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9 03:05 (월)
푸른 풀이 돋아나는 땅 … 중국 고문의 힘
푸른 풀이 돋아나는 땅 … 중국 고문의 힘
  • 염정삼 서평위원(서울대 HK교수)
  • 승인 2011.12.07 10: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염정삼 서평위원 /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
혹시 중국의 사대미인 가운데 한 사람인 ‘王昭君’을 아는가? 『고문진보』에는 왕소군을 노래한 시가 실려 있다. 원래 ‘昭君’이라고 썼는데 후대에 피휘하느라 ‘昭’자를 못 쓰고 ‘明妃’라고 불렀다. 그래서 ‘明妃曲’이라는 시제 아래 왕소군의 일을 노래한 시가 역대로 많이 있다.

그녀는 漢나라 元帝의 궁녀였다. 당시에는 수천 명의 궁녀들이 황제를 한 번 보는 것만도 대단히 힘들어서 화공에게 궁녀들의 모습을 그리게 하고 그 그림을 보고 나서 아름다운 궁녀를 뽑아 황제를 알현하게 했다. 궁녀들은 십만 금도 마다하지 않고 화공을 매수했다. 그런데 왕소군은 대단히 빼어난 미인이었기에 스스로 화공에게 돈을 가져다 바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문제가 터진 것은 흉노족이 조회해 화친의 필요상 한 나라의 궁녀를 배필로 보내야 할 일이 생겼을 때였다.

결국 가장 못 생기게 그려진 왕소군이 뽑혀서 흉노의 왕에게 보내지게 됐는데, 왕소군이 한나라를 떠나려고 원제에게 고별의 인사를 바치던 날 그때서야 원제는 왕소군을 실물로 처음 보았다. 그녀의 광채가 사람을 감동시키고 주위를 화들짝 놀라 일어서게 할 정도임을 비로소 알게 된 원제는 땅을 쳤다. 이미 보내기로 약속한 일이라 물릴 수는 없고 회한에 가득 찬 원제는 궁녀들을 그린 화공을 찾아서 그를 저자거리에서 효수했다. 그 화공의 이름이 毛延壽로, 그의 이름에는 수명을 연장하라는 기원이 담겨있지만 왕소군 덕분에 명을 누리지 못했고, 대신 왕소군과 함께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주로 알려진 내용이다. 어느 날 무심코 『고문진보』를 읽다가 왕소군이 떠난 이후의 이야기를 주석을 통해 알았다. 흉노의 왕 單于에게 시집간 왕소군은 그래도 사랑받고 잘 살았던가 보다. 한나라를 그리워하기는 했지만 자기를 몰라주었던 조국에 비하면 선우의 대우는 극진했다고 전한다.

그런데 선우가 죽고 그의 아들이 즉위하게 됐다. 흉노의 풍속에는 아버지의 여자를 아들이 이어받게 돼 있었다. 왕소군은 그의 아들에게 흉노의 풍속을 따르겠는가, 한 나라의 풍속을 따르겠는가 하고 물었다. 그 말은 자기를 또 다시 여자로 데리고 살겠는가 라는 질문이었다. 선우의 아들은 흉노의 풍속을 따르겠다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왕소군은 바로 음독자살했다. 왕소군이 죽자 흉노의 온 나라가 장례를 치러주었다. 원래 오랑캐 땅 ‘胡地’에는 흰 풀만 났었는데 그녀의 무덤만은 푸른 풀이 돋아나서 그곳을 푸른 무덤, ‘靑塚’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녀가 한나라를 떠나 흉노의 땅으로 향하면서 노래했다고 알려진 구절이 있다. “胡地無花草, 胡地無花草, 胡地無花草,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라는 구절이 네 번 반복돼 있는데 결코 똑같은 의미로 해석되지 않는다. 학부시절에 한문을 강의하시던 선생님께서 한문 해석의 오묘함이란 그런 것이라고 예를 들며 알려주셨다. “호지는 화초가 없다고들 하는데, 호지에 정말 화초가 없겠는가. 호지엔들 화초가 없으리오마는, 호지라서 화초가 없다네”라고.

마른 풀만 자라나는 오랑캐의 땅에 파릇한 풀포기를 키울 수 있게 한 중국의 여인으로, 미모와 절개를 잃지 않은 중국의 자존심으로, 오랜 세월 왕소군이 노래됐다. 가끔은 미인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원제를 꼬집어 후대에 회재불우의 문인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유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화적 아이콘으로서나 정치적 실의의 비유로서가 아니라 비운의 여인으로서 그녀가 느꼈을 아픔이 전해져서 마음이 짠해 온다. 그녀가 비파를 잘 탔다고 하는데, 타국에서 말을 하고 싶어도 말이 잘 통하지 않았을 테니 홀로 그 마음을 비파에 전했을 것이다. 한 번도 보지 못한 황제가 원론적으로 그녀의 남자였으나, 마지막 날에야 자기를 알아보았고, 강제로 시집간 남자가 자기를 그래도 사랑해주었으나 그의 아들에게까지 능욕을 당하게 되는 것은 끝내 견디지 못했다. 어디에선들 살아가지 못하겠는가. 하지만 그녀의 선택은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지 묻게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땅은 아주 가까이에도 있다. 마음을 열고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을 찾기가 얼마나 힘든가. 그러나 때로 어떻게 사는 것이어야 하는지 묻게 해 주는 고전의 문장이 있어서 힘이 된다면, 삶은 어디서든 언제든 척박해질 수 있으나 푸른 풀이 돋아나는 촉촉한 땅을 만들어 갈 수 있으니 감사해야 할 것이다.

염정삼 서평위원 /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문명연구사업단 HK교수로 재직중이며, 지은책으로는 『설문해자주 부수자 역해』,『중국현대미학사상사』(공역), 『문선(文選) 역주』(공역)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