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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세상 識者 노릇의 어려움
인간세상 識者 노릇의 어려움
  • 이연도 서평위원/중앙대 교양학부·철학
  • 승인 2014.09.0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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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_우리는 생각한다] 이연도 서평위원/중앙대 교양학부·철학

갑오년이라 그런가. 올핸 유난히 사고가 많다. 연초 경주 대학생 오리엔테이션 붕괴사고부터, 세월호 참사, 그리고 지난 주 부산 폭우로 인한 인명 피해까지, 거의 매주 새로운 일들이 터지다 보니, 신문 보기가 겁이 날 지경이다. 사람들을 더욱 기막히게 하는 건, 사고의 책임을 따지고 재발을 막는 최소한의 조치들이 고의이든 능력부족이든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된 나라인가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韓非子』 「亡徵篇」은 나라가 망하려는 징조를 일곱 가지로 들어 말하고 있다. “나라는 작은데 대부의 영지가 크고, 임금의 권세는 가벼운데 신하의 힘이 세면 나라는 망한다. 법령에 의하지 않고 모략와 잔꾀로 일을 처리하고, 나라의 방비를 소홀히 하면서 외부의 도움만 믿고 있으면 망한다. 신하들이 공리공담을 일삼고, 대부의 자제들이 변론하기 좋아하며, 상인들이 재물을 다른 나라에 쌓아두고, 백성들이 곤궁하면 나라는 망한다. 궁실과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고, 수레와 의복, 기물들이 호화로운데, 백성들이 헐벗으면 나라는 망한다. 날을 받아 귀신을 섬기고, 점괘를 믿고 제사 지내기를 좋아하면 나라는 망한다. 높은 벼슬아치의 말만 따르고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며, 한 사람만을 요직에 앉히면 나라는 망한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집단이 신뢰를 잃고, 나라의 부를 독점한 사람들은 국외의 계좌로 돈을 빼돌린다. 빈부의 격차와 비정규직의 비율은 날로 늘어나고, 권력의 요직과 인사는 소수의 측근에 의해 결정된다. 2천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에서 한비자의 말이 서늘하게 느껴진다.

연초부터 크고 작은 사고로 놀란 가슴이 돌아볼 여유가 없었지만, 올해는 동학농민혁명 2周甲이 되는 해다. 마지막 숨결이었던 동학농민군의 봉기가 실패로 돌아간 뒤, 조선은 끝내 망했다. 5천년 자주민족의 긍지 또한 식민지 노예민족의 참담함으로 전락했다. 조선이 왜 망했는지는 모두들 대략 알고 있다. 그럼에도 국외자의 눈에 비친 亡國 조선의 모습은 기이하고 한심스럽다. 최근 출간된 『량치차오,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최형욱 옮김, 글항아리)를 읽으면 오랜 기억의 상처가 저릿하게 느껴진다.

청말 변법운동의 기수이며, 근현대 중국의 대표적인 사상가인 양계초는 조선 망국의 제일원인으로 궁정과 양반들의 무능과 몰염치를 들고 있다. 그가 본 양반들은 惡의 근원으로 “모두 높이 받들어지고 넉넉한 곳에 처하며, 교만하고 방탕하여 일하지 않고”, 조선의 관공서는 국사를 수행하기보다는 ‘직업 없는 사람들의 봉양’을 위한 기구였다. 한일병합조약을 공포하기 며칠 전, 한국정부의 황제즉위 축하연의 모습은 무능한 임금과 신하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날 대연회에 신하들이 몰려들어 평상시처럼 즐겼으며, 일본 통감 역시 외국 사신의 예에 따라 그 사이에서 축하하고 기뻐했다. 세계 각국의 무릇 혈기 있는 자들은 한국 군신들의 달관한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나라가 망하는 것이 어찌 지도층만의 잘못이겠는가. 양계초가 본 조선인들은 화를 잘 내고 일을 만들기를 좋아하지만, 미래에 대한 관념이 매우 박약한 민족이었다. 모욕을 당하면 크게 화를 내지만, 그 분노가 오래 지속되지 않고 금방 식어버린다는 그의 조롱은 씁쓸하고 불쾌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도 안중근 의사 같은 이가 있지 않았느냐는 항변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이런 구절이 있다. “무릇 조선 사람 1천만명 중에서 안중근 같은 이가 또한 한둘쯤 없지는 않았다. 내가 어찌 일률적으로 멸시하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유의 사람은 본래 1억만 명 중에서 한둘에 지나지 않으며, 설령 한두 사람이 있더라도 또한 사회에서 중시되지 않는다.”

조선이 망한 것은 일본의 무력이나 당시의 국제정세에 의한 요인도 있지만, 결국 조선 스스로 망하는 길을 취한 데 그 직접적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조선의 망국은 가엾게 여길 가치가 없다고 양계초는 말한다. 그가 파악한 조선이 망한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 “대체로 조선 사회는 음험하고 부끄러움이 없는 자가 번성하는 처지에 놓였고, 정결하고 자애로운 자는 쇠멸하는 처지에 놓였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최근 일본에 다시 불고 있는 ‘내셔널리즘’은 가라타니 고진의 『역사와 반복』(조영일 옮김, 도서출판 b)을 떠올리게 하지만, 우리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오늘 우리 사회에서 번성하는 자들과 정결한 사람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심란하다. 梅泉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가을밤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역사 생각하니, 인간세상 식자 노릇 참으로 어렵다(秋燈掩卷懷千古, 難作人間識字人).” 

이연도 서평위원/중앙대·철학

필자는 중국 베이징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앙대 교양학부 교수로 있다. 『강유위가 들려주는 대동 이야기』(저서)와 『孔子傳』(번역서) 등을 비롯 「근현대 중국 이상사회론의 철학적 탐구」, 「근대 중국의 제국 담론 고찰」 등의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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