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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韋編三絶’이라는 신화
‘韋編三絶’이라는 신화
  • 교수신문
  • 승인 2014.04.2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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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책등 주위에 너댓 개의 구멍을 뚫고 실끈으로 묶는 古書의 제본 방식을 線裝이라고 한다. 중국 明代 무렵에 출현한 선장은 근대 출판물이 등장하는 20세기까지 수백 년 동안 보편적인 제본 방식이었다. 우리나라 고서 역시 선장으로 제본한 것이 대부분이다.


선장이 이처럼 널리 사용된 이유는 무엇보다 그 견고함에 있다. 과거 산림청 임업연구원에서 선장으로 제본한 고서와 현재의 방식으로 제본한 책의 인장강도를 비교하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결과는 선장의 완승이었다. 선장에 사용된 실끈은 어지간한 힘으로는 끊어지지 않는다.


『사기』 「공자세가」에 따르면, 공자는 만년에 『주역』을 애독해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고 한다. 여기서 나온 말이 ‘韋編三絶’이다. 엄청난 인장강도를 자랑하는 선장의 끈이 저절로 끊어지려면 과연 책을 몇 번이나 읽어야 할까. 더구나 실끈도 아닌 가죽끈이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끊어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지금은 공자 시대의 책이 종이책이 아니라 竹簡이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죽간은 대나무 조각을 옆으로 늘어놓고 끈으로 묶은 것으로, 종이책 출현 이전까지 보편적인 기록 수단이었다. 죽간의 존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明淸代 「孔子聖迹圖」따위의 그림에서 공자가 손에 든 책은 예외 없이 선장으로 제본한 종이책으로 묘사돼 있다. 공자가 읽은 책이 죽간이었다는 사실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죽간은 종이보다 무겁고 날카로우니, 여러 번 읽다보면 묶은 끈이 저절로 끊어지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질긴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려면 상당한 多讀이 아니고는 어려울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위편삼절의 권위는 여전히 건재했다. 하지만 죽간이 대량 발굴되면서 위편삼절의 권위는 다시한번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다. 현재까지 발굴된 죽간은 수십만 점이 넘는다. 하지만 가죽끈으로 묶은 흔적이 나타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죽간을 묶은 끈의 재질은 전부 실이다. 공자는 가죽끈으로 특별히 제본한 죽간을 읽었던 것일까. 위편의 가죽 韋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도미야 이타루(富谷至)의 『목간과 죽간으로 본 중국 고대 문화사』(사계절, 2005)에 따르면, 위편의 ‘위’는 가죽 위가 아니라 經緯의 緯, 즉 ‘가로’를 뜻한다고 한다. 위편은 죽간을 가로로 묶은 끈이라는 것이다. 緯를 韋로 표기하는 것처럼 部首를 생략하거나 음가가 같은 한자를 대신 사용하는 예는 드물지 않다. 한자 표기의 관행과 고고학적 발굴의 성과에 비춰 볼 때, 이타루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朴胤源(1734~1799)의 「寧齋吳君遺事」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호남의 선비 하나가 책을 많이 읽기로 유명하였다. 『尙書』는 2만 번, 『주역』 「계사전(繫辭傳)」은 1만 번을 읽었다. 吳允常(1746~1783)이 웃으며 말했다.


“성인도 필시 이렇게 많이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자가 위편삼절했다지만 익숙하게 읽었다는 것일 뿐, 만 번씩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인은 지나치거나 모자란 일이 없으니, 책을 읽는 횟수도 中道에 맞았을 것이다.”


姜錫圭(1628~1695)의 시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위편삼절이라는 말 나는 믿을 수 없으니, 전부 믿느니 애당초 책이 없는 게 낫겠지. 曾子와 子思가 책 많이 읽었단 말 들어보지 못했으니, 그저 『중용』과 『대학』 한 권씩 남겼을 뿐이지(韋編三絶吾未信, 盡信不如元無書. 未聞曾思多讀書, 只有庸學一編書).”
무조건적인 다독으로 경전의 내용을 체화해야 한다는 유교적 도그마가 지배하던 시대에서조차 위편삼절의 신화적 권위를 전복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위편삼절은 愛讀을 의미할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위편삼절은 더 이상 神聖의 영역이 아니다.

 

장유승 서평위원/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선임연구원·한국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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