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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애도는 교육을 바로 세우는 것 … 공적 책임의식 키우자”
“최선의 애도는 교육을 바로 세우는 것 … 공적 책임의식 키우자”
  • 김봉억 기자
  • 승인 2014.05.19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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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참사 앞에 이어지는 교수들의 自省

2014년 5월 15일, 스승의 날은 교수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세월호 침몰 참사는 우리 모두에게 특별한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고 교수들은 말했다. 스승의 날을 맞아 성찰의 마음을 전해 준 연세대, 경희대, 성균관대 교수들과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ㆍ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해외 교수ㆍ학자들의 목소리를 정리했다.

‘슬픔을 안고 공동체 회복의 실천으로’
(연세대 교수 131명 시국선언, 5월 14일)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우리가 동시에 목격한 것은 국가라는 제도의 침몰과 책임의식이라는 윤리와 양심의 침몰이었습니다. 특히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는 이번 참사를 철저히 파헤치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저희들이 보기에, 이번 참사의 근본 원인은 물질적 탐욕에 젖은 나머지 생명의 가치를 내팽개친 황금만능주의, 편법과 탈법의 관행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여 온 결과중심주의에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범적으로 이루어 왔다고 자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삶과 생명에 대한 철학 및 성찰이 빈곤한 반인간적 사회인지를 여실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책임을 진 모든 이들도 우리의 반성과 참회에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국민의 안전ㆍ자유ㆍ행복의 보장에 소홀했던 현 정부를 포함한 정치권은 스스로 철저히 반성하면서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기업들 또한 공정경쟁을 왜곡하고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있지 않았는지 진지하게 자신들을 돌아보고 정경유착이라는 낡고 잘못된 관행과 결별해야 합니다. 언론은 갑갑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신문고의 역할을 제대로 담당해 왔는지 경험하게 자성하면서 불법과 탈법을 적극적으로 고발하고 민주주의를 위한 권력 감시를 올바로 수행해야 합니다.

어린 학생들은 엄중한 역사적 숙제를 안기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이들의 죽음 앞에 대한민국의 모든 어른들은 근본적인 참회와 성찰에 기초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으로 응답해야 할 것입니다.”

‘스승의 날을 반납합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184명 선언, 5월 15일)

“저희들은 교육자로서 조금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세월호 참사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교육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에서 ‘어른의 말’을 들은 학생들 대부분이 목숨을 읽고 말았습니다. 어른의 말을 들으면 생명을 부지할 수 없는 사회, 이런 사회는 명백하게 실패한 사회입니다. 어른의 말을 듣지 않아야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이런 사회는 교육 자체가 불가능한 사회입니다.

교육은 한마디로 어른의 말입니다. 어른의 말에 논리와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어른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호와 함께 어른이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교육의 토대가 붕괴됐습니다. 어른과 아이, 부모와 자녀, 선생과 학생 사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졌습니다. 이처럼 광범위하고 심층적인 단절은 없었습니다.

어른이 살아나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로 고통을 겪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최선의 애도는 교육을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교육을 혁신하는 것이야말로 미증유의 사회적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가장 근본적인 대책일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교육혁신의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교육의 정상화는 실로 ‘거대한 전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대한 전환은 사회 전체의 공감과 참여가 있어야 합니다. 모든 어른이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교육이 사회의 뿌리입니다. 정치를 정치답게, 경제를 경제답게 하는 토양이 교육입니다.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교육은 사회적 불의에 적극 개입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교육에서 경제 논리, 기업 논리, 힘의 논리를 최대한 배제해야 합니다. 경쟁 위주의 교육정책을 근본적으로 바로잡아 교육을 정상화해야 합니다. 교육 정상화를 통해 국민을 섬기는 국가를 건설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승이 아니었다’
(성균관대 문과대학 휴머니스트 교수회의, 5월15일)

“끔찍한 참사에도 불구하고 단지 뉴스 청취자나 방관자로 전락해가고 있던 우리들에게 대학교수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교육자로서의 소명을 각성시켜준 연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에 대해 감사의 뜻과 함께 지지를 선언한다.

우리 성균관대 문과대 교수들은 인문학자로서 누구보다도 먼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문제를 성찰하고 올바른 가치를 창조하며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해야 했다. 그러나 그러한 학문적 소명과 사회적 책임을 의식적으로 외면한 채 스스로를 성찰과 실천이 없는 한낱 전문가로 퇴락시켰다.

우리들은 선언한다. 인문학자로서의 소임을 망각하고 맹목적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 전문인에 불과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인간애를 실천하는 인문적 운동에 적극 참여한다. 이를 기회로 대학교수들을 비롯한 사회지도층의 자기반성과 공적 책임의식에 대한 각성이 사회적 운동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정부는 세월호 침몰 뿐 아니라 구조 및 수색작업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심판자가 아니라 참회하는 심정으로 철저한 조사에 임할 것을 요구한다. 정부는 정부정책의 근간을 인본주의와 생명 중시에 두고 우리 사회의 전반적 개혁과 올바른 가치를 정립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을 요구한다.”

‘교수로서 참회합니다’
(국교련ㆍ사교련 성명, 5월16일)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의 참사입니다. 세월호라는 배가 침몰하는 순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도 함께 가라앉았습니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입니다. 수많은 생명들을 속수무책으로 떠나보냈습니다. 채 다 피지도 못한 소중한 생명들을 허망하게 놓아버렸습니다. 그 곳에 국가는 없었습니다. 국가를 위한 변명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바로 잡아야 합니다. ‘다시는 이런 나라에서 태어나지 말라’라는 피맺힌 절규가 울려 퍼지지 않는 그런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10년, 50년, 100년을 내다보면서 ‘제대로 된 나라 만들기’에 나서야 합니다. 그 첫걸음은 진상을 명확하게 규명하고 책임을 엄중하게 묻는 것이어야 합니다. ‘모두가 죄인이다’라는 식의 총참회론은 사태를 오도하는 기만일 뿐입니다. 묵묵히 소박한 일상을 지키고 있는 무고한 국민들이 권력과 자원을 쥐고 있는 책임자들과 함께 참회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가진 만큼, 누린 만큼 참회해야 합니다. 국민들의 참회는 맨 마지막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회의 가진 자로서 깊이 참회합니다. 지성의 전당이어야 하고 인재 양성의 산실이어야 하는 大學의 교수로서 과연 얼마나 제자리를 지켜왔는지 되짚어봅니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과 권리를 중시하는 교육을 해 왔는지, 돈과 권력과 지위를 가진 만큼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분명하게 가르쳐 왔는지, 우리 사회의 현실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며 연구하고 발언해 왔는지, 국가 정책의 입안과 집행에 관여하면서 ‘지성’으로서의 책임을 다해 왔는지, 안팎의 각종 공격으로부터 ‘대학의 자치’를 지키기 위해, 대학을 진정으로 대학답게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 실로 아픈 마음으로 자문해봅니다.

‘제대로 된 나라 만들기’는 가진 자들이 진정한 참회 위에 각자의 자리에서 기본부터 챙길 때 비로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교수로서 스스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을 깊이 참회하고, 대학과 사회를 위해 혼신의 노력으로 제자리를 지킬 것을 다짐합니다. 그 참회와 다짐을 다시 한 번 깊이 새기며, 희생자와 유족 앞에 깊이 고개 숙여 애도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에 울리는 경종’
(해외 교수ㆍ학자 1천74명, 5월 13일(현지시각))

해외에서 교수나 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1천74명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을 대표해 미국내 한인 교수 6명은 지난 13일 미국 워싱턴DC 내셔널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는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와 민주적 책임 결여가 근본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달 7일부터 5일 동안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였다. 미국과 캐나다, 에티오피아, 싱가포르, 대만, 벨기에 등에서 활동하는 학자들이다. 이번 성명에는 교수 577명과 박사후 연구원 163명, 학자 334명 등이 참가했는데, 노마 필드 시카고대 교수, 낸시 에이블먼 일리노이대 교수 등 외국인 교수 130여명도 성명에 동참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는 국민 모두의 공익과 안전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기업의 이윤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무분별한 규제 완화와 민영화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며 “사회 총체적인 비리와 부실이 신속히 개혁되지 않는 한, 이 같은 비극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또 일어날 수 있다”라고 서명운동을 벌인 이유를 전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규제 완화로 인한 노후한 선박의 수입, 부패한 정부 관료가 눈감아 준 구조 변경과 무리한 화물 적재, 민영화한 선박 안전 검사 시스템,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선장과 선원을 채우는 고용체계가 세월호 침몰을 야기했다.”

해외 학자들은 박근혜 정부에 5대 요구사항을 밝혔다. △생존자와 희생자, 이들 가족에 대한 적극적인 치유와 정당한 배상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은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임을 인식하고 세월호 비극에 대한 책임을 질 것 △세월호 비극의 원인을 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독립적인 특검 및 특별법 도입 △무분별한 공적규제 완화와 민영화 정책을 철폐하고 안전 등 공익에 관한 규제를 강화할 것 △방송 장악과 언론 통제를 위한 일체의 작업을 즉시 중단하고 언론자유를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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