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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로지르기] 맥도날드
[문화가로지르기] 맥도날드
  • 이세영 기자
  • 승인 2001.01.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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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소들이 봉기하다
소설가 장정일이 ‘햄버거에 대한 명상’이란 시집으로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것이 1987년. 88올림픽을 앞두고 맥도날드, KFC를 위시한 미국의 패스트푸드 산업이 물밀 듯 육박해오던 시절이었다. 당시만 해도 제법 촉망받는 시인이었던 장정일은 여기서 일상에 뿌리박은 ‘양키문화’와 우리사회의 문화적 식민성에 대해 나름대로 예각적인 풍자를 시도한 셈이었다.

하지만 정작 흥미로운 점은 장정일이 시를 쓰던 13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국은 패스트푸드 산업이 맥도날드에 의해 지배받지 않는 세계 유일의 국가로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맥도날드보다 한 발 앞서 시장을 선점한, ‘롯데리아’라는 토착자본의 혁혁한 공로였다.

맥도날드는 보유한 매장수만도 119개국 2만 8천여개에 이르고, 전세계 패스트푸드 시장 매출액의 40%이상을 차지하는 초우량 다국적 기업. 맥도날드의 장기인 ‘맛의 현지화 전략’이나 ‘토이마케팅’(인형 끼워팔기)도 한국 소비자들에게만은 약발이 먹히지 않은 탓일까. 마침내 그들은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가격파괴였다. 1천원짜리 햄버거를 12월 한달 동안 5백원에 깎아 판다는 광고가 TV를 탔고, 위기감을 느낀 롯데리아는 5백원짜리 저가상품을 개발해 맞섰다. 바야흐로 햄버거 전쟁이다. 열혈 민족주의자라면 ‘민족기업 살리기’ 운동이라도 벌일 판이다. 여기에 ‘반세계화’라는 그럴듯한 명분까지 내건다면 금상첨화겠다.

그리고 보니 최근 1∼2년새 세계곳곳에서 감지되는 ‘反맥감정’이 예사롭지만은 않다. 프랑스에서는 지난해부터 맥도날드 레스토랑들이 반세계화 시위의 표적이 되어왔는데, 지난 4월 브르타뉴 지방에서는 맥도날드 체인점이 폭탄테러를 당해 여종업원 1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사우디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유혈충돌로 고조된 반미감정이 맥도날드 불매운동으로 번졌다. 이슬람 종교지도자들은 ‘미국제품을 사면 그 돈은 팔레스타인 형제들을 죽이는 총탄이 된다’며 미국제품 불매운동을 호소, 사우디에서만 수십 개의 맥도날드 분점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정작 맥도날드가 두려워하는 것은 민족주의자나 반세계화주의자들의 '반맥'캠페인이 아니다. 지난해 맥도날드의 유럽판매실적은 전년도에 비해 11%나 줄어들었다. 유럽 전역을 휩쓴 광우병 파동 때문이었다. 이름하여 ‘소들의 반란.’ 생태학자들은 1개의 맥도날드 햄버거에 들어가는 쇠고기 1백25g을 얻기 위해서는 9㎡의 열대우림이 목초지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거대육류산업에 의한 생태질서 교란이 광우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상황이고 보면, 반생태거대기업 맥도날드에 대한 자연의 복수가 마침내 시작된 셈이다.

이세영 기자 syle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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