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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으로 맞이할 죽음의 문화를 위해
웃음으로 맞이할 죽음의 문화를 위해
  • 이창복 한국외대 명예교수ㆍ독문학
  • 승인 2015.03.30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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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이창복 한국외대 명예교수ㆍ독문학

"죽음은‘종말을 위한 존재’라고 했다. 슬프거나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배우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도 알게 된다는 것이다."

▲ 이창복 한국외대 명예교수
년퇴임한 지 벌써 13년이 지났다. 80세가 코앞에 있다. 역사의 본질은 변화이니 내가 몸담았던 대학도 많이 변했다. 그곳 사람들이 낯설고, 캠퍼스 시설이나 분위기도 생소하며, 교육의 성향도 바뀌었다. 이 변화 속에 어느새 나는 내가 그 긴 세월동안 몸담았던 대학 문화에 이방인이 돼버렸다. 공적, 사적인 일로 1년에 서너 번 학교를 방문하면 소외감이나 이질감이 눈처럼 쌓인다. 여기엔 원망도, 감상도, 비관도 있을 수 없다. 다만 자연의 엄격한 순리일 뿐이다.

반면 나는 새로운 문화에 익숙해졌다. 지겨운 책을 이제 그만 접어버리고, 억제됐던 욕구를 마음껏 풀어 재치고 자유롭고 멋있게 살고 싶었다. 착각은 자유라 했던가. 금세 자유는 방종으로, 멋은 추함으로 바뀌면서 내 삶의 모습도 바꿔 놓았다. 영락없는 三食이가 된 나는 아내의 눈치 보기와 비위 맞추기에 익숙해져갔다. 쓰레기 버리기, 빈 접시 나르기 등 아내의 지시가 어느새 당연해졌고, TV 앞에서의 공허한 시간, 그로 인한 자괴감과 허무감, 음악 감상으로 자족하려는 낭만적 멜랑꼴리, 이것들은 얼마 가지 않아 나를 추하고 나태한 모습으로 만들었다. 아내로 하여금 “제발 서재로!”라는 추방명령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해서 자유로운‘감방(?)’에서 나만의 생활이 다시 시작됐다. 상상도 자유다. 이 감방이 괴테가 이번에는 기어이 끝내야겠다고 다짐하면서『파우스트』원고의 먼지를 털어내고 창조의‘순수한 기쁨’을 만끽했던‘조용한 천국의 한 구석’으로 여겨졌다. 유학시절부터 모아뒀던 자료들의 먼지를 털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침내『문학과 음악의 황홀한 만남』이 출간됐다. 올해 3월 초『고통의 해석』이란 책이 햇빛을 봤다. 사유 또한 자유가 아니겠는가. 아직도 출산의 산고를 견딜 수 있으니 나는 가임 여성이 지닌 젊음과 창조력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고백컨대, 이 나만의 감방 안에서의 삶은 생존을 위한 외로운 투쟁인 것이다.

끝났으니 새로 시작해야 오래 살 수 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번엔‘죽음’이 진지한 테마로 다가온다. 생명은 죽음과 함께 잉태한다. 살아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죽음에 대한 연구는 삶에 대한 연구일 수밖에 없다. 문학, 예술은 물론 역사학, 사회학, 심리학, 의학을 포괄하는 학문의 전역을 기웃거려야 한다. 맨 손톱으로 바위를 긁는 기분이다. 나에게 시간은 짧고 할 일은 많다. 몇 년은 보장받은 기분이니 신명나고 열정이 치솟는다. 虛想이라 해도 좋으니 새로운 죽음의 문화를 세우는데 벽돌 하나를 놓고 싶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죽음이 삶과 똑같은 실존의 가치와 의미를 갖고 있음에도 어느 누구도 죽음에 대해 말하길 꺼려한다.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형이상학적으로 수용하면서 자신과의 필연적 관계를 외면하려 한다. 만일 인간 모두가 자신의 종말을 미리 안다면, 세상은 곧 대혼란의 비극적 참상으로 빠져들 것이다. 여기서 하느님이 인간에게 준 지혜의 참 뜻이 이해된다. 즉 죽음에 대해서 알아야하고,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앞서 생각하고 준비하라는 교훈이다.

하이데거는 죽음을‘종말을 위한 존재’라고 했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존재를 위한 종말이란 뜻도 가능하다. 이 말은 죽음이 단지 슬프거나 두려운 것이 아니고,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배우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마지막 말씀이 떠오른다.“ 태어나는 자는 울지만 주위 사람들은 웃고, 죽어가는 자는 웃지만 주위사람들은 울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죽음을 기억하면 삶이 풍요로워 진다. 울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웃음으로 맞이하는 새로운 죽음의 문화가 새롭게 이뤄져야 한다.
 

이창복 한국외대 명예교수ㆍ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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