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20:25 (일)
원로 사학자가 쓴 역사속 과학기술자 列傳
원로 사학자가 쓴 역사속 과학기술자 列傳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1.12.12 14: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제의 책_ 박성래 지음,『인물과학사(전2권)』(책과함께, 2011.11)

 

원로 사학자 박성래 한국외대 명예교수가 최근 역사 속 과학기술자를 조명한 『인물 과학사』를 펴냈다.
한국의 과학을 이룬 과학기술자는 누가 있을까. 세계의 과학자들은 우리나라에 언제 처음 소개됐을까. 천문학, 의학, 농학, 동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그들은 우리 역사에서 어떻게 평가돼 왔을까. 한국 과학기술자 92인, 세계 과학기술자 63인에 관한 간략한 인물 평론을 담은 『인물 과학사(전2권)』(책과함께)가 출간됐다. 저자는 과학사가 박성래 한국외대 명예교수.

 지금까지 한국 과학사 전반을 주제로 다룬 책이라면 1960년대에 전상운의 『한국과학사』, 박성래의 『한국과학사』가 그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두 책 모두 공교롭게 '한국과학사'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지만, 상세한 부분에 속한다 할 수 있는 과학사 및 기술사에서의 인물 연구와 저작은 빈곤했다. 과하기술 인물사와 관련한 대표적인 책으로는 김호의 『조선과학 인물열전』, 김근배의 『한국과학기술 인물 12인』, 박성래의 『명예의 전당에 오른 한국의 과학자들』등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인물에 관한 내용이 빈약하고 다루고 있는 인물의 수 자체도 적었다. 특히 기존의 과학 인물사와 관련된 책들은 대부분 번역서였고 그러다보니 세계사 인물에 편중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은 이렇게 과학기술자들을 총망라한 개설서가 부족한 현실을 반영해 기획됐다. 다루고 있는 인물의 수부터 기존의 책들과 차별성을 이룬다. 또 기존의 책들은 대부분 백과전서식, 전기식 나열에 불과했지만 이 책은 전기식의 나열로 위인전과 같은 전개를 이루지 않고, 저자만의 독특한 인물관을 함께 제시한 게 특징이다. 세계 과학기술자들의 경우 우리나라에 언제, 어떻게 처음 소개됐는지를 소개하고 한국 과학사에 남긴 업적은 무엇진지 밝히는 것에 중점을 둔 것도 흥미롭다.

 "역사의 주인공은 사람이고,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은 정말 재미있다. 나는 과학기술의 역사도 그런 줄거리에서 살펴볼 때 더욱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는 저자는, 반세기 동안 공부하면서 틈틈이 눈길을 주고 더듬고 찾아낸 '과학기술자'을 오늘의 독자 앞으로 호명해낸 셈이다. 저자 나름의 고집이라면, 생존 인물을 서술에서 제외했다는 것이다. 그는 "역사가가 생존자를 대상으로 글을 쓰는 일을 반대"한다. 사실, 이 책에 수록된 내용은 지난 20년 동안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의 월간지 <과학과 기술>에 연재됐던 글이 주축을 이룬다.

역사학자인 저자의 눈길은 천문학, 역법과 지리학, 의학, 기술?발명, 농학과 동물학, 수학, 다방면에 뛰어난 업적, 과학행정가로 분류해 각각 시대를 대표할 만한 과학과 기술에 관련된 인물을 훑고 있다. 한국 과학기술자들은 고려시대 왕건의 꿈을 해석해준 '한국의 프로이트' 최지몽, 고려 명종 때의 천문학자 권경중, 고려 충렬왕 때의 대표적 천문학자 오윤부, 지구설 옹호하다 26세로 요절한 남극관, 우리나라 천문·기상학의 효시 이원철 등에서부터 과학기술의 대중보급에 이바지한 김용관, 한국 최초의 물리학자 최규남, 비날론 개발해 북한 섬유혁명을 선도란 리승기, 한국 과학기술 행정의 기틀을 마련한 최형섭 등에까지 이른다. 박 교수가 정리한 이들 인물 리스트를 보면, 그 자체가 역사의 결여 부분을 복원한 것처럼 읽힌다. 92명의 과학기술자들을 깊게 탐구하진 않았지만, 이 정도 리스트를 작성하고 인물의 주변까지 살펴낸 것은, 그의 공로임에 틀림없다. 이 인물 리스트가 더욱 확장되고, 깊이가 심화되는 것은 분명 후학들의 몫이다.

 '세계의 과학자들'을 다룬 2권은 그리스의 아르키메데스부터 중국 로켓 공학자 첸쉐썬까지 조명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한국적 수용이란 측면을 강조한 그의 의도대로 곳곳에 한국 과학과 접점을 맺고 있는 인물들을 배치한 것도 특징적이다. 예컨대 한국 천문학사와 깊은 인연을 가진 일본의 시부카와 하루미, 조선에 과학을 알린 미국의 윌리엄 마틴, 한국에 처음으로 화학을 소개한 에드워드 밀러, 저술을 통해 서양 의학을 소개한 영국 선교사 벤자민 홉슨, 한국 의학사 연구에 일생을 바친 일본의 미키 사카에, 세계에 한국의 측우기를 처음 소개한 일본의 기상학자 와다 유지 등이 그들이다. 반면, 저자는 한국 과학기술과 관련 왜곡된 주장을 펼친 나라밖 과학기술자들도 빠뜨리지 않았다. '중국 측우기가 세계 최초'라고 억지 주장한 중국의 주커전 같은 인물 말이다.

서양 과학기술자들이야 근대학문의 수용 탓에 잘 알려져 있는 실정이지만, 이 책 곳곳에 얼굴을 내민 '동아시아 과학사'의 면면은 저자가 깊이 애쓴 결과임에 틀림없다. "동아시아 과학사를 대강 살필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우리 근대사를 꿰뚫어보는 눈을 만들어주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내 믿음이다"라고 박 교수는 말한다. 한국의 과학기술과 과학사를 동아시아 과학사라는 보다 넓은 틀 안에서 조명하고자 한 저자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