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2:30 (금)
현대인을 ‘지킬앤하이드’로 만드는 그것의 정체
현대인을 ‘지킬앤하이드’로 만드는 그것의 정체
  •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 승인 2014.05.28 10: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키워드로 읽는 과학本色 60. 화(Anger)

▲ 미국의 ABC뉴스는 화가 얼마나 심장에 안좋은지 하버드대 연구를 인용해 보도했다. 사진 =「화가 심장 건강에 미치는 영향」, 2014년 3월 4일자 동영상 뉴스 캡처.) 화를 내는 순간 우리의 뇌는 아드레날린을 혈액 속에 방류한다. 이로 인해 혈압이 올라가고 심장이 작동하는 데 어렵게 된다. 특히 심장 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겐 더욱 위험하다.

최근 우리나라는 분노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방화, 폭행, 자살, 살인 등의 ‘홧김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일 대구에선 남자가 홧김에 여자 친구의 부모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교제를 반대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올해 2월 서울에서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집에 불을 질러 어머니를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이 학생은 대학입시 후 친구들과 자유롭게 술을 마시던 중, 이를 말리는 어머니의 잔소리 때문에 홧김에 범죄를 저질렀다. 일련의 사건들 중심에 ‘화(Anger)’가 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 8월말까지 총 6천998명이 방화 피의자로 검거됐다. 범행 동기로는 우발적인 경우가 41.5%로 가장 높았고, 현실불만 11%, 가정불화 6.5%가 뒤를 이었다. 직업별로는 무직자가 36%로 가장 많았고, 일용노동자가 11.2%로 뒤를 이었다. 연령대로는 40~50대가 전체의 53%를 차지했다. 10대 청소년들도 13.2%가 검거됐다. 사회적 문제가 개인의 화를 돋구는 셈이다.

火病은 문화와 관련된 정신의학적 증후군
‘화(Anger)’는 현대인들을 지킬앤하이드로 만들었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현대사회는 스트레스의 용광로에 휩싸여 있다. 심리치료사 비벌리 엔젤에 따르면 대표적 이중인격은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관계없이 불현듯 불같이 화를 내며 변덕을 부리는 예측불허형이다. 한순간 착하고 다정하다가 다음 순간 사납게 변해버리는 선악의 양극형이다. 화는 인간이 느끼는 억울하고 분한 감정이다. 한국사회는 화를 분출하기보다 다스리고 참으라고 강요하는 전통문화사상이 굳건히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감정 반응이 불안전하게 억제돼 장기간에 걸쳐 누적되면 火病이 된다. 마치 풍선효과처럼 한쪽 감정을 억누르면 다른 쪽에서 무언가 부풀기 마련이다.


자신을 화나게 만드는 원인은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참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시대의 노이로제』(하나의학사, 2008. 이하 관련 내용 참조)의 저자 민성길에 따르면, 정신과 의사들은 화병을 한국 사회문화와 관련된 ‘문화 관련 증후군(curture-related syndrome)’으로 보았다. 한의사들은 화병을 순수하게 우리나라 민간에서만 통용되는 개념이며, 한국의 문화와 관련된 정신의학적 증후군으로 보았다.


울화병은 우울증과 신체장애가 복합돼 범불안장애, 공황 증상, 공포증 등으로 빈번히 나타나는 독특한 증후군이다. 화병의 증상으로는 답답한 가슴, 숨이 막힘, 얼굴이나 가슴의 열감, 억울하고 분함, 두통이나 어지러움, 잠을 이루지 못함, 입이나 목이 마름, 화 또는 분노의 폭발, 억울함, 두려운 생각이나 깜짝깜짝 놀람 등이 있다. ‘노이로제(neurose)’라는 용어는 신경증(neurosis)의 독일어식 표현이다. 화병은 바로 노이로제에 해당한다. 즉, 뇌의 병 같지만 막상 뇌의 신경에는 이상이 없고, 그 증상이 정신적 원인에 의한 병명을 뜻한다.


미국의 ABC뉴스는 화가 얼마나 심장에 안 좋은지 하버드대 연구를 인용해 보도한 바 있다.(「화가 심장 건강에 미치는 영향」, 2014년 3월 4일자) 화를 참지 못하면 심장마비나 뇌졸중에 걸릴 위험이 더 높다는 연구결과다. 심장마비는 5배, 뇌졸중은 3배나 더 많다. 문제는 화를 멈춘 후에도 계속된다. 화를 낸 지 2시간 동안 그러한 위험은 지속된 것으로 밝혀졌다. 나의 감정이 나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증거다. 화를 내는 순간 우리의 뇌는 아드레날린을 혈액 속에 방류한다. 이로 인해 혈압이 올라가고 심장 작동이 어렵게 된다. 특히 심장 질환이 있는 사람들에겐 더욱 위험하다.

뇌의 감정적 측면과 인지적 측면
심리학자들은 정서를 인지적 측면(행복, 공포, 분노라고 부르는 어떤 것)과 감정적 측면(실제로 느끼는 것)으로 구분한다. 우리는 우선적으로 신체반응을 지각함으로써 어떤 정서인지를 인지한다. 제임스-랑게 이론(James-Lange theory)에 따르면 자율 신경적 흥분과 골격반응이 먼저 일어나고 정서가 뒤따른다. 『생물심리학』(J. W. 칼라트 지음, 김문수 외 옮김, 박학사, 2014)과 『멘붕 탈출 스트레스 관리』(최윤미 외 지음, 학지사, 2013)의 관련 내용을 따르면 이렇다.


예를 들어, 자율신경계에 의해 우리 몸이 위협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되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에피네프린(epinephrine)을 분비한다. 그 결과 심장박동, 혈압, 호흡률이 증가해 각 근육에 포도당과 산소가 증가해 에너지가 공급된다. 그러나 몸이 이와 같은 스트레스 반응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면, 호르몬은 계속해서 분비돼 강렬한 감정이 발생한다.


만약 실험을 통해 이유 없이 어떤 사람의 심박률과 호흡률을 매우 높은 수준으로 증가시키면, 대다수는 그 경험을 극심한 공포라고 재빨리 인식한다. 똑같은 환경에서 어떤 이들은 미리, 발생하지도 않은 신체의 극심한 공포가 생길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공포는 불이 돼 얼굴을 빨갛게 만들고, 몸에 진땀을 내고, 가슴을 뛰게 하고, 답답하게 하며, 입 속을 태우고, 육체를 태운다. 그 결과 이들은 과거 무섭고 두려웠던 경험에 대해 공포를 느껴 공황장애와 같은 한 층 더 심한 발작을 일으킨다.

개인적 차원보다 사회적 문제
누군가 홧김에 저지른 범죄를 단지 그 사람의 분노조절미숙 때문이라고만 치부할 것인가. 화를 품고 있는 약자들에게 분노는 최후의 의사표현 중의 하나다. 이들이 과거에 받은 여러 가지 스트레스, 갑작스러운 충격, 화는 암묵적으로 현재의 일부분이 돼 있다. 쌓여있는 분노는 직접 표출하거나, 시간이 지난 뒤 앙갚음을 하거나, 다른 이로 하여금 행동에 옮기게 하며 해소된다. 전문가들은 인류의 약 5%가 화병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현재 화병은 의학계에서도 질환의 개념으로 인정하고 있다. 의료사회학에선 질병이 없는 상태보다는 항상성을 유지하고 있는 걸 건강한 상태로 보고 있다. 비슷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평정심이야말로 건강 자체라는 것이다. 강력한 처벌과 질책 그리고 무관심이 계속 이어진다면, 분노는 화풀이 대상을 찾아 허공을 떠돌거나 다음 세대에 대물림 될 것이다. 편견 없는 대화로 상처받은 이들의 하소연을 들어줄 수 있을 때 ‘홧김 범죄’도 예방할 수 있다. 와 분노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kimyital@empas.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