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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깨달음으로 거짓과 속임에서 벗어나는 해가 되길 바라며
큰 깨달음으로 거짓과 속임에서 벗어나는 해가 되길 바라며
  • 문성훈 서울여대·사회철학
  • 승인 2013.12.30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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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개오’를 추천한 이유

‘轉迷開悟’는 미혹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는 흔히 선불교에서 화두라는 수행법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경지를 말한다. 이런 선불교의 용어를 그저 우연히 알게 된 문외한으로서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기는 어렵다.

다만 현실의 고통이 아집과 집착 때문에 생기고, 이는 잘못된 행동과 이를 낳은 어리석은 생각에 기인한다는 것, 따라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벗어나야 하며, 이런 깨달음의 길이 어떤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중생에게도 열려져 있다는 생각이 전미개오란 말과 연결돼 있는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2013년 한 해를 돌아보면 국민들을 미혹케 하는 일들이 끊이질 않았다. 대통령 미국 방문 중 청와대 대변인이 인턴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고발 사건이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그저 격려하느라 허리를 툭 쳤을 뿐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런 유치한 변명은 국민을 희롱한 것이다. 여기에 전두환 재산 은닉 사건을 더하면 이는 모두가 이미 아는 속임수라 미혹되지도 않는다.

노무현-김정일의 정상회담 대화록이 문제가 되면서 NLL을 포기했느냐, 그렇지 않느냐 확인하자고 했다. 이에 이어 대화록을 폐기했느냐, 안했느냐, 특정 부분을 삭제했느냐, 안했느냐, 공개되지 않은 대화록을 봤다는 것이냐, 아니면 다른 것을 봤다는 것이냐, 공방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공방에서의 진실은 누가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왜 지금 이런 공방을 하고 있느냐에 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증거들이 속출하면서 충격을 줬다. 애초부터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자 처벌이 있어도 부족할 판인데, 이 사건을 총지휘하던 검찰총장은 사임했고, 특별수사팀장에게는 업무배제 명령이 떨어졌다. 찍어내기가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서는 도덕성 문제라고 맞받아치고, 수사에 대한 외압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항명을 문제 삼는다. 그리고 국정원의 조직적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해서는 개인적 일탈이라고 강변한다. 무엇이 진실일까. 과연 그 엄청난 진실을 감당해 낼수 있을까.

하지만 이 모든 공방 속에 감춰진 진짜 진실은 다른 데 있다. 그것은 연일 이런 공방에 매달리는 동안 지난 대선 당시 여야 후보들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했던 복지 확대, 경제민주화, 양극화 해소 공약들이 가려지고, 잊히고, 실종돼 버렸다는 점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했듯이 100%를 위한 사회가 되고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1대 99% 사회라는 극심한 양극화에 빠져 있을까. 한국은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지만,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저출산율 1위, 소득불평등 2위, 빈곤 격차 4위, 빈곤율 6위 (노인 빈곤율 1위), 대학 등록금 2위, 비정규직 비율 4위, 실 근로시간 2위, 공공사회복지지출 29위, 삶 만족도 26위. 무엇을 더 말해야 할까.

일은 엄청나게 많이 하지만 비정규직으로 채용돼 임금 격차에, 소득불평등에, 결국 빈곤에 허덕이다 삶에 대한 만족은커녕 살기도 싫고, 아이 낳기도 어렵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대학등록금에다, 사회복지는 OECD 꼴찌 수준! 대한민국 국민은 한마디로 안녕하지 못하다.

그러나 여권에선 기초노령연금과 관련해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임하더니, 한 때 경제민주화를 입안했다는 분은 홀연히 사라지고, 지난 대선 때 양극화 해소를 부르짖던 야권 후보는 어디서 힘을 받았는지 벌써부터 차기 대선을 이야기한다. 또한 그에게 후보를 양보했던 한 정치인은 언제나 새 정치를 보여주려는지 과거 정치인처럼 신당 준비에만 여념이 없다. 한 번 뜨면 정치 입문이고, 인기 좀 오르면 대권이고, 대권이면 신당 창당부터? 그리고 한 동안 천막에서 자면서 대통령 만나기만을 학수고대했던 제1야당 대표는 지금 뭐가 해결됐는지 그곳에 없다.

위정자들이 어리석은 생각에 빠지면, 잘못된 행동이 나오고, 다시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아집과 집착을 부리며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다. 국민들도 이를 바로 보지 못하고 함께 미혹되면 진실은 감추어지고 현실의 고통은 커져만 간다. 전미개오! 2014년은 더 이상 거짓과 속임에 미혹되지 말고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우리 사회의 참된 과제인지를 깨닫고, 이 깨달음을 실행하는 한 해가 돼야 하겠다.


문성훈 서울여대·사회철학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박사를 했다. 저서로『미셸 푸코의 비판적 존재론: 그 미완의 기획』, 역서로『인정투쟁』등이 있으며, <WestEnd> 한국판 책임편집자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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