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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기 성장 유형 해방 후에도 지속됐다”
“식민지기 성장 유형 해방 후에도 지속됐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2.11.26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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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한국의 장기통계: 국민계정 1911-2010』 김낙년 편┃서울대출판문화원┃696쪽┃39,000원

 

식민지기 조선의 경제통계를 정비하고 이를 UN이 권고하는 국민계정 체계(System of National Accounts, SNA)에 맞춰 국민계정 통계를 추계한 이 책의 초판은 2006년에 『한국의 경제성장 1910-1945』(서울대출판부)로 나왔다. 이 책의 바탕이 되는 ‘추계 성과’는 책의 대표저자인 김낙년 동국대 교수(경제학과)의 말대로 “국내의 식민지기 연구자뿐만 아니라 해외의 연구자로부터도 과분한 관심을 받았다.” 그런 대표적 사례로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의 장기경제통계(LTES)의 정비 작업을 주도해 온 히토츠바시대 경제연구소에 의해 일본어로 번역, 도쿄대출판부(2008)에서 출간된 것을 꼽을 수 있다.

2006년 작업의 개정·증보판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2006년 판의 개정·증보판이다. 가히 한국경제가 지난 100년 동안 밟아온 궤적을 ‘데이터’로 읽어낼 수 있게 구성한 최초의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개별 연구자의 힘으로는 감히 도전하기 어려운 작업이고 학문적 성과라 할 수 있다. 초판과 비교하면, ‘추계와 분석’을 다룬 제1부와 ‘통계’를 수록한 제2부, 그리고 각 장의 구성은 개정판에서도 그래도 유지됐다. 새로 추가된 것은 제13장으로, 해방 전과 후를 잇는 장기통계를 어떻게 작성했는지 해설한 부분이다. 제2부의 국민계정 통계도 1993 SNA 통계 양식에 맞춰 개편하고 새로운 통계표들을 추가했다. 생산과 지출, 인구 등에 관한 주요 통계의 경우에는 지난 100년간의 장기통계를 제시했다. 제14장은 이 책이 제시하는 장기통계 등을 이용해 조선후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한국의 경제성장과 구조변화의 특징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추가했다. 이렇게 본다면,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제13장과 14장일 것이다.

 

 

저자가 밝힌 데서 알 수 있듯, ‘장기통계’는 결국 역사를
‘객관적인 눈으로 담담하게 바라보는’ 자료가 된다.
이 책은 가히 한국경제가 지난 100년 동안 밟아온 궤적을
‘데이터’로 읽어낼 수 있게 구성한 최초의 작업이자
개별 연구자로서는 도전하기
어려운 작업이며, 팀웍으로 이룬 학문적 성과다.


제13장의 필자는 김낙년 교수다. 1911-40년의 국민계정 통계를 해방 후 한국은행의 현행 통계와 연결해 100년에 이르는 장기통계를 작성하는 게 그의 몫이다. 그는 △해방 전(남북한)과 해방 후(남한)는 통계의 커버리지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일관성 있게 접속하기 위해 해방 전 계열을 남북으로 분할 △ 한국은행 국민계정 통계 1953-69년 계열을 현행 계열과 연결할 수 있도록 조정 △ 해방 전후기의 인구와 생산지수 추정 등 세 가지 점을 보완하고, 이렇게 구한 장기 통계에 의거해 해방 전후에 걸쳐 국민계정의 주요자료가 어떻게 추이했는지 예시했다. 그는 추계기간 동안의 연평균 증가율은 3.6%로 추계됐다고 분석하면서 “그중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성장률 수준이 달라진 것을 제외하면 무역과 투자가 주도하는 식민지기 성장 유형은 해방 후에도 지속되고 있었다는 점이다”라고 강조했다.

‘낙성대경제연구소의 국민계정 추계가 식민지기의 생활수준, 소득분배, 경제구조, 그리고 20세기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원인에 관해서 무엇을 말해주는지를 설명’하는 제14장의 필자는 차명수 영남대 교수(금융경제학부)다. 그의 글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제3절 ‘소득분배’다. 이 대목은식민지기의 경제성장이 일본인과 조선인 지주 및 자본가만을 위한 것이었는가를 검토한 부분이다. 차 교수는 허수열 충남대 교수의 2005년 작업(『개발 없는 개발』, 은행나무 刊)을 주로 호명하면서, 이의 주장이 지닌 문제점을 반박하는 형태로 3절을 이끌어 갔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허수열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불평등화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2.3%보다 느리게 향상됐지만 생활수준의 하락을 경험한 계층이나 민족이 있었음을 보이는 증거는 없다.” “소득분배의 불평등화를 ‘일제의 착취’와 바로 연결 짓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소득분배의 불평등화는 근대적 경제성장의 초기단계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조선인과 일본인 1인당 소득격차를 근거로 식민지기의 경제성장이 일본인만을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식민지기에 일본에서 조선으로 많은 자본이 흘러 들어왔다는 사실을 도외시한 해석이다.”

지난 100년간에 걸친 한국의 장기통계를 보여주는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이들 필자들이 전제하고 있는, 가설 작업을 거쳐 거의 확정된 자료로 제시하고 있는 식민지기 경제성장 수치다. 차 교수는 “낙성대경제연구소의 추계는 식민지 시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911-40년 동안에 1인당 생산이 연 2.3%씩 증가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고 서술했다. 이런 연 2.3% 경제성장 수치는 “조선인의 소득이 일본인의 소득보다는 느리게 증가했지만, 조선인의 평균적 생활수준은 향상됐으며 조선인 노동자 농민도 경제성장의 혜택을 입었다”라는 지적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이러한 ‘혜택’은 수탈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에 유입된 일본자본이 자본스톡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짐작하듯 이 책의 저자들은 ‘낙성대경제연구소’ 멤버들이다. 이들이 식민지근대화 논쟁의 한 축이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를 의식, 2006년 초판 머리말에 김낙년 교수는 이렇게 썼다. “식민지기에 근대적 경제성장이 이뤄졌다고 보는 본서의 인식도 이러한 시각(민족주의적 이해와 정치적 판단)에서 보면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하고 비난 받을지 모르겠다. …… 식민지 지배의 부당성은 일제가 한국민의 의지에 반해 주권을 침탈한 데 있는 것이지, 예컨대 이 시기 경제적 성과의 좋고 나쁨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성격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를 결부시켜 생각하기 쉬운 것은 식민지 지배를 당한 아픈 역사가 아물지 못한 채 피해의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이 시기를 객관적인 눈으로 담담하게 바라보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

역사를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의 의미

저자가 밝힌 데서 알 수 있듯, ‘장기통계’는 결국 역사를 ‘객관적인 눈으로 담담하게 바라보는’ 자료가 된다. 김 교수가 개정판 머리말에서 말한 것처럼 장기통계라는 인프라가 정비되면 전공 시기나 관심이 다른 다양한 배경의 연구자들이 서로 접근해 교류할 수 있는 장이 마련 되는 셈이다. 이점에서 그가 “본서가 비록 식민지기 이후의 국민경제 통계에 한정된 점에서 미흡하지만, 한국경제의 연구를 활성화하고 그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면 우리 저자들에게는 더 없는 큰 기쁨이겠다”라고 말한 것은 순수한 학문적 고백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부분도 놓칠 수 없다. 참고문헌에 빼곡하게 들어선 자료들은 2011년까지 발표된 연구 결과들로, 최근 논의를 수용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식민지기 2.3% 경제성장에 근본적인 이의를 제기한 허수열 충남대 교수의 최근 작업(『일제초기 조선의 농업』, 한길사 刊, 2011)은 출판 일정 때문에 거론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가 줄기차게 1910년대 조선총독부의 통계 데이터 오류를 지적해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의 논의에 대한 정치한 반론이나 기타 논의가 이 책에 반영됐어야 했다. ‘연구자들의 상호 교류’를 말하면서도 연구자 내부에서 ‘不通’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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