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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기업화에 대한 날선 비판 … 省察이 먼저다!
대학의 기업화에 대한 날선 비판 … 省察이 먼저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12.10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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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_ 『최후의 교수들: 영리형 대학 시대에 인문학하기』 프랭크 도너휴 지음|차익종 옮김|일월서각|335쪽|18,000원

저자는 녹록지 않은 대학의 현실 앞에서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무심한 교수들에게 현실을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현대 대학이 어떤 논리 속에서 운영되고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인문학 교수들 자신의 행동이 어떻게 위기를 재생산하는지 돌아보라며 반성을 촉구한다.”
―서보명 시카고신학대학원 교수

 

‘최후의(The last)’라는 수식처럼 의미심장한 수식이 또 있을까. 오하이오주립대 영문학과 교수로 있는 저자 프랭크 도너휴의 책 『최후의 교수들』은 대학 서열 경쟁에 뛰어든 주립대학과 거기에 묶인 교수들의 내밀한 풍경을 짚어냈다. ‘영리형 대학 시대에 인문학하기’라는 책의 부제 역시 심상치 않다. 그리고 이러한 부제는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으면서도 어떤 방향으로 대학이 변화해가야 하는지 여전히 성찰이 부족한 한국 대학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사실 이 책은 옮긴이가 먼저 번역을 제안해 나온 케이스다. 차익종 박사는 교양과목 부교재로 활용할 책을 찾던 중 특별히 돋보이게 대학의 위기를 언급한 이 책에 눈이 머물렀다. 그는 “대학 서열 경쟁에 뛰어든 주립대학들이 ‘짬뽕 대학’으로 전락하면서 어떻게 모든 대학이 똑같아지고 있는지, 엘리트 사립대학이 특권층의 자기재생산 수단이 되면서 전통적인 자유교양의 의미가 어떻게 바래고 있는지도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라고 책의 의미를 짚었다.

줄어드는 테뉴어(트랙) 교수 자리와 ‘강의실의 유령들’
그렇다면, 저자는 대체 어째서 ‘최후의 교수들’이라고 말한 것일까. 프랭크 도너휴는 미국의 테뉴어 교수, ‘종신재직’이 보장된 교수가 ‘적어도’ 인문학 분야에서는 곧 ‘멸종’된다고 선언한다. 실제로 1970년대부터 미국의 대학, 특히 인문학 분야에서 테뉴어 혹은 테뉴어트랙 교수(종신교수에 지원할 수 있는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정이 좋은 편인 하버드대에서도 비정년트랙이 45%를 차지하고, 공립교육의 들보 역할을 했던 커뮤니티 칼리지는 종신교수가 거의 전무하다.


종신교수를 종착지로 생각하는 이들은 비정규 시간강사들이다. 이들은 수입이 끊기는 방학 전에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하기 때문에, 주 경계를 넘나들어 고속도로를 질주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스스로를 ‘고속도로 인생(highway flyer)’, ‘강의실의 유령’, ‘대학 집시’ 등으로 자조하기도 한다. 한국의 비정규 시간강사들 역시 자신을 ‘유령’으로 표현하지 않던가! 그럼에도 이들이 이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이유는 딱 하나, 언젠가는 ‘전임교수’가 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저자에 의하면, 이들 ‘고속도로 인생’, ‘강의실의 유령’들이 선망하는 교수 자리, 특히 테뉴어트랙 자리가 없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수요공급의 일시적 불균형 탓이 아니다. 미국의 대학에서 ‘교수 수요’가 아예 사라지는 쪽으로 바뀌는 상황이 도래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런 상황 변화는 1970년대부터 이어진 미국경제의 불황이다. 이것이 외적인 조건인 셈이다. 상황 변화를 일으킨 내적 동력은 기업과 대학의 관계 역전이다. 20세기 초까지 미국의 기업계는 대학을 비생산적 조직으로 규정하며 끊임없이 공격했으나 대학 내부의 일에 직접 개입하는 일은 드물었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대학 기업화의 제1막이다. 이제, 훈수만 두고 직접 개입하지 않던 기업들이 대학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기업이 직접 대학에 개입하거나 대학이 기업을 모방함으로써, 대학이 곧 기업식 조직이 된 시기가 제2막이다. 대학의 재정이 어려워지자 효율성, 생산성, 표준화 등의 논리를 필두로 하는 기업식 관리가 대학에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CEO 총장, 경영 전략 등, 대학이 기업을 모방하는 풍경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대학이 기업화 되는 추세의 절정은 설립 취지를 ‘영리’ 즉 돈 버는 것 자체에 두는 영리목적 대학(For Profit University)’의 부상이다. 저자가 제시한 자료를 보면, 학생 수 30만 명을 자랑하는 피닉스대학을 비롯한 영리목적 교육기관은 저마다 주식시장에 상장돼 최고급 수익을 올리는 신흥 사업체로 조명 받고 있다. 이들에 대해 ‘부실하기 짝이 없는 온라인 학위장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주식시장에서 여전히 잘 나가고 있다.

▲ 영리대학의 기치를 올려 주가가 오른 피닉스대학 캠퍼스 모습.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이 하나 있다. 이러한 영리목적 대학의 부상은 미국 고등교육의 들보 노릇을 하던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와 주립 4년제 대학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것. 많은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들은 스스로 기업식 대학이 돼가고 있고, 역사와 전통에 불구하고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대학은 매각돼 전혀 다른 성격의 ‘직업학교’로 바뀌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주정부의 지원에 의존해오던 주립대학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연구와 교육 두 마리 토끼를 쫓던 이들 주립대들은 줄어든 ‘파이’ 즉 공공 연구기금을 놓고 아이비리그로 대표되는 엘리트 사립대학들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러나 이 경쟁은 불 보듯 그 결과가 뻔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주립대학 인문학 교수가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 저자는 인문학 교수들의 미래가 흔들린다고 말하지만, 아이비리그 엘리트 사립대들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저자는 이들 ‘엘리트 사립대학’도 인문학 교수직의 멸종을 막는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어째서 그런가. 미국의 대학 3천500개 가운데 박사학위를 수여하는 곳은 133개 대학에 불과하고, 사립 엘리트 대학의 수는 이보다 훨씬 적으니 수적으로도 영향력이 없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결정적인 것은 오늘날 사립 엘리트 대학의 입학 정책이 점점 폐쇄적이 됐으며, 학생들의 면모 또한 그러하다는 것이다. 높은 등록금, 비싼 입시 비용은 점점 더 입학생 중 상류계층 동문의 자녀가 많아지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확실히 저자는 미국 인문학의 미래를 암담하게 예측하고 있다. 그는 ‘고속도로 인생’, ‘강의실의 유령’들에게, 나아가 대학 교수나 교직원들에게 어떤 희망을 섣불리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인문학자들 자신의 성찰을 거듭 촉구한다. 어째서일까. 전공이 한 없이 세분화되면서 학자들끼리도 소통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대학이 사회적 양심의 피난처가 돼야 한다며 학문의 자유를 주장하면서도 실제로 자기 전공과 사회와의 관련성에 대한 고민은 별로 하지 않는 모습, 대학 교원의 다수를 차지한 비정규 강사의 존재와 그들의 현실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는 태도, 대학원 과정부터 연구 실적 경쟁에 시달리는 대학원생들을 방치하는 현실 …….

교수직의 멸종을 예측할 수 있으려면?
그렇다고 저자가 자기비판만 던진 것은 아니다. 그는 취업이란 ‘유행어’에 따라 교육 과정이 바뀌며 인기 학과도 변하고 있는 대학 현실을 직시한다. 이런 식으로 교육을 바꿔서 취업과 승진에 도움을 줬는가? 저자는 이것부터 따져봐야 한다고 꼬집는다. 지난 30년간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고 직업 교육의 비중도 늘었는데, 왜 미국 산업의 평균임금은 줄어들고 있는가? 또 대학 교육을 직업 훈련 중심으로 하는 것이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신조가 잘못임을 비판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쯤 되면 저자의 마지막 제언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가 인문학자들의 자기 성찰을 강조했다는 것은 앞에서도 썼다. 전통적 교수의 멸종이 분명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위기’라고 추상화하지도, 자기 전공을 ‘낭만화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교수직의 멸종을 예측할 수 있으려면, 자기 직업에 대한 사회학자임은 물론 제도역사가가 돼야 한다. 즉 학술연구, 종신교수제 및 교수 지위의 역사를 제도역사적 측면에서 연구하고 끊임없이 변천해온 대학 교과과정의 역사를 제도역사적 관점에서 파악해야만 우리의 미래를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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