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03:25 (토)
도산-춘원-금아 … 인생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도산-춘원-금아 … 인생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 교수신문
  • 승인 2013.08.02 17: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천 릴레이 에세이

 

인간이란 동물은 모든 것을 이야기로 만들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서사충동’을 가졌다. 그래서 사람은 ‘이야기하는 인간(homo narrans)’으로 정의 내릴 수 있다. 우리가 쓰고 짓는 모든 글들은 본질적으로 이야기의 구조를 가진다. 인간세상은 신화·전설·민담·옛날이야기·동화·도덕 등 무수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수많은 이야기들은 새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이미 있었던 이야기를 다시 쓰고 다시 만들기를 통해 끊임없이 차이를 드러내면서 반복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야기는 언제나 새롭게 태어난다. 오늘 나의 이야기도 그중 하나로 이야기의 이야기다. 나는 최근 수년간 현대 한국사에서 특히 도산 안창호(1879~1938)라는 인물의 이야기에 깊은 감동과 흥미를 느끼고 있다.

그러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도산 선생을 알게 된 것은 아니다. 직접적인 계기는 시인이며 수필가인 금아 피천득(1910~2007)의 도산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부터다. 피천득은 도산을 직접 만나 배우기 위해 상하이로 유학을 갔다. 피천득은 일생동안 결코 환멸을 느끼지 않은 경험으로 도산을 처음 만났을 때와 금강산을 처음 바라보았을 때라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피천득 자신은 직접 도산 선생에게 다가 갔을까. 아니다. 그 사이에 춘원 이광수(1892~?)가 있다. 나의 도산 이야기의 시작은 처음 피천득을 통하지만 피천득은 이광수의 도산 이야기에 매료 됐다. 금아 선생은 10세 이전에 부모를 모두 여의고 고아로 자랐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춘원 집에서 3년 가까이 지내면서 영어와 문학을 처음으로 배우게 된다. 이때 피천득은 이광수를 통해 1920년대 당시 국제 도시였던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안창호 선생 이야기를 들었다. 춘원은 이미 1919년 3·1 운동 후 상하이로 망명해 도산 밑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일을 돕다가 귀국한 후 도산 선생을 깊이 존경해 흥사단의 국내 조직인 수양동우회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피천득-이광수-안창호의 이야기의 계보가 드러난다. 피천득은 “나는 과거에 도산 선생을 위시해 학력이 높은 스승을 모실 수 있는 행운을 가졌었다. 그러나 같이 생활한 시간으로나 정으로나 춘원과 가장 인연이 깊다”라고 말할 정도로 춘원에게서 인생과 문학의 큰 영향을 받았다. 이 세 사람의 인연은 기이하게도 오늘의 나에게로도 이어졌다. 나는 수년 전에 우리나라 근대 문학의 건설자인 춘원의 전집을 사서 읽기 시작했고, 춘원 연구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춘원이 1921년에 발표한 「민족 개조론」은 결국 도산 선생의 민족운동 사상을 공감해 쓴 글이다. 춘원은 1923년에 도산을 모델로 「선도자」란 소설을 썼고 후에 『도산 안창호』란 전기도 집필한 바 있다. 나는 매년 9월 서울에서 개최되는 춘원 연구학회에 참석하고 있다. 학회에는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춘원의 막내 따님 이정화 박사가 참석한다(그는 1955년에 출간한 『아버님 춘원』으로 유명하다). 나는 해방 직전부터 춘원이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사릉집과 그의 유적비가 서있는 양주 봉선사도 방문했다. 요즘도 시간이 되면 이광수 전집을 뒤적이며 춘원의 시, 수필, 논설, 소설을 읽는다. 춘원 선생이 말년의 친일 행적으로 그의 전체적인 문필가로서, 사상가로서의 업적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함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이에 나는 시대를 초월해 보편에 이르는 시각으로 다시 읽어 보고 싶다. 올해는 안창호 선생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1913년에 국내외 조선 민족의 새로운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務實力行’을 목표로 興士團을 창립한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교육을 많이 받았거나 저술을 별도로 남긴 분은 아니다. 나는 시인 주요한이 집대성한 1천쪽이 넘는 『안도산 전서』를 구해 읽고 있다.

내가 좀 더 일찍이 안창호 선생을 알게 됐거나 흥사단 단원이 됐더라면 나의 인생 방향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느꼈다. 2011년 7월 한 여름에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했을 때 도산의 흔적을 찾아 LA 이곳저곳을 서성거렸다. 계속해서 나는 LA 남동쪽으로 자동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리버사이드라는 도시까지 갔다. 그 도시의 시청광장에 도산의 동상이 서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과연 리버사이드 시청의 기다란 광장에 시청 건물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도산 선생이 서 있었다. 그곳에서 20미터 떨어진 곳에 1960년대 미국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동상이 서 있었고, 그곳에서 다시 비슷한 거리를 가면 인도 독립의 아버지인 간디의 동상이 서 있었다. 그 세 사람의 동상은 일렬로 배치돼 있다. 이곳 시민들은 왜 이 세 사람을 광장 한 자리에 모아 놓았을까. 도산, 킹 목사, 간디는 억압받은 자들의 해방과 권리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민중의 지도자들이 아니었던가. 地天命의 나이도 지나 耳順에 이르는 시기에 매우 운 좋게 만난 안창호-이광수-피천득의 이야기를 나는 아주 사적인 방식으로 전유하고 싶다. 짧은 독서지만 이 세 사람을 관통하는 정신은 사랑과 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21세기에 우리에게 맞게 계속하고 싶다. 이들의 이야기는 결코 소멸되거나 시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새롭게 부활시켜 끊임없이 계속될 수 있도록 기록을 남기고도 싶다. 기쁘고 즐길 일보다는 참고 견디어야 할 일들이 더 많은 고단한 삶과 척박의 시대 한 가운데서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껍질을 벗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는 말이 있다. 인간도 필요할 때 낡은 옷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나날이 새롭게 될 필요성이 커진다. 굳은살이 박이기 시작하는 노년에 새살이 계속 돋아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금아 피천득 선생과의 인연으로 다시 만난 도산 안창호와 춘원 이광수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인생 제 2막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낼 것인가. 추한 고목나무에 아름다운 꽃을 피게 할 수 있을까. 나의 시대를 위해 사랑과 정의 파수꾼들이었던 이들의 이야기들을 변형시켜 나의 이야기 속에서 영원히 늙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 추천 릴레이 에세이 다음호 필자는 강희숙 조선대 교수(국어국문학과)입니다.

 

정정호 중앙대·영어영문학과
필자는 위스컨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전무이사와 한국영어영문학회장을 역임했다. 『산호와 진주-금아 피천득의 문학세계』 등을 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