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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은 틀렸다
‘장하준’은 틀렸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2.12.10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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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한국 경제론의 충돌』 이병천 지음┃후마니타스┃280쪽┃15,000원

‘그들이 말하지 않는 경제민주화’라는 책의 부제가 이 책이 어디에 서 있는지 말해준다. 저자는 2002년 이후 반년간지 <시민과 세계> 공동편집인을 맡고 있는 이병천 강원대 교수(경제학과). 저자는 이 책의 핵심 부분에 해당하는 1부에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와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중심으로 한국 경제에 대한 장하준 그룹의 생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어 2부에서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중심으로 장하준 교수의 제도주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견해를 살펴보고 있다.

3부에서는 한국 경제와 제도주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장하준 그룹의 연구와 로드릭, 스티글리츠의 연구에 대한 논의를 추가해 제도 경제학에 대한 시야를 좀 더 넓힐 수 있게 했다. 책 전체가 ‘장하준 교수 그룹’을 겨냥한 셈이다. 물론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저자가 최근 1~2년 간 여기저기 발표했던 내용을 수정·보완한 것이며, 10장(「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다시 장하준에게 묻는다」, 15장(「재벌 싱크탱크는 장하준의 『23가지』를 어떻게 보나」), 19장(「개입 국가의 성공 조건과 성격: 국가 맹신을 넘어」) 등은 새로 집필한 것이다. 저자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 경제의 미래가 과거의 덫에 붙들려 있다는 지적이다. 이것은 “민주개혁 정부에도 중대한 책임이 있다.

민주개혁 세력은 반독재 투쟁에서는 성공했지만 세계화와 시장이 제기한 도전에는 적절히 응답하지 못하고 좌절했다”라고 지적하면서 “오늘날 민주개혁 세력이 87년식 민주주의를 넘어 새롭게 분발하고 발본적 자기 쇄신을 하지 못한다면 국민 대중을 정치적 주체로 세우지 못함은 물론 참여 열정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울 것”이며, 정권 교체에 성공한다 해도 다시 큰 난관에 부딪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대목이다.

“우리 안의 불편한 진실 드러낼 용기 필요”
그래서 저자는 솔직하게 말한다. “우리 안의 불편한 진실을 과감히 드러낼 수 있는 용기와 실력이 필요하다”라고. 그래야만 시대적 화두로 떠오른 경제민주화를 정체불명의 상태로부터 구출해 내고 “미국식 자유 시장 스탠더드, 워싱턴 컨센서스를 넘어 민주적 코리안 컨센서스를 뿌리 내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필요한 작업이 바로 ‘장하준 교수와 그의 동료들의 작업’을 검토하는 일이다. 그가 보기에 장하준 교수 그룹의 발언은 “특히 이분법적 편가르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발상의 전환을 요청하는 파격적 지점을 갖고 있”다.

그들의 발언 덕분에 87년 민주화 이후 진행된 개발독재 체제의 시장 지향적 코스(‘선성장·후분배주의’)와 노동자·국민 대중의 희생을 통해 재벌을 대표 선수로 키웠던 동원형 ‘집단적 자본주의’의 경로가 “모두의 협력을 통해 이룬 성과를 공유하는 사회경제적 민주화 경로와는 얼마나 깊은 간극을 갖고 있는지 다시 깨닫게” 된 긍정적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또한 그들은 1997년 외환 위기와 구조 조정 이후 구축된 ‘97년 체제’가 어떤 구조적 모순을 안은 채 한국 경제를 표류하게 했는지의 문제를 밝히는 데도 기여했으며, “그들이 제기한 대안적 논의는 미국식 스탠더드의 힘 때문에 밀려나 있었던 과제, 즉 우리 자신의 몸에 맞는 한국식 조절형 시장경제를 개척해야 할 과제도 다시 일깨워 줬다.” 그렇지만 장하준 교수 그룹의 공은 딱 여기까지다. “다른 한편에서 볼 때, 그들의 작업은 여러 중대한 대목들에서 또 다른 단순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자신들의 불편한 진실을 감추고 있기도 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좀 더 쉽게 말해, 저자가 보기에 “그들의 한 발짝은 미래도 내딛은 것처럼 보이지만 또 다른 한 발짝은 여전히 과거에, 특히 개발독재 체제의 추억에 붙들려 있다”는 것이다.

개발독재 체제의 추억에 붙들린 사람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한국의 재벌은 개발주의 자유화 과정에서 ‘강력한 거대 독점 권력’으로 성장한 세력이다. 이들을 견제하고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대항력은 미약하다. 그런데 어떤 특수한 역사적 조건들이 이런 구도를 낳았는지 장하준 교수 그룹은 ‘둔감하다’. 그렇다면 한국 개발주의의 자유화 경로에서 어떤 지점들이 잘못 풀렸는지에 대해 장 교수 그룹이 내린 진단은 크게 빗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더 결정적으로 그들의 대안적 사고 역시 “국가권력이 뿌리박고 있는 사회·계급적 조건을 간과한 채 자율적 국가 능력에 심하게 과부하를 거는 국가 중심주의와 재벌·국가 중심의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결속틀에 갇혀 있다”는 문제가 있다. 저자의 핵심 주장은 “노동 없는 경제민주화론은 허구다”로 집약된다.

그리고 이 주장은 “한국이 미국식 반독점 전통과 유럽식 참여 경제의 전통을 함께 학습하는 위에서 자기 몸에 맞는 민주적 조절형 시장경제를 창조해야 한다”는 그의 희망사항과 맞물려 논쟁적으로 읽힌다. 국가맹신주의와 제도경제학을 넘어서야 한다는 주장도 공허하지 않다. 국가를 ‘재벌을 강력히 규제할 수 있는 자율성을 가진 존재’로 보는 시각은 문제의 원인이 재벌이 아니라 ‘국가’이며, 해결책도 ‘국가’에서 찾도록 오도하는데, 이러한 ‘개입국가론’은 잘못된 ‘국가맹신주의’를 낳을 수 있다는 비판이다. 이런 비판에 과연 장하준 교수 그룹이 어떤 반론을 펼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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