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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향 : 미국대학들, 장서구입 주머니를 꽁꽁 싸매다
해외동향 : 미국대학들, 장서구입 주머니를 꽁꽁 싸매다
  • 번역-정리 이옥진 객원기자
  • 승인 2002.10.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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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9 16:11:01
미국 정부의 고등교육 예산 삭감과 경제불황이 학술서적 출판계를 얼어붙게 하고 있는 가운데 전문학술서적을 충실하게 구매해왔던 대학도서관과 공공도서관도 장서구입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대중 수요와 무관하지만 학문적으로 의미 있는 저서들을 출간하는 대학 출판부의 어려움은 더해만 간다. 미 고등교육 주간지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이하 크로니클)’ 9월 20일 자에는 대학출판부의 어려움과 일부 대학의 타개방안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학자들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빛을 볼 수 있도록 도왔던 대학출판부의 역할은 이제 팔리지 않을 책들을 선별하는 악역으로 기울게 됐다. 뉴욕주립대 출판부의 제임스 펠츠 편집장에 따르면, “경기후퇴로 책 판매가 부진했는데, ‘9·11’사태 이후로 더욱 악화됐다.” 스탠포드대 출판부도 마찬가지다. 편집장 제프리 번에 따르면 언어학, 과학사, 슬라브 문학 관련 저서들은 점차 보기 힘들어질 것이라 한다.

완전히 ‘퇴출’되지는 않았지만, 다른 학문 분야도 어려운 사정은 마찬가지다. 남미를 주제로 한 책은 역사 항목에는 끼어 있지만 문학 리스트에는 없으며, 아시아 지역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학 관련 서적은 스탠포드대 출판부에서 거의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대학출판부에는 놀랄만한 공통점이 있다. 재고목록이 인문사회과학의 책들로 뒤덮여있다는 것이다. 두 출판부는 교과서 시장을 나눠 가지고 있는 반면, 위험부담이 큰 학술잡지를 창간하지도 않았고, 다른 대학출판부들이 지난 10여 년 동안 시도해 온 책 판매 시장에 대한 투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전통적으로 학자에 의한, 학자를 위한 출판에만 집중해왔던 것이다.

스탠포드대 출판부 신간리스트의 변화는 다른 대학출판부들에 하나의 힌트를 제시한다. 가령, 아시아 지역학의 저서들은 학문적으로 뿐만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도 보상을 받는다. 중국경영법에 관한 전공논문은 중국학자와 법학자뿐만 아니라 경영학과의 현직 법률가들에게도 흥미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편집자에 따르면 스탠포드대 출판부의 목적은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학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전하는 것” 뿐 아니라 “이 지식을 다른 누가 소비할 수 있는지 물어볼 기회를 갖는 것인데, 그 질문이란 엄격한 학문성과 전문적 실용의 영역 사이에 존재하는 독특한 공간을 어떻게 대학출판이 차지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라는 말이다.

스탠포드대 출판부는 점차 대학본부로부터 재정자립을 이뤄가는 중이라고 ‘크로니클’지는 전한다. 편집장은 2006년이 되면 “대학에 재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는 출판부의 전략적 기획의 성공여부에 달려있다. 전문 분야의 서적 출판도 시장을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진행하고 있다. 순수 학문의 출판 비율은 최소한 절반 이상으로 유지하고 있다.

‘학제간 연구’ 관련 서적 역시 팔리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이 경우 사정은 더 나쁘다. 그나마 한정된 분야의 책은 ‘독자층이 선명하다’는 장점이라도 있다. 뉴욕주립대 출판부 펠츠 편집장의 경험은, 학제성을 다루는 책의 독자가 얼마나 애매한지를 잘 보여준다. “관련 전공학자들에게 광고를 보내면 두 분야의 사람들 모두로부터 항의를 듣는다”라며 이런 책의 출판은 일종의 ‘투기’라고 못박는다.

매년 2백권이 넘는 학술서적들을 출판했던 대학출판부는 올해 1백60권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고, 펠츠 편집장은 전한다. 문제는 학문서적의 권수가 줄어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나머지 40여 권의 학문분야가 사장된다는 것이고, 그리하여 출판을 하지 못하는 학자가 늘어난다는 것이며, 나아가 저서가 없으면 직장도 없다는 냉혹한 대학의 경쟁 논리 속에 도태될 위험에 처하는 학자들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번역-정리 이옥진 객원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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