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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지원 받은 연구, 출판사 영리 수단 돼서는 곤란”
“공적 지원 받은 연구, 출판사 영리 수단 돼서는 곤란”
  • 안효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지적재산권법
  • 승인 2013.12.16 1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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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기획진단_ 3. 학문 발전을 위한 OA정책과 저작권의 역할

오픈액세스(Open Access, 이하 OA) 운동은 특히 학술지의 상업화로 구독료가 높은 서구에서 학술정보의 자유로운 교환을 통한 학문발전이라는 목적으로 출현했다. OA 운동의 역사는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1990년대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그 움직임이 활발하게 됐고, 국제적으로는 2002년 부다페스트 선언과 2003년 베를린 선언 등으로 본격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지식의 자유로운 교환과 흐름이 보장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지속적인 연구와 혁신을 위한 전제가 되고, 그 결과가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로 轉移되기위한 조건이 된다. 각국에서는 이미 여러 해 전부터 학문 발전 및 혁신을 통한 공익 증진을 위해 OA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립·지원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많은 학술지들이 학회 중심으로 출판되고 있어서 서구의 독점적 상업출판사의 폐해는 아직 심각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국연구재단이나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연구결과의 자유이용을 보다 촉진하기 위해, 학술단체에 대한 지원금과 학술지 평가 등에 있어서 OA를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특히 전자출판업계나 학술 데이터베이스 서비스업체들은 이러한 정책이 개인 연구자의 저작권을 침해할 소지가 높고, 민간 학술출판업과 데이터베이스 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이유를 들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적재산권의 보호는 창작, 연구 또는 혁신을 위한 중요한 기초가 되나, 경직된 권리 보호는 혁신을 지체시키거나 심지어 방해할 수 있고, 따라서 국민경제 전체적으로 손해를 가져올 수 있다. 저작권은 한편으로는 창작자를 보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작물의 이용과 관련된 관계자들(산업계, 소비자, 교육계, 학계 등)의 이익과 공중의 요구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지난 10월 1일 공포된 독일의 개정 저작권법은 최소한 절반 이상 공적 지원에 의해 수행된 연구 활동의 결과물에 대해서는 학술지에 공표된 때로부터 12개월 경과 후 저자에게 그 결과물을 비영리 목적으로 인터넷에 게시할 수 있는, 이른바‘제2차 공표권’을 부여하고 있다(이를‘green open access’라 함). 이로 인해 저작자의 학문의 자유를 훼손하거나 저작권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저작자는 여전히 그의 저작물을 어떠한 방법으로 어디에 공표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원하지 않는 저작자는 그의 연구결과를 인터넷에 게시할 의무를 부담하는 것도 아니다. 학술지 출판 이후 일정 기간의 경과 후 OA가 가능하도록 하기 때문에 출판사의 경제적 이익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도 아니다. 이는 OA를 위한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고 평가할 수 있으며, 향후 우리 저작권법의 개정을 위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국가가 공적재원으로 연구 활동을 지원하는 것은 그 연구 결과물이 되도록 공중에게 널리 이용되도록 함으로써 후속연구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한 OA 정책은 어떠한 논리로도 비판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전자출판업계나 학술 데이터베이스 서비스 업체들의 어려운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공적 지원의 결과가 자칫 상업적 출판사들의 영리 추구의 수단으로만 활용돼서는 안 된다. 업계에서는 오히려 변화된 기술 및 사회 환경에 적응해 새로운 영업모델을 개발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연구 활동이 공적 지원에 의한 것이 아닌 경우에도 OA 정책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대부분의 학술연구는 대학, 연구기관 등의 소속 교수나 연구원을 통해서 이뤄지고, 소속기관은 그 연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봉급이나 연구비를 지급한다. 연구 활동의 결과는 학술지에 게재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게재료’라는 명목으로 출판사 등에 금전을 지급하기도 한다. 이러한 학술지는 다시 대학이나 연구기관 등이 그 소속 교수나 연구원들의 연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고액을 지급하면서 구입한다. 학술지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주체와 소비하는 주체가 대학 등의 연구기관이고, 그 생산과 소비를 위해 비용을 지출하는 주체도 대학 등의 연구기관인데, 상업적 이익을 거둬들이는 곳은 오직 상업적 출판사 내지는 학술 데이터베이스 업체가 되는 것이다. 대학 등의 학술지 구독 예산이 한정돼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지식의 생산과 유통이 이뤄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상업적 출판사 또는 학술 데이터베이스 업체가 지식의 생산과 확산에 일정 부분 기여하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식의 생산을 장려하고 확산을 촉진해 학문과 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책무이지, 이를 영리기업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독일 의회는 최근 개정 저작권법을 통과시키면서 OA를 통한 학문발전을 가속화시키기 위해 연방정부로 하여금 향후 연구지원정책의 일환으로 이른바‘gold open access’(자유이용 가능한 온라인 저널에 직접 최초로 공표하는 것) 정책을 수립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학문적 업적의 평가와 교수초빙 절차 등에서 OA 출판을 고려하도록 함으로써 학자들에게 OA 출판에 대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할 것 등을 촉구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OA가 학문발전 및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위와 같은 결의가 있었다고 추측된다.

OA가 바람직하기는 하나 모든 논문에 대해 OA를 강제하는 것은 저작자의 권리와 헌법상 보장된 학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공적 지원에 대해 OA 조건을 붙이는 것은 그 정당성이 충분히 있으며, 법률적 측면에서도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안효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지적재산권법
뮌헨대에서 박사를 했다. 주요 논문으로「OA와 저작권법의 대응」이 있고, 일본지적재산연구소 초청연구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저작권법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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