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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화제] 미 ‘크로니클’誌, 미국대학에 부는 조기퇴직 열풍 다뤄
[해외화제] 미 ‘크로니클’誌, 미국대학에 부는 조기퇴직 열풍 다뤄
  • 번역 정리 이옥진 객원 기자
  • 승인 2002.07.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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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31 14:23:16
거대한 콘서트홀, 공연이 끝나고 무대위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다. 한 명, 두 명 소개된다. 작곡자는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것에 대한 찬사를, 성악교수는 완벽한 목소리에 대한 칭찬을, 무용가는 학생들에 열정적인 헌신으로 찬사를, 심지어 피아노 조율사조차 작업에 대한 찬사를 받는다. 그런데, 대학에 머물렀던 30년 경력은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 11명의 무대 위 교수들에게 어떤 마지막 인사말을 전할 것인가.
미 고등교육 주간지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이하 ‘크로니클’)에서는 지난 6월 21일자에, 한 퇴임식 풍경을 그리고 있다. 남다른 점은 그곳이 ‘때 이른’ 떠남의 자리였다는 것이다. 조기퇴직을 하는 11명. 종신교수‘였던’ 이들을 위한 앰허스트 소재 매사추세츠대학 음악학과, 무용학과의 퇴임식 자리였다.
놀라운 것은, 이들 학과에서 올 한 해 퇴직교수가 11명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두 학과에는 모두 25명의 종신 교수가 있는데 이번 퇴임식 이후에는 14명만이 남을 뿐이다. 다른 학과들도 마찬가지다. 수학과와 통계학과는 50명 가운데 13명이, 사회학과는 26명 가운데 6명, 역사학과는 33명 가운데 5명의 교수가, 유독 올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앰허스트에서 ‘조기퇴직바람’이 거세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크로니클’에 따르면, 매사추세츠주 입법부에도 최근 미국 경제불황의 충격이 전해졌고, 즉각 올해 공립대학의 예산 가운데 3천2백만달러가 삭감되었다. 타결책으로 주정부와 대학에서는 교수들에게 제공할 특별퇴직수당을 제시했다. 이런 혜택을 받으며 교수들은 정년보다 이른 퇴직을 선택했고, 1백23명의 매사추세츠대 교수들이 이번 가을학기에 학교로 돌아가지 않게 됐다.
미국 내의 다른 공립 단과대학과 종합대학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학은 교수들에게 줄 급료를 줄이고 ‘개점휴업’ 상태를 막기 위해 조기퇴직을 권장할 예정이다. 아이다호대의 경우에는 특별퇴직수당 프로그램을 가동한 결과 75명의 교수들이 내년 퇴직을 선택했다고 한다. 루처스대 역시, 지금까지 75명의 교수가 미국 대학가를 휩쓸고 있는 조기퇴직 프로그램의 이득을 보기로 결정했다.

교수 공백, 강의 질 하락 불러오나

문제는 대학 당국이 아니라 학과이다. 대학본부는 당장 단기적인 재정안정을 얻지만, 학과에는 여간 큰 구멍이 뚫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교수이건 학생이건 입학예정자건 걱정스럽긴 마찬가지다. 이 상태로 수업의 질을 보장할 수 있을까. 교수 충원은 언제 이뤄지나.
매사추세츠대만 해도 빠져나간 만큼 교수충원이 되려면 앞으로 수년은 걸릴 것이라는 예상이다. 코넬대 고등교육연구원의 책임자인 로널드 에런버그 교수(산업노동경제학)는 ‘엄청난 인재손실’에 대해 걱정한다. “연구소에 더욱 많은 공헌을 할 수 있을 중견연구인력들이 조기퇴직한다면 연구소의 안정성에 심각한 손실이 생길 것이다”라며, 이들 교수들이 그냥 떠나버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학과의 어려움을 알면서도 교수들이 조기퇴직을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매사추세츠대에서 정상적인 퇴직을 하려면 20년 동안 재직했거나, 55세 이상의 경우에는 10년 경력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올해 1월에 발표된 조기퇴직제도에는 ‘특별한’ 혜택이 있다. 무엇보다 퇴직할 수 있는 연한계산법이 달라지고, 연금의 액수도 그에 따라 상향조정된다. 재직기간이나 나이에 5년을 더해서 퇴직가능한 조건으로 만들 수 있는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크로니클’에 따르면, 10만 달러 연봉에 30년 재직한 57세 교수가 받을 수 있는 연금은, 공식적인 산출법으로 계산해서 5만1천달러이다. 하지만 이번 특별수당제도에 따라, 그는 실제나이에 5년을 더할 수 있다. 그러면 연금은 한 해 6만6천달러까지 올라갈 것인데, 이 금액은 이 교수가 62세가 될 때까지 받을 수 없는 액수인 것이다. 앰허스트에서만 77명의 교수들이 이 프로그램에 사인했다고 한다.
이번 ‘조기퇴직바람’으로 절감된 예산 가운데 8퍼센트는 대학 당국이 아닌 주정부 금고로 들어가게 된다. 때문에 4월에 대학 당국은 퇴직연금액수가 최고봉에 근접했거나 이미 도달한 교수들을 대상으로 대학만의 특별수당을 채택했다. 그 액수는 재직연수 동안의 연봉에 1.65퍼센트를 곱한 것이다. 가령 10만달러 연봉에 30년 재직한 교수의 경우, 조기퇴직으로 4만9천5백달러의 보너스를 받게된다. 1백23명 가운데 나머지 46명의 앰허스트 교수들은 이 보너스 쪽을 택했다.
보너스와 특별연금을 선택한 조기퇴직자들은 나름대로 만족할 지 모른다. 하지만 학과에는 검은 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이번에 조기퇴직을 선택하고 퇴임식에서 연설을 한 음악학과의 로버트 스턴 교수는 그 불길함의 징조를 천문학적 은유를 써서 낙관하려 한다. “최근의 위기는 대학이라는 우주의 ‘天底點’으로 새겨질 것”이지만 “이 모든 것 역시 아카데미의 삶의 순환에 있어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낙관적일 수 없는 이들은 남게 된 교수들이다. 교수회 임원을 맡고 있는 어니스트 메이 교수(음악학)는 강의의 질이 낮아질 것이라 예상한다. 임시강사로 메워지는 수업은 “매년 새로 바뀌어야 한다”며 “이런 순환구조의 제도를 갱신할 돈이 떨어지는 날이면, 전혀 딴판의 연구기관으로 바뀌어버릴 것”이라는 불길한 예측을 하고 있다.
음악학과와 무용학과의 임시학과장인 로저 라이드아웃 교수 역시 한꺼번에 닥친 대량퇴직에 힘들어하고 있다. “교수공백이 된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만 15만 달러가 필요한데, 이 돈은 내년 예산에서 받을 수 있으므로 당장 올해 학과는 15만 달러의 빚더미에서 출발”해야 한단다. 무엇보다 라이드아웃 교수의 문제는 폭주하는 학과업무에 있다. 그는 퇴임식 바로 전까지도 쉴새없이 일하다 마침내 두 세시간 누워있고서야 겨우 참석할 수 있었다며, 이 시점에서 학과의 행정일을 맡으려는 사람이 없다고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수학과의 문제는 더하다. 50명 가운데 13명이 퇴직하면서 43개의 수학과 통계학 강의를 맡을 사람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수학이 공통필수 과목이기 때문에, 7천 여명의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한다는 데 있다. 수학과 통계학과 학과장 도널드 세인트 매리 교수의 예측은 암담하다. 놀랄만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다가오는 가을 학기에 1천2백 여명의 학생들이 강의를 듣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들은 교수들의 의욕을 떨어뜨리기 일쑤다. 지난 여덟 해 동안 학과장을 맡았던 세인트 메리 교수 역시 난황 끝에 결국 본인의 조기퇴직을 결정하고 말았다. 대학본부에서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게 되면서 내린 결정이다. 대학에서는 세인트 메리 교수에게 지난 겨울 두명의 교수를 임용할 수 있도록 허락했는데,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했다”는 것이다. 학과는 황폐해졌고, 마침내 그는 퇴직 서류를 제출했다고 한다.
비슷한 이유로 퇴직을 결정한 교수들은 많다. 조셉 호로위츠 교수(통계학·응용수학)는 위원회 활동과 수학기초가 없는 학생들 가르치기에 지쳐 교수직을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한다.
그러나 신임 교수들은 이런 말들에 실감이 없다고 ‘크로니클’은 전한다. 창문도 없는 수학 강의실에서 원탁에 둘러앉은 조교수들의 생각은 사뭇 다르다. 그들은 조기퇴직자들의 공백이 학과를 병들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올해 임용된 존 스타우덴메이어 교수는 학과의 나이 든 교수들이 젊은 교수진들로 대체되어 오히려 연구에 활력이 생길 것이라 내다본다. 파나요티스 케프레키디스 조교수 역시 학과를 발전시킬 기회라고 본다. “지난해 임용된 이들의 경력이 훌륭하다”며, “학과의 연구명성을 드높여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퇴직하지 않은 노장 교수들은 비교적 신중한 예측을 펼친다. 조지 에이브루인 학과 인사위원회 회장은 수학과와 통계학과가 매년 두명에서 네 명의 교수를 임용해야만 부족을 메울 수 있을 것이라 내다본다. “행정지원이 원활하다 하더라도 몇 년간 스트레스가 심할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내일을 내다볼 수 없다는 점은 무엇보다 교수들을 어렵게 만든다. 임시교수나 방문교수들만으로 양질의 수업을 운영해야하는 상황은 안정적일 수 없다. 더구나 재원조차 한정돼 일을 도모하는 것도 힘든 형편이다. 행정공백이 심한 가운데 열린 운영위원회에서 존 커닌엄 대리 교무과장은 “내년 정부예산을 받을 때까지 제대로 된 수업과 교수충원에 대한 현실적인 예측조차 불가능하다”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
매사추세츠대와 달리 오래 전부터 조기퇴직제를 시행한 학교도 있다. ‘크로니클’에 따르면, 버지니아 공대는 1990년대에 조기퇴직 제도를 밀어붙여 심한 타격을 입었다. 대학은 뛰어난 교수들과 이제 막 안정기에 접어든 프로젝트를 모두 놓쳤다고 한다. 로렌스 힝커 버지니아 공대 대변인의 표현대로 ‘두뇌고갈’을 겪은 셈이다.

젊은 교수 충원으로 새 활력 줄수도

현재 버지니아 공대는 주정부 예산삭감에 대비해 ‘대안적인 해직 선택권’이라 부르는 일종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교수들에게 일정 나이와 재직연수가 돼야만 조기퇴직을 ‘신청’할 수 있게 한다. 차이점은 이 ‘신청’을 대학 본부가 수락할 수도 반려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적정인원을 유지하고 ‘심하게 조기’에 퇴직하는 사태를 방지한다는 것이다.
매사추세츠대의 경우는 불행히도 이런 ‘꼼수’를 두지 못했고, 집단조기퇴직의 ‘지적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 이들 학과의 관심은 한결같다. 언제 학과가 재건되느냐가 그것이다. 학교를 사랑하며 학과운영이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원하는 교수들의 관심도 마찬가지. 조기퇴직한 세인트 메리 교수는 “내년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돌아가 훌륭하게 진행되고 있었던 연구의 일부분을 마저 담당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시기 잃은 연구의 결과를 짐작할 수는 없는 것. “너무 많은 길을 돌아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매사추세츠대 뿐 아니라, 조기퇴직제도를 염두에 둔 다른 대학들이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번역 정리 이옥진 객원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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