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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무단복제, 근절대책은?
대학가 무단복제, 근절대책은?
  • 김기태 세명대·미디어창작학
  • 승인 2014.09.22 1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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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세명대 교수·미디어창작학

대학가의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우리 학술출판계는 고질적인 무단복제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급기야 ‘위기상황’을 넘어 아예‘출판중단’이 불가피하다는 선언을 한 적도 있었지만 별 효험이 없는 듯하다.

실제로 캠퍼스에서는 기업화한 복사업체를 통해 대량으로 무단복제가 성행함으로써 교재로 쓰이는 학술도서들이 전혀 팔리지 않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어느 대학의 경우 수강생이 200여 명인 강좌에서 정작 교재는 단 한 권밖에 팔리지 않았다는 믿기 힘든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엄연히 ‘저작권’이라는 권리가 존재하며, 이를 어겼을 때에는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법으로 명시돼 있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기엔 후안무치하기 이를 데 없다.

중·고교 시절에 흔히 볼 수 있었던 교실 풍경 하나. 선생님은 짧지만 강력한 파워를 자랑하는 사랑의 매를 휘두르며 교과서를 가져오지 않은 아이들을 혼내곤 했다. 그때마다 터져나왔던 선생님의 일갈은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이 총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겠냐?”는 것이었다. 전쟁터에서 적을 공격하고 자기 목숨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무기로서의 ‘총’과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 지참해야 할 ‘교과서’를 동일시함으로써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일깨워줬던 것이다. 그렇다면 무단복제한 복사본 교재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군대로 치면 아마도 총은 총이되 플라스틱으로 그럴 듯하게 만들어진 장난감 총을 나눠주었다고나 할까. 아무리 방아쇠를 당긴들 적을 물리치기는커녕 자기 목숨도 지켜주지 못하는 무용지물이라는 점에서 장난감 총은 실제 전쟁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건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우리 대학가에서 무단복제가 횡행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가장 큰 책임은 일차적으로 교·강사들에게 있다. 적절한 교재를 선정하는 것은 물론 그것이 해당 교과목 학습에 있어 주된 수단이라면 당연히 학생들이 정당한 절차를 거쳐 구입한 정본교재를 지참하도록 지도해야 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을 엄격하게 관리 감독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정본이 복제본으로 둔갑하기 일쑤다. 교·강사의 입장에서 보면 ‘교재를 강매한다’는 민원의 대상이 되거나‘너무 비싸다’는 원성을 듣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귀찮은 일들이 생기다 보니 무단복제 행위를 알면서도 모른 척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경우에는 매 학기 첫 시간에 교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만일 정본 교재를 지참하지 않는 경우 출석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 만일 교수의 처사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수강정정 기간에 다른 교과목으로 바꿔 수강할 것을 권유한다. 결과는 어떨까. 10여 년 이상 지켜본 바에 따르면 수강생 수가 줄어든다거나 그로 인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 등의 부작용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물론 무조건 또는 강압적으로 교재 지참을 종용하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다. 왜 교재가 중요하며 무단복제를 하면 안 되는지, 학습 윤리 차원에서 학생들을 설득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이제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남의 물건을 훔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밥값이 없으면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만일 남의 물건을 함부로 훔치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고 밥값을 내지 않게 되면 처벌을 받게 된다. 저작권도 마찬가지다. 저작물을 창작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힘든 과정을 거쳐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게 된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집을 사고 땅을 사서 재산으로 삼는 것처럼 저작물 또한 누군가의 노력에 의한 재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물질이 육체를 지켜주는 영양분이라면 저작물은 우리 정신을 올바르게 안정시키는 마음의 양식이다. 책을 무단복제하는 행위는 분명 비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범죄행위이며, 그런 일이 대학가에서 버젓이 일어나는 나라는 여러모로 후진국임에 틀림없다. 교수자라면 나날이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지식재산권, 특히 저작권의 보호야말로 지식인임을 자처하는 모든 이들의 ‘양심’을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할 권리임을 학생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거듭 일깨워줘야 한다.

김기태 세명대 교수·미디어창작학 
경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신문방송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전자출판학회 회장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연구윤리 평가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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