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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과학철학 분야 14인 활동 … 융합연구 물꼬 튼다
과학사·과학철학 분야 14인 활동 … 융합연구 물꼬 튼다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2.11.20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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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왜 인문사회과학자들을 맞아들일까

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정길생, 이하 한림원)은 국내 과학기술분야 최고 석학들이 모이는 곳이다. 1994년 설립된 순수민간아카데미지만, 외국과학기관과 학술 교류는 물론, 중차대한 국가과학정책에도 깊이 관여한다. 최근에는 논란이 됐던 ‘고교 교과서 진화론 삭제 문제’에 전문가협의회를 구성해 대처하기도 했다. 그래서 과학자들에게 한림원 회원이 된다는 것은 꿈의 성취이자, 명예 그리고 평생의 업적에 따른 보상을 의미한다.

950여 명의 과학자를 회원으로 보유한 한림원에는 특별한 집단이 있다. 바로 인문사회과학자들이다. 1994년 한림원의 출범 당시, 한국과학사학회의 추천을 받은 송상용(한림대, 과학사·과학철학), 박성래(한국외대, 한국과학사), 김영식 교수(서울대, 중국과학사)를 정회원으로 뽑음으로써 인문학의 교두보가 만들어졌다.

과학자 평생의 꿈, 한림원

드물지만 인문사회과학자가 뽑히는 이유는? 김학수 정책부장(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은 한림원이 인문사회과학자들 중에서, 과학기술 관련 연구를 하는 학자를 영입해야만 인문-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간의 교류도 활성화되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과학자들에게조차도 한림원 입회가 평생의 꿈인 과학의 메카, 한림원에서 당당히 활동하는 인문사회과학자는 종신회원을 포함해 현재까지 13명이다. 오는 22일 김유신 부산대 교수(과학철학)가 총회를 통해 정회원증을 받게 되면 14명이 된다.

한림원에는 5개의 학부(정책학, 이학, 공학, 농수산학, 의약학)가 있다. 인문사회과학자들은 모두 정책학부에 속한다. 학사, 석사과정에서 자연과학을 하고 박사학위를 인문사회과학으로 전공한 학자들이 많다. 오는 22일 정회원이 되는 김유신 교수도 학부와 석사과정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과학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까지 정책학부의 종신회원은 24명, 정회원은 18명, 준회원은 1명이다.

한림원 회원심사위원회의 4차에 걸친 강도 높은 입회심사과정은 유명하다. 엄격한 학문적인 잣대로 평가하기에, 과학자들에게 꿈 중의 꿈이라는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인문사회과학자의 경우는 그 벽이 훨씬 높다. 일 년에 한 명이 심사를 통과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 심사의 중요한 평가 기준인 SCI급 논문 수가 자연과학자에 비해 현저히 적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이학부와 공학부는 150명, 정책학부의 경우 25명이 정수지만, 한 번도 정수를 채운 적이 없다.

정책학부에 속한 인문사회과학자들은 어떤 일들을 할까. 송상용 한림대 명예교수는 한림원 내 정책이나 인문사회과학과 관련된 주제는 이들 몫이라고 말한다. 그는 남북과학기술교류위원회를 설립해 위원장을 맡아 일본에서 남북과학기술자회의를 열었다. 정근모 원장 시절에는 한국과학기술사편찬위원회를 설립해 현대한국과학기술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4년의 연구는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방향에도 영향을 끼쳤다. 황우석 교수 사태가 일어날 즈음에는 과학기술윤리위원회를 설립해 한림원 내 연구윤리문제도 해결했다. 지금은 박성래 한국외대 명예교수가 한림원 윤리위원회에서 활동 중이다.

최근 정책학부의 주요 관심사는 ‘융합연구’ 부분이다. 지난 6월에 열린 제52회 한림심포지엄 ‘융합연구, 왜 그리고 어떻게 할 것인가?’가 최근의 대표적 예다. 김학수 정책부장은「효과적 융합연구, 새로운 패러다임」을, 김유신 부산대 교수가「융합연구에 대한 과학철학적 접근」으로 융합 논의를 다졌다.

과학문화와 비과학문화의 분리가 ‘교육’에서부터 시작됐고, 표준적이고 통합적인 학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져서 각 분야 간 교류가 원활하지 않다고 지적했던 영국의 물리학자 스노의 50년 전 주장은, 이런 점에서 정책학부의 현재에도 유효해 보인다.

이렇게 한림원에서 융합과 학제간 연구의 장을 선도해가고 있는 인문사회과학자들에게도 어려움이 있다. 안병훈 KAIST 교수(경영과학)는 워낙에 적은 수의 학자들이 지역적으로도 구분돼 있다보니, 활발한 융합 활동을 펼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 교수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라고 하면, 인지도 자체가 이공계 쪽에 높다. 인문사회과학자들과 함께 하고 싶은데 자연과학자들만 있어서 문턱이 높을 수도 있지만, 한림원 쪽에서 오히려 인문사회학자들에게 관심을 덜 보이는 것 같다”라고 말하며 한림원의 적극적인 인문사회과학자 영입을 촉구했다.

그렇다고 내부에서 전혀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길생 원장 체제의 한림원에서도 융합 쪽에 관심을 보였고, ‘따뜻한 기술’과 같은 외연을 넓히는 프로젝트를 해야 한다는 구체적 논의가 있었다는 게 안 교수의 설명이다. 그런 그지만 “내년 3월 부임하는 7대 원장 박성현 서울대 명예교수(통계학)가 ‘융합’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제도화 해주길 바란다”라고 당부하는 걸 잊지 않았다.

창조적일 수 있는 유일한 길, 융합

융합연구가 걸음마 단계라는 지적은 김학수 정책부장에게서도 이어졌다. 인문사회과학자, 자연과학자 모두가 전문화된 길을 오랫동안 걸으며,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김 정책부장은 “학자들의 속성이라는 게 혼자 전력투구하는 데 익숙하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융합연구를 할 수 있는 원리와 훈련이 관건인데, 지금 인문학자, 사회학자 모두 자신의 가치만 부르짖고 공유할 준비가 안 됐다”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는 몇 개의 물질을 합쳐서 신물질을 만들어내는 재료공학을 예로 들면서, 작은 나라에서 적은 연구 인력으로 창조적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융합연구역량을 키우는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 정책부장은 대안도 함께 제시했다. 인간적인 결속을 필요로 하는 훈련을 시켜주는 센터나 별도의 연구기관을 설립하는 것이다. 융합연구의 원리를 연구하지 않고서는 융합연구의 결실을 맛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기계공학자와 IT학자가 만나는 것은 연구대상 중심이지만, 인간적인 조건이 선결되지 않고서는 융합연구는 공허한 외침으로 정력을 낭비하고, 제자리걸음을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18년의 한림원 역사에 불과 14명의 인문사회과학자 구성이지만 이들이 융합연구의 도약 기반을 만들고 나아가 새로운 물꼬를 터줄 것으로 기대한다면 지나칠까. 그런 메시지가 기대된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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