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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나라의 道를 말하는 것이 가당하기나 할까?
하물며 나라의 道를 말하는 것이 가당하기나 할까?
  • 김용호 부경대 교수회장·신문방송학과
  • 승인 2013.08.2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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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중국에서 공자의 논어 공부가 한참이다. 이를 두고, 중국정부가 유교를 이념교육의 도구로 삼는다고 평하는 이가 있다. 인민을 평천하의 도구로 삼기 위해 치국과 제가를 요구한다는 게다.

일방적인 교육은 먹혀들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인민들이 살만하니까 사람구실을 돌아보는 게지. 논어에 ‘邦無道에 穀이 恥也라’(憲問)라는 구절이 있다. 나라에 도가 없을 때 녹을 받기 부끄럽다는 뜻이다. 다른 곳에서 ‘邦無道 富且貴 恥也’(泰伯) 하여 같은 뜻을 보인다.

유교는 워낙 치자의 학문이다. 그때의 녹은 지금의 월급이나 밥벌이쯤이다. 중국인민들이 나라에 도가 없는데 밥 벌어 먹고사는 것을 부끄럽다고 여기는 게 아닌가?

같은 유교권의 일본이나 우리나라라고 다를 것이 없다. 정치인들은 수준이하의 망언으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더럽히고 있는데, 도가 없는 나라에서 밥 벌어 먹고 사는 것을 사람들은 치욕으로 여긴다. 한중일 삼국의 논어 열기는 의식주의 문제를 벗어난 사람들이 사람으로서의 수치를 알자는 의식운동이며 치자들에게 무도함을 알라는 쇄신운동이다.

공자의 제자가 3천 명에 이르렀다지만 그 시절에는 별로 인기가 없었던 모양이다. 공자가 열국을 주유하면서 치자의 도를 말하면 당대의 치자들은 물정 없는 소리한다고 외면했고, 저자 사람들은 천방지축인 사람이라 조롱했다.

후자의 생생한 일화가 있다. 공자의 제자 자로가 하루는 먼 지방을 여행 중이었다. 성문을 지키는 사람에게 자신을 공자의 제자라고 소개했다. 성문지기는 ‘불가한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不可而爲之者)’의 제자라면서 자로를 무시했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은 그런 조롱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굽히지 않고 禮를 중시했고 仁을 실천했다. 공자의 인격이 훌륭하고 학식이 뛰어나 그를 따르는 이가 많았던 덕에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삶의 좌표로 삼을 귀중한 가르침들이 남아 있다.

‘邦無道엔 危行言孫이라.’ 공자는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엔 행동은 대담하게 하되 말은 공손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가들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망언을 일삼는데, 오히려 저자 사람들의 행동이 드높고 목소리가 공손하다. 2500년 전의 공자가 살아 지금의 동양 삼국을 주유한다면, 틀림없이 동아시아의 세 나라에 도가 없다고 할 것이다.

공자 성현의 삶은 옛날일이 되었지만 그의 학문은 후학들이 집성한 논어를 통해 우리가 들을 수 있다. 공자가 기초를 다진 유학의 정신은 동아시아 사람들의 문화적 DNA가 됐다. 공자의 말대로 하자면 生而知之인 셈이다.

어릴 때부터 배워서 닦는 학이시습을 거쳐 얻는 學而知之와 철들면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온갖 어려움의 댓가로 얻는 지혜인 困而知之는 스스로의 노력의 결실이라고 하지만, 문화적 DNA에 해당하는 유교정신은 동아시아에 태어난 조상의 은덕이다.

유학의 원조인 공자가 스스로를 학이지지라 했고, 退溪나 栗谷조차도 자신을 ‘곤이지지’ 라 했다. 당대에 통하고 후대에 이을 수 있는 학문을 이루기는 어렵다. 학문에 뜻을 둔지 30년, 현업의 경험을 거쳐 전업교육자의 길로 접어든 지 20년, 서울의 사립대에서 지방의 국립대로 옮긴지도 15년째이다.

논어의 어법으로는 사회과학의 실증연구는 문자 그대로 곤이지지이다. 얼마 되지 않는 논문과 책으로 당대 동학들의 이목을 어지럽히고 있으니, 후학의 일은 차마 상상하기도 어렵다. 하물며 나라의 도를 말하는 것이 가당하기는 한가? 스스로를 괴롭히기만 할 뿐, 학문의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두렵다.

 

김용호 부경대 교수회장·신문방송학과
위스콘신대에서 언론학으로 박사를 했다. 저서로 『선거여론조사의 매체보도태도와 제3자 효과가 후속행동인 방어적 투표와 보도제한 정책지지에 미치는 영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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