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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축내는 해충…산란 버릇 怪奇해
도토리 축내는 해충…산란 버릇 怪奇해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4.09.01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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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_112. 도토리거위벌레
▲ 도토리거위벌레 <출처 네이버백과사전>
같잖은 칠월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마지막 老炎이 기승을 부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장마총량의 법칙(?)’에 따른 탓인지 몰라도, 장마철에 못다 내린 비를 내리느라 그런지 늦여름장마가 제법 오래간다. 한데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臥死步生)는 말만 믿고 하루도 빼지 않고 미련스럽게 무려 반 삼십년을 걸었다. 오늘 오후도 춘천의 애막골 산등성이를 걷고 뛸 참인데, 그러고 나면 밥맛 나고, 밤잠 잘 와서 좋다. 게다가 老軀에 군살만큼 해로운 것이 없다기에 배고픔을 즐기며 산다. 물론 걸으면서 깊은 상념에 잠겨 좋고.

오솔길 양편에는 주로 소나무 숲이지만 띄엄띄엄 참나무들도 자리하는데, 참나무란 너도밤나무과(科)의 신갈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따위를 이른다. 산책을 즐기는 여러분들도 그것들과 맞닥뜨렸을 줄 알지만, 매해 이때면  빠짐없이 참나무 아랫길 바닥에 도토리(acorn)가 매달린 참나무 잎가지가 발에 밟힐 정도로 즐비하게 널브러진다. 나를 좀 아는 사람들은 어리둥절 영문을 몰라 저게 뭐며, 왜 그런가를 따져 묻는다.

그것들을 허리 굽혀 주워 보면, 하나같이 도토리를 매단 兒枝(어린줄기) 끝자락 2~3㎝ 남짓이 가위나 칼로 자른 듯 끊어졌으니, 이는 저절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뭔가가 일부러 그랬음을 직감한다. 도토리를 축내는 해충(害蟲)인, 흔히 ‘도토리가위벌레’라고 불리는, ‘도토리거위벌레(Mechoris ursulus)라는 놈이 한 짓이다.

어쨌거나 괴기한 산란 버릇을 가진 도토리거위벌레는 딱정벌레목, 거위벌레과에 들며, 성충의 몸길이는 약 9㎜이고, 날개 길이와 비슷하게 긴 주둥이가 났으며, 주둥이가 길쭉한 것이 마치 거위(goose)를 닮았다고 도토리거위벌레란 이름이 붙었다. 한살이(생활사)는 ‘알-애벌레-번데기-어른벌레’ 순이고, 암컷은 수컷에 비해 머리 뒤쪽이 짧은 편이다. 체색은 짙은 자줏빛을 띤 붉은색이고, 머리와 가슴은 검은색이며, 몸은 배 쪽으로 굽어 있어 살지고 똥똥하게 보인다.

아무튼 막 주운 나뭇가지 끝에 달린 풋 도토리는 하나같이 아직 여린  것이 새파랗고 반드르르하며, 아직 다 자라지 못해 總苞(꽃의 밑동을 싸고 있는 비늘 모양의 조각)가 변한 ‘깍정이(殼斗)’에 파묻히다시피 한다. 깍정이(acorn cup)란 열매를 감싸고 있는 술잔 꼴의 받침대로 소꿉장난하면서 밥그릇, 국그릇으로 썼던 것으로, 도토리가 익으면 절로 씨알과 각두는 서로 나눠 떨어진다.

그런데 깍정이에 눈을 가까이 대고 가만히 살펴보니, 중간쯤에 거무튀튀한 반점 하나가 별나게 눈에 띄어 그 자리를 손톱으로 조심조심 까보니 안의 도토리에도 빠끔한 黑點이 하나 나 있는 게 아니겠는가. 틀림없다, 도토리거위벌레의 成蟲(어른벌레)이 깍정이와 도토리에 예리한 긴 주둥이를 꽂아 구멍을 내고, 거기에 産卵管을 꽂아 受精卵을 산란한 자국이다. 그러고 난 후에 가지 끝자리를 가윗날같이 날카로운 주둥이로 무쩍무쩍 잘라 얼른 땅바닥으로 떨어뜨린다. 그리고 성충 한 마리가 보통 이삼십 개의 알을 슨다고 하니 따라서 한 마리가 도토리가지 여럿을 떨어뜨린 셈이다. 그런 내력도 모르는 아낙네들은 도토리묵 해먹겠다고, 흐드러지게 떨어진 도사리(다 익지 못한 채로 떨어진 과실)와 함께 길바닥의 그것들도 싹싹 쓸어 담는다.

도토리 속의 도토리거위벌레 알은 5∼8일이 지나 애벌레로 부화해 도토리(果肉)를 파먹고 자라 20여일 뒤에 땅속 3∼9㎝ 깊이까지 파고들어가 흙집을 지어 유충 상태로 월동하고, 이듬해 5월 하순경에 번데기가 됐다가 이맘때쯤 성충이 된다. 바로 지금 그놈들이 참나무를 타고 올라가 산란행위를 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늦봄에 바로 그 자리에서 도톰한 직사각형의 딱지 닮은 잎 뭉텅이가 길바닥 곳곳에 흐드러지게 깔려있는 것을 봤을 것이다. 이는 왕거위벌레(Paracycnotrachelus longiceps)라는 딱정벌레목, 거위벌레과의 곤충의 소행이다. 서양에서는 잎말이(leaf-rolling)선수라고 해서 잎말이딱정벌레로 불리는 거위벌레로(한국에 60여종이 있음) 또한 거위를 빼닮았다.

몸길이는 8~12㎜이며 대체로 붉은 갈색인데 딱지날개와 앞가슴등판은 검붉은 색이며 광택이 강하고, ‘알-유충-번데기-성충’으로 완전변태(갖춘탈바꿈) 하며, 이 종은 역시 산림해충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도토리거위벌레처럼 참나무를 먹이식물(diet plant)로 삼으며, 너부죽한 참나무 잎에 산란하고, 굳센 잎맥을 깨물어 흠집을 내 꼬부리기 쉽게 한 다음 김밥처럼 잎사귀를 켜켜이 돌돌 말아 뭉쳐서 나무에 매달아 두거나 맨땅바닥에 떨어뜨려 두니, 부화된 유충이 그 잎을 갉아먹고 자란다.

여기까지 두 곤충의 독특한 산란습성을 간단히 살펴봤는데, 놀랍게도 덜 익은 도토리에 구멍을 뚫어 알을 낳는 것도 그렇지만, 잎을 마름질하는 솜씨도 믿기지 않을 만큼 섬세하고 정교하다. 아무리 타고난 본능이라 한다지만 놈들의 재주가 참 용하다 하겠다.

고만고만한 사람끼리 서로 다툼을 놓고 ‘도토리 키 재기’라거나 ‘난쟁이끼리 키 자랑하기’라 하고, ‘개밥에 도토리’란 따돌림을 받아서 여럿 축에 끼지 못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또한‘도토리가 지리면(많이 열리면) 흉년’이라는데 아직 올해 굴밤소출이 어떤지 가늠하지 못하겠지만, 아무렴 다람쥐, 멧돼지가 굶는 한이 있어도 우리는 배불리 먹어야 할 터인데…. ‘풍년 개 팔자’가 됐으면 좋겠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 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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