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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도 하지 못하는 교수
비판도 하지 못하는 교수
  • 한필원 편집기획위원 / 한남대 건축학과
  • 승인 2014.05.07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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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한필원 편집기획위원 / 한남대 건축학과

"이번 참사 소식을 듣고 교수라는 것이 몹시 창피했다. 속 시원히 비판하고 의미 있는 조언을 하는 교수를 보지 못했다. 아는 데도 다른 이유로 그랬다면 교수는 물론 성인의 자격도 없다."

한필원 편집기획위원/한남대 건축학과
언젠가부터 큰 사고가 끊이지 않더니 결국 있을 수도 생각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대참사가 터졌다. 일반적인 사고와 달리 이번 일은 사고의 발생보다 구조와 대처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흔히 말하는 인재다. 사회가 수백 명을 몰살시킨 야만의 사태인 것이다.

나는 이번 참사 소식을 듣고 나이를 제법 먹은 어른이라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 중에서도 교수라는 것이 몹시 창피했다. 평생 지우지 못할 이런 수치심을 느낀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물론 그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선박회사, 해경, 정부가 비도덕적이고 무능하고 부패했으리라고는 어느 정도 짐작했다. 그렇지만 이번 사태를 수습하는 데 교수들이 이렇게 기여를 못할 줄은 몰랐다. 교수가 되기까지만 열심히 연구하고 그 다음에는 돈과 골프를 좇는 교수들이 내 주변에만 많은 줄 알았다. 조선, 해양, 안전, 경찰 등을 전공하는 교수들이 적지 않음에도 속 시원히 비판하고 의미 있는 자문이나 조언을 하는 교수를 보지 못했다. 그나마 나서는 이들도 몇 명 안 됐다. 그들이 몰라서 그랬다면 교수의 자격이 없고, 아는 데도 다른 이유로 그랬다면 교수는 물론 成人의 자격도 없다.

이번 참사가 더욱 참담한 것은 아무도 이번 일이 끝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의 태도와 사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우리는 앞으로도 삶의 질은커녕 삶 자체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불안에 떨며 살 수밖에 없다. 그런데 태도와 시스템은 누가 어떻게 바꿀 수 있다는 말인가?

먼저 공부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물론 대학입시 공부를 말하는 건 아니다. 그런 공부만 하면 이번에 전 국민의 꾸지람을 들은 초라한 모습의 관료들 같이 된다. 깊은 성찰을 통해 사람의 태도를 바꾸는 공부인 인문학을, 시스템을 바꾸는 실용학문을 공부하자는 말이다. 그럼 공부만 하면, 다시 말해 알기만 하면 바뀌는가? 아니다. 변화와 개선은 잘못된 것, 부족한 것을 인식하고 비판하는 데서 시작된다. 앞서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지식인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교수를 지식인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나 기업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교수들의 자문이나 심의를 받는다.

나도 종종 자문이나 심의에 참여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자문이나 심의에서 비판하는 이가 드물다는 것이다. 말을 돌리고 돌려서 겨우 알아들을 수 있게 문제를 지적하는 교수는 그래도 양반이다. 아예 싫은 소리는 할 줄 모르는 점잖은 이들이 대부분이고, 자문이나 심의를 의뢰한 기관에 무엇을 원하는지 되묻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교수들이 그런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쉽게 짐작된다. 제대로 비판을 하면 자문이나 심의에서 배제될 뿐 아니라 그 기관에서 나오는 연구비 혹은 용역을 받기 어렵다는 염려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교수들은 지원금이 없으면 연구를 안 하는 집단이 됐다. 아무리 세차게 비판을 해도 그 교수가 진정 최고의 전문가이고, 제대로 된 정부나 기업이라면 머리를 숙이고 연구나 자문을 부탁할 것이다. 그렇게 제대로 된 정부나 기업이 아니라면 도움을 줄 필요가 없다. 그 대신 그들을 갈아치우는 노력을 하거나 하다못해 조용히 돈 안 드는 연구와 교육에 힘쓰면 된다. 교수는 실력이 없는데, 의뢰하는 기관은 제대로 된 곳이 아닌데, 어떻게든 연구비나 용역을 따내려 하니 비굴해지는 것이다. 자신만 누추해지는 게 아니라 좋은 교수들을 자괴감에 빠트리고 비극적인 사고의 먼 이유를 제공한다.

이번 사고를 수습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쁜 짓을 한 집단도 있지만 큰 도움을 줬어야 마땅하나 별 도움을 못 준 집단도 있다. 바로 교수집단이다. 이번 참사를 겪으며 기자의 꿈을 접었다는 학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교수가 되려다 다른 길을 알아보는 아이들도 있을 듯하다. 눈물겹게 부끄럽다.

한필원 편집기획위원 / 한남대 건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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