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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게 없는 날에는 사정없이 서로 잡아먹기도
먹을 게 없는 날에는 사정없이 서로 잡아먹기도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3.03.05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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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76>

갈치는 농어목 갈칫과의 바닷물고기로 몸뚱이가 기다란 칼 같다하여 ‘刀魚’ 또는 ‘칼치’라 부르며, 서양인들은 옛날 선원이나 해적들이 쓰던, 칼날이 약간 휜 短劍인 cutlass  닮았다해서 ‘cutlass fish’, 꼬리가 띠 모양으로 긴 줄 같아서 hair tail 또는 large head  hair tail이라 부른다. 몸길이 1m 정도로 좌우에서 세게 밀려(눌려)져 側偏돼 얄팍하며,  갈치의 ‘치’란 말은 그치, 양아치(거지) 등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인데 좀 이상야릇하게 생긴 꽁치, 멸치, 갈치 등 길쭉한 물고기들에도 붙인다. 

대짜배기는 체장이 2m까지 나가며 무게가 5kg에 달한 것이 최고기록이라 하고, 15년을 산 것도 흔하지 않게 본다고 한다. 눈은 또렷한 것이 매우 큰 편으로 머리 위쪽 가장자리 가까이에 자리하고, 두 눈 사이는 약간 함몰됐으며, 아가미뚜껑이 발달했고, 콧구멍은 1쌍이다. 입은 크며 아래턱이 돌출하고, 양턱 앞부분의 이빨은 약간 고부라진 갈고리 모양으로 성깔머리 있는 이놈에게 한 번 물렸다하면 끝장이다. 이렇게 이가 예리하다는 것은 육식을 한다는 의미다.

작은 가슴지느러미와 배지느러미, 꼬리지느러미는 없고, 등지느러미는 길어서 등마루를 죽 덮고 있으며, 뒷지느러미는 퇴화해 아주 짧고 작은 돌기모양인데 대부분 피부 아래에 파묻혀 있어서 손으로 만지면 깔깔하다. 한 줄의 옆줄(側線, 물살이나 수압을 느끼는 감각기관의 구실을 함)은 가슴지느러미 위에서 시작해 비스듬히 내려와 꼬리까지 또렷하게 내리 이어진다. 몸에 비늘이 없고, 몸 빛깔은 번질번질 은백색으로 손으로 만지면 은가루가 묻어 나오는데 이것은 구아닌이라는 물질이며, 인조진주의 광택원료로도 쓰인다. 그러나 물고기가 죽으면서 흐릿한 은회색으로 변색하고 만다.

갈치는 우리나라 남 서해, 일본, 중국해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온대, 아열대바다의 대륙붕의 모래진흙 바닥에 서식하며(깊게는 150~300m에도 삼), 밤에 바다표면으로 먹이 따라 올라온다. 갈치는 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몸을 곧추세워 수면 근방을 맴돌면서 옆으로 헤엄치는데 가끔은 머리를 아래위로 움직여 ‘W’자 모양을 그린다. 우리나라 갈치는 갈치밭인 제주도 서쪽해역에서 월동하고, 4~5월에 서해북쪽으로 이동해 연안에서 산란하고, 9월경 수온이 내려가면 남쪽으로 내려와 제주근해에서 다시 겨울나기를 한다. 보통 큰 놈 한 마리가 엄청나게 많은 1만4천~7만6천개의 알(2mm 약간 못 됨)을 낳으며, 이 많은 것들 중에 대부분은 자라면서 다 잡혀 먹히고 몇 마리만 살아남아 세대를 이어간다. 2년이면 30cm 정도로 훌쩍 자라고, 체장이 25cm 이하에서는 수컷 개체가 많지만 그 이상에선 되레 암컷 수가 늘어나는 성전환을 한다. 육식성으로 어린새끼 풀치들은 새우, 곤쟁이 등 동물성플랑크톤을 먹다가 성체가 되면 비로소 작은 물고기나 오징어들을 먹는다. 

먹는 이야기를 뺄 순 없지. 자반갈치로 갈치자반(찜), 생 갈치에 소금 살짝 흩뿌려 놨다가 노릿하게 구운 구이, 감자 썰어 넣어 바글바글 조린 발그레한 조림이나 자작하게 지진 찌개 말고도 배위에서는 이제 막 잡은 물 좋은 것을 회로 떠 날로 먹기도 한다. 익힌 고기는 뽀얀 살이 부드럽고 기름기가 적으며, 뼈를 발라내기도 쉽고, 초식성물고기에 비해 비린내도 덜한 편이다. 젓갈치고 갈치내장속젓만 한 것이 없으니, 누가 뭐래도 밥 한 그릇 뚝딱, 입맛 돋우는 밥도둑이다. 이런!? 침이 입안에 한가득 돈다. 세상 사람들의 입이 다 달라서 이 맛있는 갈치를 ‘비늘 없는 고기’라 해 미국에선 먹지 않는다하는군.

어류의 나이는 보통 비늘에 나무의 나이테 같은 것이 나타나니 그것을 헤아리지만 갈치는 비늘이 없기 때문에 두개골의 뇌 바로 뒤에 있는 탄산칼슘이 주성분인 딱딱한 귓돌을 엑스레이촬영으로 자란 햇수를 알아낸다. 이석은 몸의 평형과 청각에 관여하는데 상어, 가오리, 홍어 따위의 연골어류에는 이것이 없다한다.

속절없이 고기 잡는 것이 천직인 어부들은 오징어 배에서처럼 벌건 대낮같은 집어등을 활짝 켜고는 죽으나 사나 밤새도록 뼈 빠지게, 입감(미끼)으로 갈치꼬리포를 끼운 숱한 낚시가 달린 긴 줄을 죽을힘을 다해 휙휙 바다에 집어던졌다 끌어올린다. 플랑크톤들이 불빛을 보고 수면으로 올라오면 작은 물고기 떼가 시끌벅적, 바락바락 기를 쓰고 따르고, 그 뒤를 갈치가 우글우글 잇따라 헐레벌떡 대든다. 영차, 이영차 갈치풍년이 들어라! 옛날엔 무시무시하게 날 선 낚시 바늘이 입에 걸린 갈치를 자주 보았지.

이놈들은 먹을 게 없는 날에는 사정없이 서로 같은 종끼리 잡아먹는 동족살생을 하니 “갈치가 갈치 꼬리 문다”고 하는 것. 이는 친구들 끼리나 친척 간에 서로 싸움질 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며, 비슷한 말로 “망둥이 제 동무 잡아먹는다”한다. 또 아무리 많이 먹어도 부르지 않는 날씬한 배를 ‘갈치 배’, 비좁은 방에서 여럿이 모로 잘 때 ‘갈치 잠’이란 한다. 그리고 ‘값싼 갈치자반’이란 말은 값이 싸면서도 쓸 만한 물건을 이르는 말인데, 근래 와서 갈치가 귀해 ‘은 갈치’가 ‘금 갈치’가 됐다 한다. 우리가 먹는 생선의 80% 이상이 외산이라 하지. 자급자족이라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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