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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융성 제대로 하려면
문화융성 제대로 하려면
  • 교수신문
  • 승인 2013.11.0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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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 이영수 교수신문 발행인
올 5월 28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된 사안 가운데 눈길 끄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문화융성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안’입니다. 이 규정안이 의결된 뒤 일사천리로 ‘문화융성위원회’가 가동됐습니다. 문화융성위원회(위원장 김동호)는 지난달 25일 8대 정책과제를 확정해 발표했습니다. 8대 과제는 △인문정신의 가치정립과 확산 △전통문화의 생활화와 현대적 접목 △생활속 문화 확산 △지역문화의 자생력 강화 △예술진흥 선순환 생태계 형성 △문화와 IT기술의 융합 △한류 등 국내외 문화가치 확산 △유네스크 세계인류무형유산 지정 ‘아리랑’의 국민통합 구심점화입니다.

이에 앞서 지난 9월에는 문화예술, 문화산업, 전통문화, 문화가치확산 등 4개 분야의 전문위원회를 두고 36명의 위원을 위촉했습니다. ‘싱크 탱크’ 역할을 할 전문위원에는 영화배우 안성기 씨, 송승환 성신여대 문화예술대학장,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 연극배우 박정자 씨, 김광억 연세대 석좌교수(인류학), 전용일 국민대 교수(금속공예),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한국학) 등 36명이 위촉됐습니다. 그러나 전문위원을 위촉하고, 8대 정책 과제를 제시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杞憂를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위촉된 전문위원들의 분야는 한복, 음악, 국악, 공예, 전통차, 한옥, 방송연예, 패션, 문학, 언론, 홍보 등에 쏠려 있습니다.

이분들이 문화의 깊숙한 내면, 한국 문화의 고유성을 깊이 응시하고 거기서 사유를 이끌어냄으로써, 좁게는 한국, 좀 더 나아가 동아시아와 세계문명사의 전환을 이해할 수 있는 전문가들인지 회의적입니다. 또한, 8대 정책 과제가 무엇보다 명료하게 눈에 보이는 것에 한정돼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문화융성은 한국인의 내면에 면면히 이어져온 문화·정신적 DNA를 찾아 이를 현대화하고, 동시에 인류의 보편적 유산으로 승화해낼 수 있는 방향에서 전개돼야 합니다.

자칫 ‘산업’, ‘한류’ 등으로 방향이 굳어지게 될까 걱정이 앞섭니다. 세간에 유행하는 말 가운데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가 있습니다. 문화융성은 좋은 국가적 어젠다입니다. 그렇다면 발빠르게 행보를 보이는 것도 좋지만,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를 좀 더 심사숙고하는 게 순서에 맞다고 봅니다. 8대 정책 과제와 전문위원 명단을 보면서 속도는 탔지만 방향은 보이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운 것도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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