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相生의 美德
相生의 美德
  • 교수신문
  • 승인 2013.12.17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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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수 교수신문 발행인
이 즈음이면 찰스 디킨스의 소설 「스쿠루지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돈 밖에 모르는 수전노가 죽은 친구의 유령을 따라 과거, 현재, 미래를 찾아가면서 결국은 마음을 고쳐먹게 된다는 기본 줄거리는 이후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이어졌습니다. 인색하고 강퍅한 이의 回心, 그리고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이 교훈적인 이야기는 단순히 ‘동화’의 세계에만 적용되는 것일까요?
돈과 경제적 합리성이 절대적 가치가 된, 피도 눈물도 없는 이 경쟁사회에서 「스쿠루지 이야기」는 그저 동화로만 볼 수 없는 많은 德目을 환기합니다.


우선은,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가장 추운 때에 溫情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어떤 영화 속 대사처럼 ‘뜨뜨미지근한 인간적 정리’로 지칭되는 인간적 감정이 1년 365일 내내 메마르게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연말이 되면 주변의 이웃, 불우한 환경에 처한 소외계층을 생각하는 것은, 비록 그것이 ‘뜨뜨미지근한’ 감정의 발산일지라도 여전히 소중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다음은, 비록 모두들 어른이 돼 가정과 직장에서 걸맞은 책무를 지고 살아가고 있지만, 이들의 내면에는, DNA처럼 ‘소년’이 깃들어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때묻지 않고 순수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에 대해 한없는 연민을 품은 소년 말입니다. 언젠가 피카소는 우리 내면에는 모두 화가가 있는데,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다고 말했습니다. 검은 비닐봉지에 사과 몇 알을 담아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시대 家長들의 뒷모습에서 순수한 소년의 얼굴을 만날 때, 서로가 서로에게 겨눈 증오의 시선을 녹일 수 있지 않을까요?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는 지금, 교수사회는 특히 대구대와 상지대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두 대학 모두 결국 ‘총장대행’ 체제라는 파행성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교수들은 교육부가 ‘이사회 분규 상황’을 방치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실세 이사들은 대화의 테이블에 나오지 않은 채 ‘이사회’를 무력화했습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점까지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고,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든 데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이제 2013년도 2주 정도를 남겨놓고 있습니다. 回心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불가능할까요? 서로가 함께 相生하는 길은 어렵지 않습니다. 대학은 특정한 私人의 것이 아니라, 한 사회의 공동재라는 사실, 그리고 일의 初心으로 돌아간다면, ‘동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감격적인 화해도 가능한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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