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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상자로서의 ‘프랑스 이론’, 그 여행의 기록
도구상자로서의 ‘프랑스 이론’, 그 여행의 기록
  •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 승인 2012.02.2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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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프랑수아 퀴세, 『루이비통이 된 푸코?』(문강형준 외 옮김, 난장, 2012.1)

‘이론’에 대한 책은 넘쳐 나지만, ‘이론의 여행’에 대한 책은 드물다. 주지하다시피 이론은 언제나 특정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탄생한다. 가령 마르크스주의가 1845년에서 1847년 사이, 유럽을 휩쓸던 기근과 경제위기, 처참한 노동환경 속에서 삶의 기반을 잃어가던 노동자·민중의 폭동이 빈번하던 때 그 가장 급진적인 뼈대를 세우게 되듯이 말이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는 19세기 중후반의 유럽에 묶여있는 대신, 러시아로, 동유럽으로, 아시아와 아메리카로 끊임없이 ‘여행’함으로써, 그렇게 함으로써만, ‘세상을 해석하는’ 이론을 넘어 ‘세상을 바꾸는’ 이론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론은 언제나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는 탕자이며, 여행을 통해서 그 진가를 드러내는 탐험가와도 같다.    

프랑수아 퀴세 교수는 1960~70년대 미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미시정치와 해체론을 중심으로 수입된 푸코와 데리다의 글은 미국 대학생들에게 해방감을 선사했지만,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프랑스 이론'은 더 이상 새로운 도구상자가 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이제 프랑스 사상가들은 사회적 혼란, 테러리즘 등 현안을 풀기 위한 새로운 조합으로 호명되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데리다, 랑시에르, 바디우, 지젝. 맨 끝이 저자인 프랑수 퀴세. 

프랑스 낭테르대학의 미국 문명학 교수이자 지성사가인 프랑수아 퀴세의 『루이비통이 된 푸코?』는 바로 여행하는 이론의 운명에 관한 책이다. 퀴세가 말하는 ‘이론’은 푸코, 데리다, 들뢰즈, 리오타르, 라캉, 보드리야르, 바르트 등 채 열 명이 안 되는 프랑스 이론가들의 텍스트를 아우르는 이름이자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프랑스 이론’(French theory)이다. 이 책에서 퀴세는 놀라우리만치 꼼꼼하고 섬세한 서술로 이 ‘프랑스 이론’이 어떻게 발명되었고, 어떻게 활용되었으며, 어떻게 규범화되고, 어떻게 변형되고 있는지를 파헤친다. ‘프랑스 이론’의 이 모든 여행이 시작되고 끝나는 곳은, 그러나, 프랑스가 아닌 미국이다. 

이론의 여행이 시작되고 끝나는 곳

여행의 시작은 1930~40년대, 나치의 발흥과 맞물려 다수의 유태계 유럽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미국으로 망명하는 때부터다. 이들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은 미국의 대학들은 초현실주의, 실존주의, 아날학파 등 유럽의 ‘최신’ 지적 경향 역시 흡수하면서 최초로 이론의 ‘수입’에 따른 풍성함을 맛보게 된다. 사회와 동떨어져 있던 미국 대학은 1960년대를 지나며 잠시 정치적 저항의 물결에 휩쓸리지만, 1970년대에 이르면 다시 보수화되면서 수익 창출의 모델이자 지식 서비스의 장으로 변모한다. 이에 반대하는 학생들은 대학을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반항의 실험장, 곧 ‘반문화’의 요새로 바꾸려 노력하면서 권위와 합리성의 지배를 비판할 지적 도구를 찾게 된다. 

일련의 프랑스 철학자들의 텍스트가 불려나온 것은 바로 이 때부터다. 미시정치와 해체론을 중심으로 수입된 푸코와 데리다의 글은 미국 대학생들에게 해방감을 선사했고, 화가·음악가·시인·지식인 등 보수화된 세상에서 자기만의 자리를 찾을 수 없었던 이들이 급진적인 “실천을 수행하는 장소”가 된다. 각 대학에서 학술저널이 생겨나고, 독특한 글쓰기 스타일들이 유행하고, 출판사들은 프랑스 저자들의 텍스트 선집을 내기 시작한다. 결국 프랑스에서는 전혀 동질적으로 취급되지 않던 철학자들은 이렇게 미국에서 ‘프랑스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발명”된다.  

미국에서 ‘프랑스 이론’의 고착화는 1980년대 초에 확립된다(동시에 프랑스에서는 이들 철학자들에 대한 비판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특히 이 시기에 영문과가 대학 내에서 헤게모니를 쥐는 과정에서 ‘프랑스 이론’은 다시 불려나온다. 영문과를 중심으로 한 문학부는 다른 분과학문을 평가할 수 있는 무기를 ‘프랑스 이론’에서 발견함으로써, 모든 것을 일종의 ‘서사’로, ‘텍스트’로 다루는 방법론을 사용한다. 1990년대 미국 문화연구의 발흥은 이러한 이론 중심 분석의 정점이 되었고, 이와 함께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성소수자연구, 종족연구, 팬덤연구 등 다양한 정체성의 정치가 백가쟁명의 시대를 이룬다. 진보와 보수가 정체성과 재현의 문제를 놓고 논쟁하던 이 시기를 흔히 미국의 ‘문화전쟁’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곳에 ‘프랑스 이론’이 있었다. 

1970년대에서 90년대까지의 미국 대학 및 지성계를 여행하던 ‘프랑스 이론’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때로 이론이 탄생한 프랑스적(유럽적) 맥락이 완전히 거세되고, 순간적 통찰을 주는 몇몇 멋진 구절이 텍스트 전체를 가리며, 가장 급진적인 정치적 저항이 텍스트 해석의 문제로 대체되던 문제들이 있기는 했지만, 미국 지식인들에게 ‘프랑스 이론’은 언제나 대학과 사회의 모순에 개입하는 데 유용한 ‘도구상자’ 역할을 했다. 마치 레비-스트로스의 ‘브리콜뢰르’처럼(혹은 맥가이버처럼?) 미국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랑스 이론’을 들여오고, 조립하고, 떼어내고, 접합하면서 이를 실천적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에서 필수적이었던 이 프랑스 이론가들이 70년대 중반 이후 조국 프랑스에서 오히려 강하게 비판받거나 무시당했던 사실은 이론이 가진 구체적 활용가치의 측면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미국의 지식계가 이론을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미국 못지않은 이론의 수입국인 한국에서 이론은 ‘논평’의 대상이 되는 데 그친 듯하다. 1990년대 초 공산주의의 몰락과 민주화의 물결이 불러들인 한국의 ‘프랑스 이론’은 학생운동의 문화적 전환을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한국사회’의 모순과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수많은 ‘논쟁’들이 이런 저런 개념어들이 제대로 번역된 것인지, 이론이 탄생한 맥락을 제대로 아는 것인지, 혹은 이론이 먼저인지 ‘작품’이 먼저인지 등을 놓고 싸우는 데에서 나아가지 못한 건 아니었는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루이비통이 아니라 반역적 오독 유발자

미국에서도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프랑스 이론’은 더 이상 새로운 도구상자가 되지 못했다. 자본주의의 위기, 기후변동, 에너지 고갈, 사회적 혼란, 테러리즘 등 현재의 문제를 풀기 위해 미국 지식인들은 또 다른 이론들을 수입하고, 요약하고, 재조합하고 있다. 아감벤, 랑시에르, 바디우, 지젝, 슬로터다이크 등 2000년대 이후 새로 떠오른 이름들은 이를 잘 보여준다. 퀴세는 ‘프랑스 이론’ 이후의 전 지구적인 이론 활용 사례들 역시 자세하게 다루면서, 언제나 여행하는 이론들을 어떻게 혁명적 ‘도구’로 활용하느냐의 문제틀로 이론을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다시 말해, 이론은 결국 ‘반역’에 다다를 때 의미를 가진다. “반역이란 늘 어떤 텍스트나 예술작품, 또는 개념이 머나먼 곳으로까지 여행하면서 그 원천, 기원적인 맥락 속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될 때 일어나”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은닉, 오독, 오용”이야말로 이론의 활용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론은 대학 강의실 내에 고이 모셔둘 값비싼 사치품(‘루이비통’)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역적 오독을 유발함으로써 결국은 기존의 사회 자체에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무기이자 도구이어야 한다. 퀴세가 쓴 ‘프랑스 이론’의 미국 여행기가 주는 교훈은 여기에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한국 지식계의 서양이론 수용사와 그 사회학적·문화적·지성사적 의미 역시 이제는 한 번 정리될 때가 되었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는 없겠다.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필자는 위스콘신대(밀워키)에서 영문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다. 지은 책으로 『파국의 지형학』등이 있으며, 옮긴 책에는 『권력을 이긴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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