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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북리뷰] 발레리 한센 교수의 『열린 제국』 (The Open Empire, W.W.Norton &company.Inc.)
[해외 북리뷰] 발레리 한센 교수의 『열린 제국』 (The Open Empire, W.W.Norton &company.Inc.)
  • 최미화 / 미국 통신원
  • 승인 2002.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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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30 16:43:29
최미화 / 미국 통신원·시카고대 박사과정

‘1600년까지의 중국사’라는 부제가 붙은 밸러리 한센(Valerie Hansen)의 ‘열린 제국(The Open Empire)’은 최근 중국학계의 변화를 전면적으로 반영하는 새 역사책으로 학계의 좋은 평을 받고 있다. 방대한 영토에 걸친 유구한 세월을 반영하는 중국의 역사를 통일된 관점으로 서술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어서, 중국사 전체를 통괄하는 영문 단행본의 희소 가운데, ‘열린 제국’의 출현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최근 누적된 새로운 고고학적 발굴들 덕분에 학계는 기존의 편협한 왕조편년사 중심의 역사서술로 인해 왜곡된 사실들을 정정하는 한편 일상생활 문화를 역사의 범주에 영입하게 됐다. 책의 제목이 시사하듯, 한센은 중국의 역사와 문화는 주변 이민족과의 끊임없는 갈등과 교류를 통해서 형성돼 왔을 뿐아니라, 자국 내에서도 다양한 가치의 공존과 교류가 이루어진 열린 문화임을 주장한다.

밸러리 한센은 현재 예일대학 교수로 중세의 종교, 경제, 일상 생활 문화를 중국 역사의 범주 안에 한데 묶어 서술하는데 큰 공헌을 한 학자이다. 그녀는 프랑스 아날 학파의 역사서술기법을 채택하여, 다양한 자료의 발굴을 통해, 정치사에서 배제된 민중의 생활사를 그려내왔으며, 특히 상인들의 종교 활동을 무덤 양식, 벽화, 유장품, 비문등에 주목하면서 밝혀냈다.

‘열린 제국’은 그림, 조각, 무덤 양식, 공예품 등을 아주 많이 실고 있는데, 이는 통해 최근 종교사학이나 역사학이 문자기록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고고 미술자료에 크게 의존하는 경향을 잘 반영하고 있다.

睡虎地, 馬王堆, 敦煌굴의 발굴로 인해, 기존에 상실된 것으로 알려졌던 저서들은 물론, 놀이 규정, 性 테크닉, 점술등 당대의 삶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자료들이 속출해, 경전이나 편년사 중심의 역사 이해의 한계를 극복하게 한다. 일례로 睡虎地에서 발굴된 秦왕조의 법 규정은 그간 당연시 여겨졌던 그 잔혹설이 漢대 역사가들이 前代를 비판하려는 의도에서 창출해낸 과장이었음을 드러내준다. 또한 북부 아스타나 무덤에서 발굴된 시체를 싼 휴지 조각에는 놀랍게도 唐대의 상거래내용, 법규정등이 적혀있는데, 이는 당나라의 법이 변방에까지 일괄되게 실시됐음을 알려준다. 이외에도 이 책은 시, 일화, 소설등을 인용하여 당대의 사람들의 의식이나 생활의 일면을 그려내고자 한다.

‘열린 제국’은 고대 中國이 서쪽의 사막과 산맥으로 가로막힌 폐쇄된 지역공간에서 단일민족의 동질문화로 구성된 것이었는가하는 질문을 던지며, 이러한 사관은 漢族중심의 중국 역사서술이 가져온 편견임을 지적한다. 그녀는 중국 역사 문화는 주변족의 중국화와 동시에 한족이 주변의 이민족, 인도, 서양의 정보와 기술을 받아들이면서 발전해온 것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이 책은 그동안 많은 역사서들이 소홀히 해온, 위진남북조,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의 문화들을 잘 다루고 있다.

위진남북조는 분열의 시대요, 이민족들이 정권을 잡은 시대이기 때문에 한족 중심의 중국 역사관에서는 그다지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은 시대이지만, 한센은 당대 성행한 불교문화가 중국에 기여한 점을 강조한다. 유목민들의 왕조로 宋을 위협하고 멸망시킨 요, 금, 원의 사회 문화 체계가 우월한 한족 문화 사회 체계를 점차 받아들이면서 이중문화를 구성하는 점에 대한 상세한 서술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들이 자신들의 정체성 형성을 위해 외래 문화인 불교를 채택하여 발전시킨 사실에 한센은 역점을 둔다. 또한 그녀는 이러한 이민족의 중국사의 개입은 중국의 문화에 많은 변화를 주었음을 강조한다.

중국이 열린 제국이었음은 기원전에서 시작하여, 唐대에 전성한 실크로드가 단적인 예이다. 한센은 실크로드를 통해 온 상인들이 전래해온 불교문화가 중국에 미친 영향과 함께, 중국에 온 이방 불승들의 업적과, 중국승려들의 해외 성지 순례도 소개하면서 실크로드를 통해 전래된 것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문화였음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비잔틴 조각 양식이 인도를 통해 중국 불상에 들어온 점이나, 히브리어 성서가 마왕퇴에서 발굴된 점을 당시 동서문명의 교류를 잘 반영한다. 코스모폴리탄 도시인 長安의 외국인 거주 지역에는 각 종교를 숭배하는 외국인들이 있었으며, 널리 해외로 세력을 뻗쳤던 원나라 역시 이슬람의 과학과 기술을 많이 유치했다. 명나라 황실에서 파견한 탐험선은 중국의 해외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을 잘 보여준다. 이곳 저 곳 정박한 후, 아프리카까지 도착해, 영묘한 동물인 기린을 기념으로 가져와 황제에게 알현하는 그림은 아주 탁월하다.

‘열린 제국’은 최근의 연구업적들을 폭넓게 망라하고 있을 뿐아니라, 쉽고 재미있게 쓰여져 있다. 그녀의 스승 조나단 스펜서의 ‘근대중국의 탐색(Search for Modern China)’이 근세중국사 강의의 교과서가 돼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열린 제국’이 곧 중국 전통사회사의 교과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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