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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과학의 비애 그리고 비전
융합과학의 비애 그리고 비전
  • 심재경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박사과정
  • 승인 2013.02.18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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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심재경 카이스트 박사과정

심재경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융합과학이란 두 개 이상의 다른 분야가 결합해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과학 활동이다. 요즘에는 융합과학의 시대라 하여 여러 분야의 전공을 결합한 과학이 각광받을 것이며 장래가 유망하다고 이야기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실제 융합과학 분야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경험한 부분을 살펴보면 융합이라는 것이 그렇게 장밋빛 미래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일단 전문 분야의 부재이다. 융합과학을 하다보면 자신의 전문 분야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의문부터 온다. 그래서 공부를 할 때에 안이한 마음이 들게 된다. 예를 들어, ‘이 분야는 내 전문 분야가 아니야’, ‘나와 관련돼 있긴 하지만 깊이 파고들 필요는 없어’ 등의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러 분야에 대해 대충의 지식은 있지만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 되어갈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러다가는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염려가 생기게 됐다.

두 번째 이유는 전문 분야의 부재에 따른 자아 정체성의 측면이다. 나는 어디에 속한 과학자인가 하는 의문이 실제로 많이 들게 된다. 이것은 나중에 사회에 나갈 때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실제로 채용 시 선호 분야의 목록을 보면 ‘전자’, ‘기계’, ‘화학’, ‘생물’ 등으로 제시되지 ‘융합’ 이라고 제시돼 있는 것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융합’ 이라는 애매한 전공의 불확실한 정체성 때문에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냥 떠도는 이야기지만 실제로 융합 분야는 취직하기 힘들다는 설이 있어서 연구 분야로 갈 것이 아니면 추천하지 않는다는 지인들을 많이 보았다. 

앞서 언급한 부분들은 융합과학을 하는 학생으로서 상당히 비애적인 측면이다. 자신의 입에서 ‘모른다’ 는 말이 전혀 껄끄러움 없이 나오게 된다. 모르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스스로 지식의 부족함을 합리화시키기 좋은 분야가 바로 융합과학이라는 것이다. 보통 내세울 수 있는 융합의 장점은 한 가지 분야에서 보지 못했던 다른 측면에서의 새로운 발상, 또는 한 가지 도구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다른 분야의 협력을 획기적으로 해결했다’ 정도의 방법론적인 창의성일 것이다. 물론 여러 도구와 여러 학문의 융합으로 인해 가질 수 있었던 과학적 시너지 효과들은 많이 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너지 효과들은 융합이라는 타이틀 없이도 다른 과학자들로부터 수행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융합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슬픈 취급을 안고 그냥 살아야 하는가. 변명처럼 들리는 장점을 내세우고 지내야 할까.

융합과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가짐의 변화인 것 같다. ‘전문 분야의 부재’를 ‘전문 분야의 다중화’가 되도록 노력하면 어떨까. ‘이 부분은 나의 전문 분야가 아니야’가 아닌 ‘이 부분도 나의 전문 분야다’고 외칠 수 있는 마인드의 변화. 물론 전문 분야가 많아지면 당연히 일반 상황보다 습득해야할 지식도 많아지기 때문에 더욱 부지런해야할 것이고 이렇게 한들 정말 한 분야의 전문가보다 뛰어날 수 있는지는 의문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안이하고 합리화하는 회피적 태도가 아닌 각 분야에 대한 주체성과 욕심을 가지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융합과학의 가장 큰 장점은 유연한 사고와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마음가짐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 부분이 정말 큰 장점으로 작용하고자 한다면 융합된 각 분야들이 모두 자신의 전문 분야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끝없이 학습하고 탐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태도가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 비로소 융합과학의 비전을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이다.  

심재경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박사과정
생체모사 미세전자기계시스템(Bio-inspired MEMS)을 전공하고 있으며, 주로 ‘생체 계측을 통한 인간의 상태 및 의도 감응시스템 개발’에 관련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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