처럼 『안티고네』는 현대에 자주 상연되는 극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압제자와 그에 대항하는 인물이 나오는데, 이들이 각기 하나의 세계관을 대표하고, 그들 사이의 대립이 아주 뚜렷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도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안티고네라는 인물의 우뚝함이다. 하지만 그녀의 특성은 크레온과 비교해야만 두드러진다. 사실상 이 작품은‘두 주인공 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주인공이 사실상 둘이라는 사실이, 또한 많은 독자에게 오해를 일으키는 원인이기도 한다. 이‘오해’란 바로, 안티고네의‘비극적인 흠 또는 실책(hamartia)’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시학』에서 제시한 이론 때문인데, 즉‘비극의 일반적 구도는 어떤 사람이 행복하다가 불행에 빠지는 것’이라고 한 대목이다.

안티고네의 특출한 점은 무엇인가? 사람이 행해야 할 바에 대한 어떤 직관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걸 실행에 옮길 의지와 자기 확신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인간 찬양의 합창’이다. 그 합창에는 여러 함축이 있지만, 크레온이야말로 이 합창이 그려낸 합리적 인간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기술과 합리성에 문제가 있는데도 그걸 끝까지 고집하던 크레온은 결국 자기 합리성 때문에 더 크게 재앙을 당한다. 희랍 비극의 원칙을 요약하는 표어 중 하나가‘행한 자는 당한다’는 것이다. 남에게 해코지를 한 사람은 그대로 보복을 당한다는 뜻이다. 이 표어는 크레온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이번에는 구조를 보자. 이 작품은 겱分구성을 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개 이전 비극들이 서로 내용이 연결된 3부작으로 돼 있던 것을, 소포클레스가 한 작품 내에서 긴장을 조성하고 해소하는 식으로 바꿨는데, 그 중간단계가 바로 이런 양분구성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의미에 대해서. 대다수 학자들은 이 작품의 의미 역시 지나친 합리성에 대한 경고라고 본다. 하지만『오이디푸스 왕』에서는 최종적으로 비판을 받는 합리적 인간이 또한 탁월한 인물이기도 했던 것과 달리, 이 작품에서는 합리성을 대표하는 인물과 (그것을 비판하는) 탁월한 인물이 둘로 나뉘어 있다. 이 둘이 대표하는 세계관은 뚜렷한 대조를 보이고, 그 둘의 충돌과 대결이 독자로 하여금 사건의 진전을 긴장한 채 주목하게 만든다. 일종의‘국가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헤겔은 두 입장이 모두 제 나름의 근거를 갖춘, 타당한 것이라 보았지만, 현대 학자들 대다수는 안티고네의 입장이 훨씬 폭넓은 것이고, 그것이 크레온의 입장과 그저 대조만 되는 게 아니라 그것을 포괄하면서 넘어서는 것이라고들 보고 있다.

『안티고네』는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경건함이란 무엇인지, 법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지, 또 국가 안보와 양심의 문제,‘ 범법자’처벌의 한계 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옛 시인은 이런 근본적인 문제들을, 찬탄할 만한 인물의 발언과 행동을 통해, 튼튼한 구조와 미묘한 세부를 갖춘 작품으로써 우리 앞에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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