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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메시아주의는 민주주의를 가장 먼저 훼손한다”
“정치적 메시아주의는 민주주의를 가장 먼저 훼손한다”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2.09.03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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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읽는 신간_ 『최초의 민주주의』·『민주주의 내부의 적』

여기, 뭔가 불만은 있지만 민주적인 절차가 그럭저럭 지켜지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대다수 시민들에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두 권의 책이 있다. 『최초의 민주주의: 오래된 이상과 도전』(이윤철 옮김, 돌베개)·『민주주의 내부의 적』(김지현 옮김, 반비)이다. 한 눈으로 흘낏 보고 넘기기엔 저자들의 내공이 만만찮다. 주인공은 프린스턴대에서 고대철학을 전공한 저명한 고전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폴 우드러프 텍사스 주립대 종신교수(철학)와 현재 프랑스 국립고등연구원(CNRS) 명예연구원장이며, 아카데미 프랑세즈 비평상을 수상한 츠베탕 토도로프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체제다. 현존하는 가장 완벽하다고 인정받는 이 체제. 그러나 민주주의 역시 마르크스주의와 마찬가지로 인류의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완전히 실현된 적이 없다고 우드러프 교수는 말한다. 민주주의의 발현지 아테네에서조차 말이다. 책을 집어든 독자는 당황스럽다. 내가 살고 있는 21세기가 노예제, 투표권 없는 여성들로 이뤄졌던 아테네보다는 좀 더 민주적일 거라고 믿고 살았기 때문이다.

투표·다수결·대의제의 함정

우드러프 교수는 그의 책 『최초의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를 그 자체로 하나의 아름다운 이념으로 규정한다. 우리의 능력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는 자유를 약속하는 동시에 나쁜 성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누구도 오만과 남용으로 귀결되는 무분별한 권력을 누릴 자유는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오만과 남용이 민주주의의 代役으로 교묘히 나타난다고 분석한다. 민주주의의 대역이란, 민주주의는 아니지만 민주주의와 닮은 모양새 혹은 성격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이다.

우드러프 교수가 지적하는 민주주의의 대역들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우리가 익히 민주주의의 방법으로 거론하는 투표, 다수결의 원칙, 대표 선출제이다. 투표를 둘러싼 쟁점은 20세기 독재의 역사로부터 우리에게 친숙해졌다. 독재자들이 국민들에게 투표를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표는 결코 민주적이지 않았는데, 이는 그들이 투표용지 위에 적혀 있는 바를 철저히 통제했기 때문이다. 우드러프 교수는 민주적이라고 여겨지는 현대의 국가에서조차 시민들의 선택권을 빼면 실제로 스스로가 얼마만큼의 힘을 갖고 있는지 자문해 볼 것을 요청한다. 두 번째 대역인 다수결의 원칙은 최초의 민주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저자는 최초의 민주주의가 가진 본질적인 특징은 참주정으로부터의 자유이며 모든 시민들의 평등한 정치 참여라고 말하며 이 둘은 늘 함께 이뤄진다고 주장한다.

이 노련한 정치철학자는 “어떤 그럴듯한 이상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다수의 권력을 확보한 정당이 국가를 통치하는 경우 그 국가가 민주적이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다수결의 원칙이 절대적일 때, 그 권력을 가진 정당은 어떠한 논의 과정도 거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인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민주주의는 정녕 우리에게 가능한 것인가?’를 묻고 있다. 그는 해답을 제시하는 대신, 최초의 민주주의가 시작됐던 아테네로 돌아가 민주주의 뒤에 숨어 있던 일곱 가지 핵심 이념들을 통해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 일곱 가지 이념들이란, 참주정으로부터의 자유, 조화, 법에 따른 통치, 본성에 따른 자연적 평등성, 시민 지혜, 지식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추론, 그리고 일반 교양 교육이다. 저자가 참주 히파르코스를 살해하고 순교한 하르모디오스와 아르스토키톤을 비롯한 아네테의 실존 인물들의 역사를 통해 이 이념들이 아테네 역사에서 어떻게 민주주의를 일궈냈는지 실증하는 대목 등은 꼼꼼히 추적해볼 만하다.

진보의 世紀를 진단한 기호학자

장르 문학 비평의 토대를 구축했고, 러시아 형식주의를 서구에 소개한 츠베탕 토도로프. 기호학자, 문학이론가, 미술비평가로 국내에 알려진 그가 정치사회학 서적을 낸 것은 과연 예외적인 일일까. 그가 정치사회에 대해 언급했던 내용을 정리해 하나의 독특한 정치사상으로 펴낸 책 『민주주의 내부의 적』은, 그 또한 세상 정치질서 속에서 숨쉬고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거듭 확인해준다.

토도로프가 스스로 말하듯 인생 초반 1/3은 전체주의 국가(불가리아)에서, 나머지는 자유민주주의 국가(프랑스)에서 지낸 경험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들에 대해 쓴 책이다. 우드러프 교수가 규정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좀먹게 하는 대역들은 토도로프가 비판하는 민주주의 내부의 적과 일맥상통한다. 우드러프가 2천500년 전 아테네에서 그 해결책을 모색했다면 토도로프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를 종횡무진한다.

토도로프는 진보, 자유, 인민을 민주주의의 구성 요소로 본다.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통찰은 내부의 적이 바로 이 세 가지 구성 요소에서 파생한다는 점을 밝혀낸 것에 있다. 특정한 하나의 요소가 편협하게 배제되거나 선호될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이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본문에서 “나는 전에는 자유가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 중 하나라고 믿었지만, 어떤 경우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험을 뜻한 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여러 보편적 가치들 중에서 느닷없이 ‘자유로운 공격’을 내세우면서, 경제 부문을 국유화한 모든 나라들과 전쟁을 치러야 하는가?”라고 지적하고 있다. ‘자유’를 찾아 불가리아를 떠난 토도로프. 그는 ‘자유’가 어떻게 극우파시스트들이 이용하는 개념이 됐는지 극단적 자유주의인 신자유주의를 통해 비판한다. 또한 토도로프는 사상가답게 파스칼, 몽테뉴, 루소를 능숙하게 소환한다. 그는 민주주의의 개념과 관련된 논쟁의 출발점으로 1천600년 전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논쟁까지 빌려온다.

인간의 불완전성과 원죄, 그리고 인간의 의지와 완결성에 대한 싸움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이 승리함으로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임이 민주주의의 전제가 됐음을 논증해낸다. 그의 글쓰기는 이데올로기의 투쟁으로 점철된 민주주의의 식상한 구도까지도 벗어났다. 그는 ‘진보’가 지나치게 강조됐던 세 시기, 18세기 프랑스 혁명, 소비에트 이후의 공산주의, 이라크 전쟁 이후 리비아 사태까지의 시기를 차례로 거론한다. 그는 하나의 가치에 천착한 정치적 메시아주의는 오만한 발상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경고한다. 토도로프는 미디어를 통해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포퓰리즘을 가장 경계해야할 민주주의 내부의 적으로 규정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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