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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번역은 靈的인 작업…문학 더 깊어져야”
“창작·번역은 靈的인 작업…문학 더 깊어져야”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3.08.28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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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佛韓성경 들고 돌아온「하나코는 없다」의 작가 최현무 서강대 교수

최현무 교수(60세). 소설가 최윤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진정한 멀티 플레이어다. 문학평론가, 프랑스문화학과 교수, 소설가, 번역가 등 그를 지칭하는 직함이 많다. 그런 최 교수가 지난 6월, 6년 반이라는 지난한 시간을 거쳐 국내 최초로 불한성경을 펴냈다. 번역자 40여명과 함께 한 공동작업에서 그는 일종의 ‘총책임자 역할을 했다. 올해 안식년도 여기에 온전히 바쳐졌다. 단순한 불어, 한국어 대조판이 아니다. 불어 초보자의 불어성경 이해에 도움이 되는 단어·문법·표현 설명이 구비된 스터디 바이블 형태로 제작했다. 평론가에서 교수로, 소설가에서 번역자로, 글에 묻혀 사는 그에게 글쓰기란 어떤 의미일까. 글쓰기와 신앙이 ‘구원’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성경 번역은 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제 한숨 돌리고 ‘평화’를 주제로 새로운 소설을 구상이라는 그. 여전히 소녀 같은 최현무 교수를 때늦은 폭염이 쏟아지는 22일 오후 신촌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최현무 교수는 경기여중,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1972년 서강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학부, 석사를 했다. 교지편집에도 관여했다. 서강대 대학원 시절 이미 문학평론가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고(1978년), 남프랑스의 아름다운 도시, 폴 세잔느 고향 엑상프로방스에서 마르그리트 뒤라스에 관한 연구로 불문학박사를 했다. 1983년 귀국해 서강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임용됐고, 1988년『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문학과사회>에 발표하며 소설가로 등단했으며, 1994년「하나코는 없다」로 제18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청준의 소설 등을 불어로 번역해 해외에 소개하는 등 번역가로의 활동도 했다. 그의 소설 역시 한영대역 소설 시리즈에 소개되기도 했으며 불어, 스페인어로 번역돼 출간됐다. 지난 4월에는 런던도서전에 참가해 한국문학에 대한 홍보를 계속하고 있으며, 한국불어권선교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 악뜨쒸드출판사의 한국문학총서 담당자로 있다. (사진 최익현 기자)


△ 문학평론가로 먼저 데뷔, 이후 교수로 임용됐고, 소설가로 데뷔했으며 번역가로도 활발하게 활동 중입니다. 끊임없는 글에 대한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가요?
“저는 오히려 열정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예를 들자면 가르치는 일, 쓰는 일 즉 문학이죠. 제 인생에 가장 큰 화두는 문학입니다. 쓰는 일은 문학이고 가르치는 일은 메인 잡이예요. 그건 해야 하는 겁니다. 당위인거죠. 그런데 사실 제가 어릴 때부터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잖아요. 그 중에 한 가지는 우리나라 작품을 알리는 일이었어요. 프랑스에 가보니까 너무 작품이 안 알려졌더라고요. 그 당시 저는 국문학도였고 한국문학에 대한 큰 비전을 갖고 떠났는데, 현지에 가보니 너무 안 알려졌더라고요. 그래서 한 10년 정도는 투자를 하겠다고 생각했고 또 그만큼 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크리스천으로서의 사명이라고 할까요. 프랑스나 유럽이 영적으로 열악한 곳이잖아요. 그래서 저도 방황을 많이 했고요. 길 찾기가 쉽지는 않은 문화권인데, 이건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일이 맡겨졌어요. 사실 혼자서 일생동안 조금씩 하려고 했는데 이미 이런 작업에 대한 뜻을 가진 분들이 연결이 됐고 시작하게 된 겁니다.”

△ 이번에 불한성경을 낸 계기가 궁금합니다. 언제부터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갔으며, 번역 작업 중에 맞닥뜨린 어려움들 어떻게 극복했나요?
“그 계기는 친구 선교사분들 때문이에요. 다들 불어가 익숙하지 않더라고요. 첫 번째 계기가 정말 오랫동안 외국에서 사역을 하셨는데 불어가 익숙하지 않은 선교사분들을 보며 불한성경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던 거죠. 또 하나의 계기는 프랑스문화학과에 있다 보니, 영어성경이 영어를 확산하는 데 크게 영향을 끼친 것처럼 불한성경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세대를 위한 마음이 컸던 거죠. 불어가 50여 국가에서 쓰이는데 불한성경이 나오면 더욱 불어가 확산되는 계기도 될 수 있으니까요. 2007년 3월에 시작해서 그해 10월 우선 『불한성경 요한복음』 편을 먼저 출간했어요. 이걸로 연습을 한 거죠. 그 후 6년 반이 걸려 성경 66권 전권을 완간하게 된 거죠. 성경 본문은 프랑스성서공회의 『Nouvelle Version Segond Révisée』(1978)와 대한성서공회의 『성경전서 개역개정 4판』을 사용했고, 본문 하단에 불어성경 이해에 도움이 되는 단어·문법·표현 설명이 구비된 형태로 제작했습니다. 스터디 바이블 형태의 불한성경 준비를 위해 40여 명의 불어과 교수 및 전공자, 선교사, 신학자들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했어요. 불어 전공자로 구성된 교정위원 20여 명이 모두 한마음으로 다년간 자원봉사, 재능기부로 섬겼습니다. 어려움이라면, 다양한 영역의 전공자들이 각자 이 성경에 기대하는 부분이 조금씩 달랐기에 이걸 일원화하는 작업이 좀 어려웠어요. 그래도 사실은 즐겁게 했습니다.”

△글쓰기와 신앙이 구원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면, 이번 성경 번역 작업을 그 연장선에서 볼 수 있을까요?
“둘 다 정신의 작업이지만 굉장히 영적인 부분이에요. 늘 그렇게 쓴 건 아니지만, 점점 더 제가 더 글쓰기에 있어서 젊었을 때와는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언어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영적인 것에 있어서 최고의 부분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저의 앞으로의 작품이 더 기대가 되고요. 성경 번역 작업은 사실 어떻게 보면, 사실 예전의 번역작업은 큰 의미가 없다기보다는 한국문학에 대한 사랑으로 하나님이 조금이라도 재능을 주셨으니 10년 간 한 거였고, 성경번역은 큰 기쁨의 과정이었어요. 우리가 참고한 불어 성경이 굉장히 놀라워요. 아주 쉬운 언어로도 깊은 걸 담아냈거든요. 그래서 번역을 하면서 글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어요. 언어는 이런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전문적으로 아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단순한 언어로, 단순하다면 어폐가 있지만, 명료한 언어로 성경에서 말하는 다양한 지점들을 번역해낼 수 있을까 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성경번역의 기쁨과 보너스로 언어의 레벨이라는 것이 어디까지 갈 수 있나 하는 것, 작가가 도달해야 하는 언어의 차원이라고 할까요, 그런 걸 깊게 생각하게 된 작업이었습니다.”

△선생님에게 글쓰기, 문학이란 무얼 의미합니까?
“많이 변해요. 글쓰기에 대한 게 젊을 때와 지금이 똑같다고 말하긴 어렵죠. 글쎄, 참 인간이 매우 연약해 정말 타락의 깊이와 숭고의 높이가 정말 거의 무한하지 않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인간에 대한 기대를 하는 것 같아요. 인간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저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면 일생을 살면서 부여받은 것에 20퍼센트도 발휘하지 못하고 간다고 봐요.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근데 만약에 우리가 부여받은 모든 걸 할 수 있다면? 문학은 그걸 조금이라도 그걸 구현해낼 수 있다는 거죠. 글과 저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그 부분이 가장 큰 것 같아요.”

△한국문학을 해외에 많이 소개하셨습니다. 계기가 있나요? 번역작업에서 본 한국문학의 가능성은 무엇입니까?
“계기는 프랑스에 비교문학을 하러 간 거예요. 한국문학을 버린다는 게 너무 아쉬웠는데,  담당교수와의 첫 인터뷰에서 그 꿈을 접었어요. 번역된 한국작품이 없는 상태에서 무슨 비교문학을 하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프랑스문학으로 학위를 하게 됐죠. 그 때 한국문학 중에도 참 좋은 작품이 많은데 나중에 언어가 자유로워지면 그 작업을 10년을 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한국문학은 전 세계의 현대문학에 비교해보면 젊은 문학이에요. 서구에서 전형화 된 문학의 유형들이, 우리가 그걸 쓰기 시작한 건 신소설 이후의 일이에요. 그래서 저는 문학이 여전히 한국에서 중요한 문화적 자본이고, 부르디외 식으로 얘기하면 상징자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한국의 문화, 문학이 꽃피려면 경제가 좀 더 발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문학은 경제적 어려움이 있을 때도 꽃 피지만, 문학의 발전은 국력과 함께 간다는 생각이에요.”

△ 문학의 시대적 환경이 많이 변화한 것 같습니다. 소설가로서 보는 현대 문학의 문제점이 있다면요?
“문학은 자율적으로 더 깊어져야 해요. 사실 문화적인 맥락으로는 한국문학이 굉장히 좋은 시기죠. 그렇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내적인 토양은 그다지 건강하다고 보이진 않아요. 지나친 상업화도 있고요. 조금 신선함은 있겠지만, 오래 묵은 포도주나 치즈가 가진 깊은 맛이 없다고 할까요. 그런 쪽으로 다변화되면 좋겠어요. 실제로 한국문학은 깊은 실존적인 문제에는 많이 약한 편이에요. 한국 역사가 문학으로 하여금 현상적인 문학을 생산할 수밖에 없게 만든 맥락이었잖아요. 그것에 감사하면 현대 문학이 다이내믹하긴 한데, 그 부분이 이 정보화 시대에 맞닥뜨리다보니 한 가지 문제로 깊이, 끝까지 가는 사유의 문학이라던지 그런 부분이 확실히 결여돼 있는 느낌입니다. 이제는 사람도 많아졌고, 글 쓰는 인구도 많고, 경제적인 여건도 양호하니까 다변화 된 모색들을 하는 문학들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해요. 기대하기 전에 저부터 써야겠네요.”

△소설가로 새로 구상중인 작품이 있으시다면 소개해주세요.
“2011년부터는 계속해서 작품을 발표하고 써 왔어요. 이제 마침내 안식년과 함께 성경 번역이란 대작업이 끝났으니 좀 여유가 생긴 거죠. 사실 소설쓰기는 2006년 성경 번역에 착수하면서 올 스톱됐어요. 이후에 나온 소설도 다 그 무렵에 구상한 거죠. 지금 구상중인 이야기는 ‘평화’에 대한 거예요. 개인의 차원이건 역사의 차원이건 어떻게 평화에 다다를 수 있는지를 쓰려고 해요. 평화라고 하면 갈등에서의 평화, 내적인 평화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다양한 인물군을 통해 보여주려고 구상중이에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이 작품에 몰입하려고 합니다.”

△작가, 교수, 번역가, 평론가의 삶이 서로 영향을 미쳤을텐데요. 어떤 삶이 가장 매력적인가요?
“제가 아주 어릴 때에 평론을 시작했고 유학을 가서 평론활동을 많이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평론가란 호칭은 좀 불편하고요, 평론의 언어가 나에게 잘 안 맞는 측면도 있었어요. 소설은 어떤 의미에서 존재를 발가벗는 작업이에요. 그래서 필명(그는 소설가로 ‘최윤’이란 필명을 쓴다)을 쓴 이유도 있어요. 그만큼 둘이 굉장히 서로 윈윈하는 부분도 있지만 한 개인에게는 힘든 일임에 틀림없어요. 지금까지는 균형 맞추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작가 생활이 교수 생활에는 큰 영향을 주는데 반해 그 반대는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작품을 쓰고, 그 작품의 경험이 문학 교수로서는 굉장히 큰 이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거든요.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어느 정도 실력 있으면 다 하잖아요. 하지만 학생 하나하나를 중요한 개인으로 키우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작가로 살면서 학생들을 민감하게 이해하게 되더군요. 만약 글을 안 쓰고, 글 쓰는 욕망을 눌러버렸더라면 많이 드라이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요?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소설 덕분이죠. 어떤 삶이 매력적이라기보다도 예를 들자면 교수는 쫓겨나면 쫓겨날 수 있지만 소설가는 쫓겨날 수 없지 않나요? 재미난 것은 작가나 교수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가 하는 작업은 일생을 A/S하는 거라는 거죠. 둘의 공통점이랄까요. 10~20년 전에 쓴 작품도 뜬금없이 독자가 궁금하다고 메일 보내는 거죠. 학생들도 마찬가지에요. 졸업하면 더욱 더 관계가 깊어지거든요. 그들도 성숙하면서 정말 친구가 되고 삶의 동반자 되니 많이 나누게 돼요. 그래서 일생을 A/S하는 운명인 것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네요.”

△1998년 교무처장을 맡으며 불어불문학과를 프랑스문화학과로 바꾸는 변혁의 중심에 서셨습니다. 
“한 3년 정도 동료 교수와 졸업생을 대상으로 앙케트를 했어요. 사회 나가봤더니 뭐가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역사, 문화, 언어에 대한 것이 필요하다는 답이 나오더라고요. 그 자료로 문건을 만들었어요. 당시 학교에서 각 학과 발전안을 내보라고 했는데, 이때 제작한 문건으로 평소 생각한 것을 썼고 그래서 교무처장이란 보직을 맡게 됐어요. 학과 체제를 개편하면서 불어불문학, 불어학에만 한정한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유럽과 프랑코폰 지역으로 학문의 영역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어요. 전공자가 많지 않아서 과목이 많이 개설되지 않았지만 한 두 과목이라도 있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이었어요. 졸업생들이 불어권인 아프리카나 아랍에 가도 익숙하고 적응이 빨리 되는 긍정적인 면이 있는 거예요. 프랑코폰 지역으로 연구를 확대했으니까요. 문학을 해도 제가 공부하던 시절에는 문학하면 역사도 다 공부했거든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학생들이 제출하는 논문들을 보면 하나의 큰 틀로 나가지 않고 너무 협소한 시각을 갖고 있더라고요. 지식 흐름의 협소화라고 할까요… 플라스틱화 된 지식이 많아지는 걸 감지하면서 피로감을 느끼게 된 거예요. 그런 걸 경험하면서 연결이 확대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보직을 맡게 되면서 시도하게 된 거죠.”

△최근 움직임과 비교해보면, 대학들이 대학평가로 인해 취업 안 되는 학과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인문계열이 일순위인데, 서강대 인문학부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지 않을까요?
“조교실로 가끔 그런 문의가 온 적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서강대만의 독특한 구조가 있어요. 우리는 정말 학생 편에서 리스크를 안고 시작한 건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불어권이 중요한 연구대상이기도 하고, 한국의 경제 투자대상이기도 한 아프리카도 있잖아요. 여러 현실적인 면, 학문적인 면에서도 큰 덩어리였기에 연구영역을 열어낸 거예요. 벤치마킹이 좋지만 동기가 중요하다고 봐요. 지금은 모든 대학이 모든 대학을 서로 벤치마킹하고 있잖아요. 눈먼 벤치마킹, 기계적인 모방은 의미가 없다고 봐요. 우리 프로그램이 완벽한 것도 아니거든요. 우린 더듬거리면서 바꿨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학교들도 있을 거라 봐요.”

△인문학의 고유한 가치가 학자들마다 다릅니다. 많은 인문학자가 인문학 위기를 얘기하는 반면 서점, 기업에서는 인문학 특수고요.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강하게 해줘요. 개인적인 예를 들어 볼게요. IMF 때 다섯 명의 친구가 큰 위기를 겪었어요. 그 중에 둘은 참 잘 일어났는데, 그 둘이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사학, 문학을 했기에 삶의 여러 양상을 간접 경험했다고, 그렇기에 별로 두렵지 않았노라고요. 인문학은 결국 인간에 대한 학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세상 속에서 인간과 소통하며 그런 부분을 육화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학문적으로 연결이 안 되고, 그런 위기가 있겠지만,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신하고 있어요. 교육현장에서도 확인하지만, 그것이 바로 문학에 기대하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시대가 변하며 교수로서의 정체성도 모호해지고 힘들어하는 교수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교수사회에 한 말씀 하신다면요.
“그 경향이 우리나라의 경우만은 아니죠. 전 세계적인 추세에요. 실제로 스트레스가 굉장히 많은 위기를 만들기도 하고 개인적, 사회적 차원 모두 그래요. 이걸 지식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 결국 지식에 대한 사회의 기대치가 굉장히 다르다는 거죠. 한 학자가 더 많은 지식을 획득하면 그 인격도 깊어져야 하는 게 사실이에요. 그것이 순리인 거죠. 그런데 지금은 지식과 그 지식의 대상과의 사이에 필연적 연관성이 없이도 지식의 습득, 전수가 가능하다는 것에 큰 문제가 있어요. 구조적인 문제도 분명 있죠. 붕어빵 같은 논문도 빨리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각 지식의 전수자들이 한번 생각해 보고 되돌릴 부분이나 유지해야 할 부분을 생각해 봐야 해요. 세계적으로 그러니까, 경쟁체제니까 라고 말하는 것보단 지식체제 논의하는 게 필요한 거죠. 그러면서 단순한 기계적인 지식이 아니라 인격적인 전수가 된다고 봐요. 그 부분에 대한 위기가 깊어지면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각자가 개인의 차원에서 해야 한다. 쉽지 않은 문제에요. 정체성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공부 하고 싶은 사람만 공부해야 하고, 지식에 대한 애정이나 열망이 있다면 그걸 키워가는 연구자가 돼야죠. 그게 학문하는 사람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 않으면 다 문제 있는 교수로 남겠지요.”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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