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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복제 함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장치
논문 복제 함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장치
  • 임동석 건국대 명예교수·중어중문학
  • 승인 2015.03.02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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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임동석 건국대 명예교수·중어중문학

"한 분야의 지속적, 심층적, 전문적인 연구 효과도 유도하면서 작성자나 이론 보급자의 양심적 위험성도 차단해 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면 어떨까."

학문에 종사하다가 공직자나 조직의 장으로 이름이 거론되면 대부분‘논문 표절, 복제, 전재, 중복’으로 세상에 없는 비양심의 표본인양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치 학자가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물론‘여자는 미추에 관계없이 입궁하면 질투의 대상이 되고, 선비는 현불초에 관계없이 조정에 오르면 입방아의 대상이 된다(女無美惡, 入宮見妬. 士無賢겘肖, 入朝見嫉)’라 했으니 드러나면 보게 되고, 보이면 품평의 표적이 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렇다면 어떤 검증에도 자유로울 수 있는 자란 극히 드문 것일까. 또는 학문의 길로 들어선 자의 관례가 그런 것일까. 물론 공직자나 조직의 장은 능력 못지않게 도덕과 양심, 정의와 정도라는 엄격한 기준이 선행되지 않으면 사회는 신뢰를 잃게 되고, 힘을 갖지 못한 자는 기댈 곳이 없게 된다. 우리는 그러한 검증과 여과과정에 대해 어떠한 이의도 달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 앞서 장치가 마련됐으면 한다. 이를테면 한 분야를 장기간 연구하다 보면 학회나 세미나, 토론회, 포럼 등에 기조발언, 발제강론, 주제발표 등을 거쳐 논문 형태를 갖춰 줄 것과 논문집으로 출간하게 될 것임을 통고 받게 된다. 이때 추가사항을 약간 덧붙일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주제의 제한으로 인해 이미 발표한 내용의 중복과 자기 인용, 자기 반복이 어쩔 수 없이 일정 양을 차지하게 되는데 혹시 자기 복제, 중복, 전재의 덫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생겨 선뜻 내키지 않는다.

학문의 성격상 다방향 못지않게 一線型연구가 요구되는 분야가 더 많다. 건축물로 비유하면 한 층을 더 올려 지을 때 기존 성과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존 결과를 안고 들어가는 서술이 자기 복제라면 새롭게 평면적으로 면적만 넓혀가는 방식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 없다.

한 분야의 지속적, 심층적, 전문적인 연구 효과도 유도하면서 작성자나 이론 보급자의 양심적 위험성도 차단해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면 어떨까. 지금의 논문 형식은 첫머리 각주 앞에 대체로 사사를 밝힌다. 이 난에‘본 논문은 연구실적에 추가 포함되지 않으며 이미 발표된 논문(유사논문 포함)을 필요에 의해 전재, 재발표, 구두발표하는 것임. 아울러 연구비 등 일체 경비는 별도 지급받지 않았음’의 의미를 압축한 표준 서술 형식을 만들어 밝히는 장치를 일반화하는 것이다.

아울러 그러한 사사를 근거로 이는 자동적으로 연구 실적에 등록되지 않도록 하며, 그렇게 되면 자신도 떳떳하고 동일 학문의 일선적 발전, 나아가 다양한 파급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선배 학자들의 회갑, 퇴임, 고희 논문집에‘이미 발표된 논문’도 전재했고, 동일 분야의 학자끼리는 필요에 의해 기존 논문을 모아 출간해 후학의 편의를 제공하기도 했다. 물론 자신이 등록하지 않으면 된다고 하지만 그보다 원천적 제도나 장치가 없기 때문에 간혹 실수나 유혹의 굴레에 벗어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물론 필자는 학자로서 부당한 자기 복제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계량적 논문 편수 실적 증가를 위한 비양심이 숨어 있다면 이는 마땅히 지탄받아야 하며 질타의 대상이 돼야 한다.

『논어』에 군자의 모습은‘일식이나 월식과 같다(君子之過也, 如日月之食焉)’고 했다. 누구나 다 보고 있다는 말이다. 세상은 학자를 군자로 여긴다. 그러니 모든 일에 떳떳해야 함은 의무가 아니라 원천적 도덕률이다.

임동석 건국대 명예교수·중어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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