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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大選은 학력전쟁이다
18대 大選은 학력전쟁이다
  • 정준영 한국방송통신대ㆍ문화교양학과
  • 승인 2012.12.0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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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영 한국방송통신대ㆍ문화교양학과
2012년이 이제 한 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매년 그랬듯이 올해도 참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올해 일어났던 갖가지 사건, 사고 중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박근혜씨가 다가올 대통령 선거에서 원내 제1당인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고 나아가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로 꼽히고 있다는 점이다. 독재자의 딸일 뿐 아니라 내세울만한 개인적 업적이 전혀 없고, 정치 행위의 유일한 목적이 독재자였던 아버지의 과거를 미화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이런 지지를 받게 되었을까.

물론 많은 것이 이미 분석돼 있다. 강고한 지역주의라든지, 사익추구적 언론과 언론통제가 결합돼 빚어진 여론왜곡, 과거 독재정권의 세뇌 결과 많은 사람들이 지니게 된 근거 없는 레드 콤플렉스, 독재자와 그의 시대에 대한 역시 근거 없는 향수, 레드 콤플렉스와 연결된 일부 종교인들의 광기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들 이유는 새누리당의 지지율에 대한 해명은 될 수 있을지라도 당의 지지율보다 항상 일정 수준 높은 박근혜씨 개인의 지지율에 대한 해명의 근거로는 여전히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그녀는 여러 조사에서 역사상 가장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현대통령의 소속 정당에서 배출한 대통령 후보가 아닌가! 과연 독재자와 그의 시대에 대한 근거 없는 향수가 현대통령의 실정을 모두 뒤덮을 만큼 강력한 것일까.

얼마 전 일단 미완으로 마감된 이른바 ‘안철수 현상’에서 해답의 단초를 찾아낼 수 있었다. 안철수씨와 박근혜씨의 공통점으로는 무엇보다도 모호함을 꼽을 수 있다. 안철수씨가 내세웠던 새정치는 요란했던 구호와 달리 실질적인 내용을 거의 담고 있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구체적 내용 없이 공허한 원칙만 되뇌는 박근혜씨의 정책과 화법에서도 실질적인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실질을 채우는 과제를 유권자에게 맡겨둔 채 두 후보는 ‘비어 있음’을 통해 자신들의 이미지를 구축해 왔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후보의 이 비어 있음이 현시대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하고 형체가 불분명한 욕망을 투사할 훌륭한 용기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5년 전 부자되기라는 지나치게 구체화된 욕망이 참담하게 배신당한 후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좀 더 추상적이고 모호한 욕망으로 방향을 돌린 것처럼 보인다. 최소한 그들은 당장 구체적인 무엇을 상상함으로써 그 한계까지 감당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포장지를 뜯지 않고 무슨 선물이 들어 있을까를 상상하며 느끼는 즐거움에 비견될 수 있을지 모른다. 또한 그것은 대선을 앞 둔 유권자들이 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두려움에 고통 받고 있음을 시사해 주기도 한다.

동시에 안철수 현상은 우리 국민들이 비어 있음에 최소한의 한계를 설정하고 싶어함을 엿볼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대통령 후보에서 사퇴하기 이전 박근혜 후보와의 가상 양자대결에서 안철수 후보는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줄곧 우위를 유지했다. 나는 그 이유가 정책의 모호함에서 보이는 유사성과 달리 후보 개인에게서 보이는 차이점에 기인한 것으로 추측한다. 주지하듯이 안철수씨는 모든 학부모들이 선망하는 대학의 선망하는 학과를 나온 후 성공한 기업가의 길을 걸어 온 사람이다.

반면 박근혜씨는 잦은 말실수와 민망스러운 토론 능력에서 알 수 있듯이 정책 뿐 아니라 몸으로도 비어 있음을 구현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야말로 무엇으로 채워질지 전혀 용도를 짐작할 수 없는 빈 용기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박근혜 후보의 속성은 욕망을 투사할 빈 그릇을 찾아 헤매는 많은 사람들에게 일말의 불안감을 주는 요인이 된 것 같다. 구체적인 것은 갑갑함을 주지만 너무 방향성이 없는 것도 신뢰감을 주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선거가 세대전쟁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학력전쟁의 가설을 제기해 보고 싶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세대의 차이는 정확하게 대학졸업자 비율의 차이와 일치한다(물론 세대에 따라 고학력자의 범위는 상대적으로 설정돼야 하므로 단지 대졸자의 비율만 가지고 따져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저학력층은 스스로의 욕망을 구체화할 상징 활용능력을 결여하고 있거나 그 욕망을 점검할 반성능력을 학습하지 못 한 집단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저학력층이 밀집된 고령 세대의 박근혜씨에 대한 지지는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다. 그럼 안철수 현상은? 어쩌면 그것은 고학력층의 비율은 높지만 정체성의 결여로 고통 받고 있는 젊은 세대의 현실과 연관된 것이 아닐까.

어쨌든 이제 안철수씨가 사퇴함으로써 비어 있는 기표는 박근혜씨밖에 남지 않게 됐다. 앞으로 그녀가 자신의 비어 있음을 이용해 소속 정당이 내포하고 있는 내용을 얼마나 잘 은폐하고 유권자들의 욕망을 유혹할지 지켜 볼 일이다. 덧붙여 학력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지켜보는 일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준영 한국방송통신대ㆍ문화교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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