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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_ 한국發인문학 이론의 태동을 기대하며
원로칼럼_ 한국發인문학 이론의 태동을 기대하며
  • 이기상 한국외대 명예교수·철학
  • 승인 2013.04.23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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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상 한국외대 명예교수·철학

지난해 여름 런던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느낀 점이 많았다. 조동일 교수의 말이 생각났다. 한국의 학자들은 올림픽 경기가 아닌 국내 전국체육대회 선수들일 뿐이라고.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국내에서만 설치고 다닐 뿐 국제학술계에서는 아무런 역할을 못한다는 것을 빗대어 꼬집은 말이다. 그나마 국내에서도 실력으로 평가받지 않고 학맥과 인맥에 의해 인정받는다. 그래서 국제경기에서 선전하며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는 선수들을 보면서 자기반성을 해본다.

이번 런던 하계 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 13개, 은메달 8개, 동메달 7개를 획득하며 종합순위 5위를 했다. 지난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도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개로 종합순위 5위를 차지했다. 내가 유럽 벨기에로 유학을 갔던 해인 1972년 독일 뮌헨올림픽에서 한국은 달랑 은메달 한 개를 획득해서 노메달의 수치만을 모면할 수 있었다. 그해 일본 삿포로 동계 올림픽에서는 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했다. 지난 40년 사이에 한국의 체육계는 바닥 수준에서 세계 5위의 수준으로 도약했다.

국제대회라는 것이 거의 다 그렇듯이 서양 사람들이 주도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모든 규칙이나 규율, 평가기준이 자기들을 표준으로 삼아서 제정됐다. 2008년 철학의 올림픽이라는 ‘세계철학대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그때의 주제는 ‘오늘의 철학을 다시 생각한다’였다. 그러나 서양이 규정해놓은 철학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었다. 1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빈틈없이 짜인 규정과 규칙을 조금도 바꿀 수 없었다. 그저 세션 하나를 별도로 만들어서 우리의 철학을 소개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개최된 세계철학대회라고 요란스럽게 선전했지만 장소만을 빌려주고 서양의 철학을 논하기 위한 비용을 우리가 댔을 뿐이다. 그저 우리는 생색만 냈을 따름이다.

이런 서양인들의 일방적인 경기 지정과 규율 제정, 그리고 평가규정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체육인들이 세계 5위의 순위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피나는 노력과 연구 덕분이었다. 예를 들어 서양의 전통경기인 펜싱에서 한국선수들은 이탈리아 다음으로 2위를 차지했다(금2, 은1, 동3). 이 분야 관계자들은 서양인들이 만든 교본에 나오는 방법론을 부지런히 배워 피나게 노력했지만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서양인들의 신체에 맞춘 방법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선수들의 신체적 특징을 살린 방법론을 연구개발해서 그에 따라 훈련한 결과 이 같은 좋은 성과를 얻었다고 한다. 이것은 기계체조 도마에서 금메달을 딴 양학선의 경우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관련 체육인들은 한 가지 기술로 승부를 걸 수 있는 도마에서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고 한국선수의 체형에 맞는 기술을 개발해 훈련시켰다.

이것은 기계체조 도마에서 금메달을 딴 양학선의 경우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관련 체육인들은 한 가지 기술로 승부를 걸 수 있는 도마에서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 분야에 연구개발과 노력을 집중했다. 한국선수의 체형에 맞는 기술을 개발해서 훈련시켰다. 여홍철 선수는 자신의 이름을 딴 최고 난이도 기술 ‘여1’과 ‘여2’를 개발해서 1992년 애틀랜타 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다. 착지가 안 좋아 안타깝게 은메달에 그쳤다. 이 경험을 교훈 삼아 여홍철은 코치가 돼 양학선을 훈련시키며 새로운 최고 난이도 기술 ‘양학선’을 개발했다. 양학선은 5만 번 이상 신기술을 시도했고, 올림픽을 앞두고서는 성공률을 70%까지 높였다. ‘착지 때 엉덩방아만 찧지 않으면 금메달을 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서양인의 체형과 구미에 맞춰 개발된 운동경기를 그들의 방법론을 그대로 모방해 훈련해서는 결코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마다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의 위기’를 외친다. 그러면서 잘 나가는 서양의 인간에 대한 이론들을 들먹이며 거기에 맞춰 고전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여기서 우리는 체육인들이 했던 것처럼, 서양의 인간에 대한 규정을 흉내 내려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서 인간을 어떻게 규정했는지 연구해 새로운 인문학 이론을 개발해내려 시도해야 한다.

문화와 역사가 다르고 인성과 품성이 다른데 어떻게 서양이 만들어놓은 인간관에 우리를 짜맞춰 넣으려 하는가. 바로 거기에서 ‘인문학의 위기’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서양은 개인의 주체성과 독창성을 강조한 이성적인 존재를 인간의 전형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관계의 그물망에 그물코와 같은 아름(개인)들의 역할과 어울림을 강조한 맥락적 존재를 인간의 표본으로 간주했다. 우리의 삶과 역사에 뿌리를 둔 인간에 대한 이론을 창의적으로 개발해낼 때 인문학의 위기에 놓인 이 지구촌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發 인문학 이론의 태동을 기대한다.

이기상 한국외대 명예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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